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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ug 11. 2018

나만의 시간여행

만일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유독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매우 짙다. 내가 살던 동네는 낡고 오래된 주공단지였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은 현재 내가 만들어내는 창작물에 대부분 반영이 된다. 내 기억력이 쇠퇴하기 전에 그렇게라도 한없이 마주하여 간직하고 싶다. 어릴 적 살았던 그 자그마한 동네에서 하루 종일 홀로 왔다 갔다 거리며 공상을 즐겼다. 혼자 놀다 보니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적어놓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었다. 나는 나중에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증폭했었다.  


그러나 막상 20대 후반이 되니, 현재 나는 내 미래가 지금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사실 궁금한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결혼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인생을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나의 미래의 모습을 본다면, 과연 글을 쓰는 것이 즐거울 수 있을까? 노력은 결과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이미 결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의지마저도 잃어버릴 것만 같다.  


굳이 시간여행을 한다면, 과거를 선택하겠다. 내 어릴 적 그 동네로 돌아가고 싶다. 1998년, 여름으로 말이다.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나에게 응답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다시 한번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다. 곧 재건축이 되어, 너는 사라지겠지만 내 유일한 안식처였음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는 내가 좋아했던 길목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종이 위에 스케치를 하고 싶다. 하나라도 빠짐없이 그림으로 그려서 그리움을 달래고 싶다. 수줍어서 먼저 다가가지 못했던 나날들 또한 후회스럽다. 초등학교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다니며 내가 많이 좋아했음을 고백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현재를 바꾸는 일이 아닌 그저 다시 한번 그때 살았던 동네를 ‘감상’하는 일이다. 90년대를 살았던 그 시대 자체를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도 분명 커다란 양분이 될 것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애틋한 것이 아닐까.  


나만의 시간여행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커버사진 임경복


바쁜 나날들이 갑자기 몰려와 오랜만에 글을 발행 했네요.

앞으로는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겁니다. 

잠시 새로운 세계로 들어와있는데, 정리가 되면 공유할게요. :) 

제가 연출한 단편영화 <그녀의 속도>가 인천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합니다. 

8월 12일 오후2시, 영화공간주안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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