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이 천 번이 굴러야 작품이 되는
경복궁의 서쪽 작은 예술 공간에서 오랜만에 영혼과 맞닿는 작품을 만났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이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작가의 영혼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예술 작품을 보러 간다는 것은 답답한 사회 속 작은 숨통을 틔우러 가는 행위이다. 경직된 사회와 학교, 너무나도 많은 틀을 가지고 너무도 쉽게 다른 존재를 평가하는 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틀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유롭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그리 쉽지 않다. 어쩌면 나의 존재를 반쯤은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점점 내 가슴을 채울 때, 잠시 내가 있는 공간을 떠나 누군가의 영혼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을 만나다 보면 다시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난다. 가슴 깊이 맑은 산소가 채워지는 것처럼, 새로운 에너지와 생기가 채워지고 그 틀에서 벗어 나올 수 있는 순간으로 이동한다.
‘조약돌이 천 번이 굴러져야 작품이 된다. 물감 묻은 돌이 왼쪽 끝에서 한 번, 오른쪽 끝에서 한 번… 백발의 허리가 굽은 노 화백이 고집스럽게 반복한다. 그렇게 한 번씩 돌멩이가 자취를 남기기를 1000번 채우면 작품은 완성된다.’
호기심을 가지게 했던 그의 전시 소개에 나온 문장이다. 조약돌을 천 번을 굴리면서 만들어지는 그의 작품. 이 작가는 그 조약돌을 굴릴 때 어떤 마음일까. 무슨 마음으로 그 행위를 반복하는 걸까.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잘 그리는 그림이 과연 좋은 것인지 오랜 시간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림이 경쟁의 도구가 되고, 이것을 통해 상을 받고 돈을 벌고.. 그리고 그 굴레에 회의를 느낀 작가는 붓을 버렸고, 그것은 잘 그리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는 행위였다.
‘그리지 않음으로 그림을 완성한다.’
그의 작품과 가장 어울리는 문장이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행위인 예술조차 경쟁과 자본이 되어버리는 현실 속에서, 화백은 회화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욕망을 걷어내고 회화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마음이 고요하고, 정결해졌다. 명상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복잡했던 마음들이 씻기어져 내려가는 듯했다. 그리는 행위에서 벗어나면서 오히려 그린다는 것에 본질에 도착한 이 작가의 마음이 캔버스 너머의 나에게도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본질에 다다르기 위해서,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가르치는 자로 살아가면서 아이들에게는 이 사회의 구조와 규칙대로 살아가기를 다시 강요하거나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한 길이 나의 현재의 삶의 행동들과는 모순되지 않는지.. 조금은 무겁지만 나의 걸음에 필요한 작은 질문들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왔다. 언제나 내 곁에서 소중한 순간을 선사하는 나의 사랑에게 감사하며.
2021년 1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