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마음을 다치는 순간.

by 여울샘


교실 전화에 부재중 통화가 2통이 찍혀 있었다.

선생님들과 함께 비폭력 대화 연수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시간이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 전화를 확인했지만, 급한 연락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2학년 2반 담임입니다."


전화를 받은 분은 우리 반 한 아이의 학부모님이었다.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 무슨 일일까. 사실 예상되는 것은 역시나 나의 마음을 오랫동안 쓰이게 했던 우명(가명)이의 행동뿐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명이가 실내화를 벗어 그 실내화로 명훈(가명) 이를 때렸다는 것. 충분히 속상하실만한 일이었다. 친구가 내 아이를 때리기만 해도 속상하셨을 텐데 신고 있던 실내화를 벗어 그 실내화로 아이를 때렸다니... 우선 그 마음을 공감해드리고 내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명훈이는 우명이와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으로 지내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명이를 통해 명훈이가 더 이상 힘든 일이 없었으면 하셨다. 학급에서도 명훈이의 행동 변화를 위해 모든 방법을 통하여 노력하고 있고 가정에서도 최대한 협조해주시고 계시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참 답답했다. 사실 교실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우리 반에서 가장 걱정과 우려의 대상이 되었던 우명이. 2학년이 되었음에도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 자체가 어려워 실내화를 벗고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누워있기도 했다. 목소리 조절이 되지 않아 자신이 원할 때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공부 시간에도 모든 생각을 입으로 이야기하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여 집중력을 잃곤 했다. 그 공간에는 23명의 친구들이 함께 존재했기에 모두가 그 행동에 영향을 받았고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이 우명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다 했던 것 같다. 매일 아침이면 호흡 명상을 통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 요가를 하며 신체적인 감각을 키워나갔다. 느낌, 욕구 카드로 마음을 나누고, 공감적 경청 훈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전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반영하여 돌려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명이의 행동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서클을 통해 나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우명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이 아이들과 찾아갔다. 그리고 우명이 스스로도 아이들의 마음을 듣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최선을 다해 변화를 향해 노력해갔다. 보통의 가정처럼 돌봄을 받기 어려운 우명이었지만, 가정에 상황을 계속 전달하고, 함께 대안을 찾아갔다. 인성 부장님과도 소통하며 아이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상담을 연결하였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 수업을 방해하고 민원을 만드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어린 시절에 깊은 아픔을 겪은 아이. 트라우마를 입고 학교에 와서 본인이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그렇게 밖에 행동을 할 수 없는 아이. 지금 보이는 것보다 수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더 밝은 미래와 희망을 내면 안에 지니고 있는 아이로 보기 위해서. 이 아이를 교실 속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였고, 우리 아이들이었다. 우명이를 위해서도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을 위해서도 교실 속에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가야 했다.


아이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우명이를 도왔다. 교실 속에서 스스로 우명이의 가족을 만들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형, 누나, 증조할머니..... 우명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면 이 가족들이 함께 도왔고, 매일 5번도 넘게 울었던 우명이를 안정시켜주고 공감해주었다. 종종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할 때면 알려주기도 하면서 아이들은 마치 역할 놀이처럼 우명이를 도와갔다. 우명이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모두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4달의 시간 동안 나는 분명 그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작은 일에도 5번 넘게 소리를 지르며 울던 우명이는 이제 하루에 1-2번 정도 우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종종 그 울음을 참고 자신이 왜 속상한지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우명이가 사회적인 소통 방식을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던 순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수업 시간에 2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던 우명이는 이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눈을 맞추며 수업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그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발견했다. 물론 아직도 중간중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일어나거나 혼자 신나서 소리를 지를 때도 있다. 그때 내가 그 아이의 눈을 보며 '우명아~~.'라고 부르면 이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책을 다시 펴곤 한다.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다. 자신에게 계속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되는 선생님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나를 도우려고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우명이는 이제 느끼고 있었다. 아침 호흡 명상 시간에도 가장 힘들어하는 우명이었지만, 이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나름 최선을 다해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눈에는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우명이가 보인다. 물론 우명이는 요즘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친구들과 쉽게 싸우기도 하지만 이 아이는 분명 스스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 반 친구들이 함께해준 공동체의 힘이 존재했다. 하지만 한 번씩 일어나는 우명이의 돌발 행동에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을 때면 나 또한 결국 마음을 다치게 되는 것 같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과 아이의 변화가 항상 일치할 수 없고, 무엇보다 내 가족의 안전이 중요한 학부모님께서 그렇게 반응을 보이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까라고 마음을 달래 보아도 가끔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무력해지고, 어떻게 더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 나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집에 와 침대에 푹 쓰러져 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마음을 나누곤 한다. 그리고 내 할 일을 마치고 평소보다 좀 더 길게 잠을 잔다. 다시 아침이 되면 기도하며 희망을 가지고 시작해야만 하는 하루.


