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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pr 16. 2018

꽃피는 봄이 오면

사랑과 이별

가끔 뭘 하고 살고 있을까, 내 생각은 할까? 나를 잊었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모르는 곳으로 멀리멀리 떠나버렸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니?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리워하고, 희생하는 것만큼 감격스러운 순간이 어디 있을까. 그보다 가슴 설레는 일이 존재할까.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 이상의 가치와 목표가 있을까? 그러하다. 나는 늘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자 하는 갈망을 안고 살아간다. 사랑을 누리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에 관한 나의 주장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랑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뿐이 내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생동감을 안겨 주고, 초라했던 내 삶이 아름다워지는 찰나를 경험하게 한다. 


꽃피는 봄이 오면


예체능을 전공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었다. 시간 적으로 여유로웠던 나와는 달리 그는 항상 두꺼운 전공 책들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다.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는 욕심도 많고 목표가 뚜렷했던 친구여서 그런지 그는 늘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자주 못 만난다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는 한 번도 빠짐없이 모든 성적에 만점을 받았다. 당연히 전체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한 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나니 서운함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나 또한 뿌듯하고 흐뭇했다. 내가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청년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한 켠으로는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찾아온 이별


헤어지기 몇 달 전부터 그는 나를 슬픈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공원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달빛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점점 소홀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더 슬펐던 사실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과 달리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우리는 이별을 맞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아무런 한계 없이 오래 동안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내게 더 이상 잘해줄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 두 눈을 바라보며, 내 두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모든 것은 분명 진심이었다. 평생 내 손을 놓지 않을 것 같았던 그는, 그날 그렇게 가슴속 깊은 말들과 함께 이별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시작했다. 


잊었을까, 나를


그와 만났던 3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나날들을 보냈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날 하루가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몇 달을 홀로 보내도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알았다. 잊지 못해서 늘 슬퍼하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감각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다가 맑은 하늘을 보면, 이런 날 공부만 하지 말고 내 생각 정도는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허탈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렇게 점점 우리는 분리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코 너도 나와 다른 타인이 되어버렸구나,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되어버렸구나. 


가끔 나를 기다리곤 했던 집 앞 벤치를 지나치면 왠지 모르게 그가 앉아있지는 않을까, 하며 괜한 기대감을 가졌던 적이 여럿 있었다. 내가 선물해준 검은색 가방이, 그다음엔 그의 머리가, 손이, 다리가 점차 보이기 시작하면서 익숙한 그의 실루엣이 내 두 눈에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우연이라도 마주친 적도 없을뿐더러, 연락 조차 오지 않았다. 나 또한 그리운 순간들은 분명 오곤 했지만, 가슴속으로만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잘 지냈으면 좋겠다.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잘 풀리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홀로 속삭이곤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연인도 벗도 아닌, 그저 남이 되어 버린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였다. 


언젠가 한 번쯤 우리가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욕심이 커져버리면 좋은 기억마저 큰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 만의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전화를 먼저 건 것은 내 쪽이었다. 그에게 온 두 통의 편지를 받고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본 것이다. 나를 다시 만나고자 해서 보낸 편지가 아님을 알고는 있었다. 내가 그의 꿈속에 자주 나온다는 것,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는 말 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고자 했다면 분명 한 걸음에 달려왔을 그이기에, 그저 그 편지들은 벽에다 하는 혼잣말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도. 


통화연결음이 거의 끊어지기 직전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분명 매일 듣던 목소리였는데, 굉장히 낯선 타인의 목소리. 우리는 그렇게 대화를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주변 친구들은 모두 잘 지내는지. 그는 여전히 목표를 향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오히려 옆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들떠있던 마음을 서서히 내려놓게 되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두 시간 가량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뒤 그가 던진 한 마디였다.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가끔 안부를 묻고 산다면, 좋은 추억이라도 가슴 깊이 안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만난다고 하여 과연 우리가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취업이 된다면,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기다리지는 말라고, 좋은 사람이 다가와도 놓치지 말라며 당부했다. 


나한테 꼭 알려줘. 꼭 알려줘야 해, 알았지?


좋은 사람이 생기면 알려달라는 그 말이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그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와 헤어진 이후, 나름 굉장히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누군가를 쉽게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왜 열리지 않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조차 아직 까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열쇠 꾸러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보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언젠가 꼭 만날 수 있겠지.

그렇지 않더라도 나도 너처럼 행복을 빌어 주어야만 하겠지. 


이미 너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남기고 간 사람이므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꽃피는 봄이 올까, 

그 날이 온다면 너도나도 참 맑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있잖아, 선인장에는 원래 꽃이 안피나봐

글/그림 여미

커버 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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