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입을 닫은 다운이

다운이의 마음 열기

by 여울샘


다운(가명)이는 교실에서 오랜 시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했을 때부터 다운이는 교실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맑은 눈을 깜빡이며 교실 속 친구들을 살피고, 나를 쳐다보는 다운이. 왜인지 다운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반 친구들은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왜 다운이는 말을 안 해요?"

"선생님, 다운이는 어디 아파요?"


아이들의 언어답게 순수하고 솔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사실 다운이는 교실 밖이나 하교 후 친구들과 놀 때, 그리고 가족들과 있을 때에는 말을 잘하는 아이 었다. 활발하고 장난기도 많아 친구들이 참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왜 말을 하지 않을까? 3월 다운이를 만났을 때 나는 다운이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것 같다. 좀처럼 마음을 잘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운이는 내게 차차 마음을 열어갔다. 그렇게 아이를 지켜보던 중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다운이는 한글을 읽지 못했다.


2학년에 올라올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글을 깨치고 올라온다. 맞춤법이 완벽하지는 않아, 이중 모음이나 겹받침 등은 헷갈리기도 하지만 어렵지 않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 하지만 다운이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다운이의 마음이 조금씩 짐작 가기 시작했다. 한글이 어려우니 1학년 때도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1학년을 한글을 배우는 시기로 교육과정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한글을 이미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의 지문을 이해하는 것도, 문제를 푸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운이는 점점 자신감을 잃었을 것이고, 선생님이 질문을 하였을 때 틀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덜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다.


3월이 끝나갈 때쯤, 이렇게 다운이를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 연락을 드리고, 가정의 상황을 물었다. 삼 형제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점점 버거우시고, 다운이의 학습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씀이셨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 어떤 상황인지 모두 공감하고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짐작을 하며 다운이와의 한글 공부 계획을 알려드리고 협조를 구하였다.


"다운아, 선생님이랑 함께 한글 공부해볼까?

한글을 잘 알 수 있게 되면, 다운이가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자신감도 많이 생겨날 거야."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며 해보겠다는 다운이. 그 소중한 다짐과 함께 월요일과 수요일,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후 다운이와의 한글 공부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모음의 이야기부터 함께 나누었다. 하늘, 동그란 해, 땅을 뜻하는 모음들을 살펴보며 조금씩 소리를 찾아갔다. 교실에서 말을 하지 않던 다운이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글 공부 시간에서는 말을 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모음을 함께 몸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자음도 차근차근 익혀갔다. 내가 한글을 공부했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데 나도 이렇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한글을 떼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한글이라는 문자가 상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어서 그 순서를 따라가며 학습하니 가르치는 나도 꽤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한글을 전혀 읽고 쓰지 못하던 다운이가 글자를 알아가고, 소리를 내고, 문장을 읽어갈 때의 그 뿌듯함과 감동이란.... 이미 수많은 선행학습을 통해 학습의 흥미를 잃은 아이들 속에서 지쳐갔던 내게, 어쩌면 가르침과 진실한 소통의 의미를 찾는 순간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23명의 학생이 아닌, 단 한 명의 학생, 다운이. 나의 가르침과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것이 의미있는 성장으로 이어지는 아이. 아이의 표정 속에서 미세하게 나타나는 기쁨과 즐거움, 성장을 통한 행복들이 나의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전달되었다. 그렇게 3월부터 6월까지 3달 동안 다운이는 천천히 우리의 문자를 깨우쳐갔다. 다운이는 학급에서 보는 받아쓰기에 항상 무기력한 모습으로 백지를 내고는 했지만, 꾸준히 한글을 공부하고 1번부터 5번까지만 다 익혀보자는 나의 제안에 노력으로 화답해주었다. 그리고 계속 틀리던 3 문장마저 오늘은 정확히 읽고 쓸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것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운이에게는 엄청난 성장이었다. 나도 기뻐서 작은 선물을 전달해주었다. 다운이의 표정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보였다. 칭찬과 함께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을 듬뿍 전달해주었다. 다운이가 교과 수업을 무리 없이 듣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함께 가면 되는 거겠지. 누구에게도 시작을 위한 기회는 필요한 거니까.


혼자 남은 교실 속에서 쓰는 글.

오늘은 참 많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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