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다양한 빛
놀림을 당할 때나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나는 항상 꿀 먹는 벙어리처럼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아무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나를 향해 쏘아대는 말을 바로 받아치는 능력이 내게는 아예 없다. 그렇게 모든 말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집에 들어가면 서서히 생각나기 시작하면서 밀려오는 후회를 홀로 안아야만 했다.
바보 같이 왜 아무 반박도 못했을까, 하고.
말을 논리적으로 잘 하는 가상의 여성을 머릿속에 자주 그리곤 했다. 내가 난처한 일이 생겼을 때마다 해결사처럼 나타나서 내 상황과 입장을 대신 설명해줄, 멋진 여성을 떠올리며 해소되지 않은 갈망을 그나마 대신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대학생 때 처음으로 했던 아르바이트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주문을 받자마자 차가운 돌판 위에 여러 재료를 섞어서 즉석에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줘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침착하게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으면, 다른 손님이 와서 주문을 재촉했다. 거기서부터 정신 붕괴가 서서히 왔고 종잡을 수 없이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유독 내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기만 하면 줄이 문 바깥까지 퍼져가곤 했다. 그렇게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장님한테 혼이 났다. 느릿하고 야무지지 못한 탓이라 여기며 자책의 나날들을 보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나만 제외하고 모두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말과 행동이 참 느렸고, 그것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능력 밖의 일, 정말 있을 수 있다. 그거 내가 아주 지겹도록 느꼈기에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서비스직에 맞지 않다는 것을, 몇 년간 부딪히면서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떳떳했다. 그곳으로부터 하루빨리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사실 내 안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꽤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놀라운 것은 한번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 이후에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더니, 오히려 작은 기회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뜻하지 않은 성취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말로 반박할 수 있는 논리적인 언어 구사 능력은 부족하지만, 내게는 글이라는 다른 방면이 있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일에는 약해도, 한 가지 일을 꼼꼼하게 잘 해낼 자신은 있다.
나는 느림보 거북이다.
그러나 무지개색 다양한 빛을 가지고 있는 느림보 거북이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돌아보면 모두 추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