차라리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상처받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교직에 팽배한 회의주의의 시각처럼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만큼 하면 괜찮은 것일까. 해가 갈수록 쉽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매년 교실에는 더 많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이 찾아오고 1년 내내 그 아픔과 씨름하다 보며 가끔은 나도 많이 지치곤 한다. 그리고 사실 이준원 교장 선생님의 말씀처럼 사실 우리의 학교는 모두가 아픈 것 같다. 학부모님들도, 아이도, 교사도, 그렇게 모두가 아프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 다치는 곳이 학교이기도 하다. 더 많은 배움과 노력, 그리고 마음의 성장이 내게 필요했다.



교직에 온 지 6년이 되었다. 나의 꿈이었던 교사라는 직업. 사실 교사는 나에게 직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 평생의 꿈이었고, 내가 꿈꾸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온 천지보다 소중한 어린 생명들이 모여있는 곳, 희망과 가능성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곳. 그 생명들의 아픔을 치유해줄 수 있도록 돕고 싶었고, 기회를 잃은 아이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정말 많은 부를 가질 수 있게 되어도 이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내게 돈이라는 가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노동을 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나의 대답은 결국 '그렇다.'였다. 나는 내가 많은 부를 소유할 지라도 또는 그 반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존재하고 싶다. 나는 삶에서 '가치'와 '의미'가 너무도 중요한 존재이고, 아무리 좋은 직업일지라도 가치와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나는 생명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교직 속에서, 그 의미를 이 아이들 속에서 매일 발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내게 돌려준다. 나를 보며 '선생님 보러 학교 와요.'라고 이야기해주는 아이들. 내가 가진 부족함에도 '선생님은 단점 같은 것 없어요. 선생님은 다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는 아이들. 매일 교실을 나갈 때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의 작은 몸을 다해 큰 하트를 만들어 사랑한다고 인사를 해주고 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내 부족함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의 사랑과 친절, 지혜를 더 크게 기억해주고 또 졸업을 해서도 추억해주며 찾아준다.





넓어지는 원


넓은 원을 그리며 나는 살아가네

그 원은 세상 속에서 점점 넓어져 가네

나는 아마도 마지막 원을 완성 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 일에 내 온 존재를 바친다네.

_릴케



어제 서클에서 듣게 된 내가 사랑하는 시인 릴케의 시 한 편. 나는 내가 교직에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금은 완벽히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처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주신 주님처럼. 내가 마지막 원을 완성하지 못할 수 있지만, 그저 사랑의 원을 하루에 하나씩 그려가며 그리고 넓혀가며 아이들과 함께 존재해야겠다. 상처받을 수도 다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원이라도 그려가며 아이들과 존재할 때, 아이들은 더 건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세상으로 뻗어갈 테니까. 그 아이들이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갈 테니까.


2022. 6. 24.

늦은 저녁

나의 마음을 돌보며 다시 다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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