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내게 하는 말
11월만 되면 걸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이렇게 1년이 지나가는 거냐고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하곤 했죠.
그래, 또 지나가고 있다고
오늘 늦은 시간에 밤 산책을 했습니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구겨진 티셔츠를 주워서 대충 입고 두터운 검은색 롱 패딩으로 무장한 뒤 체크무늬 목도리를 동여매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바람을 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패션은 분명 작년에도 똑같은 패션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나는 작년과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지금은 영상제작 회사에 취업을 한 지 3개월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변화라고 한다면,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쩐지 내 자체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져 있다는 기분은 듭니다. 영화학과를 졸업한 뒤 제대로 된 장편 시나리오 한편을 써서 데뷔하고자 했지만, 나는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기획 단계에서 머물러져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후회, 반성 그리고 아쉬움이 가득하기 때문에 괜스레 시간의 흐름을 탓하고 싶습니다.
매년 12월 31일에 직접 만든 타임캡슐에 한해 소감과 그다음 해의 계획이나 소망을 적어서 넣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혼자 이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데요, 이번 연말에도 나의 목표는 작년과 동일할 것 같습니다. 자꾸만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산책을 하니, 오늘의 산책은 유독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내년 11월에는 같은 옷을 입고 걷고 있을 지라도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갔네, 벌써 1년이 지나갔네, 나는 무엇을 이루었지?"라고 하기보다는
많이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내줘서 고마워
라고 내게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늦지 않은 것 같아요.
입김이 나오고 있어요.
점점 추워지면서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지만,
온기는 잃지 않으려고요.
나에 대한 온기, 타인의 대한 온기, 그 어떤 형태의 온기든지요.
오늘도 잘 버텨내줘서 고맙습니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