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이겨야만 하는 세상

내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세상은

by 여울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


세상에는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 참 많다. 글을 쓰고 있는 이 브런치에도 각 분야에서 뛰어나고 똑똑하고 어떻게 저렇게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유튜브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투자도 해서 곧 퇴사라도 해야 될 것 같게 만드는 이야기들.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없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메시지들도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성공한 위치에 놓이기 위해 자신을 알리고 성장하는데 힘쓰고 쉴 틈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난히 경쟁적이고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선점하기 위해 모두가 달려가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종종 고민을 하게 된다.


‘내 이름이 알려지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나는 행복해지는 것일까?’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되면 삶의 목표를 이룬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줄까?’

‘교사의 직업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보상이 충분치 않으니 그 의미나 가치가 덜한 것일까?’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새벽 5시가 되면 김미경 선생님은 전 세계의 수 만 명의 모닝 짹짹이(새벽 기상을 실천하는 사람들)들에게만 전달되는 20분 간의 강의를 진행하신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오늘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오늘은 기술이 아닌 생각이 뛰어난 사람,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닌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지식이 많은 이들은 AI에 대체당하고 착한 사람의 세상이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착한 사람의 세상은 대체 무엇일까. 미경 선생님은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누군가의 아픈 손을 잡아주는 것. 안아주는 것. 홀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는 것이 사람 그중에서도 착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신다. 주변을 보면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모두가 부유해지고 똑똑하고 성공하기 위해 앞다투어 달리고 있는 경쟁적인 세상에서 그들의 성공이 이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그들의 성공이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경험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이 세상은 절대 공정하지 않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시작점에 서기조차 어려운 이들이 너무도 많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너무도 다름에 가슴 아파하고는 했다. 이렇게 국가는 부유해졌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부모 아래서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을 기회조차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색연필이나 기본적인 준비물조차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서 문제 행동이 나타날 때 대체 누가 그 아이를 탓할 수 있겠는가.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서 돌봄과 인정, 칭찬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어서 그 어린 마음이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가슴 아픈 소리를...


하지만 한 교실 속에서 부모의 든든한 지원으로 행복하고 사랑받는 환경에서 밝고 티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도 함께하고 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히 해야 할 일들도 스스로 잘 해낸다. 물론 그중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조금만 기본적인 예의에 대하여 알려주면 또 잘 배우고는 한다. 아직은 어린 아홉 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실 속에서도 이렇게 시작 점이 다른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차이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서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기본적인 행동 예절을 가르치고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공감과 배려, 존중을 가르치려 한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여유가 없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다르지 않을 부모님과도 끊임없이 상담하며 가정에서 해주셔야 할 최소한의 책임과 사랑을 하실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와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아이가 개인 상담, 가족 상담을 받아 불안해하는 아이가 안정적인 정서 상태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님도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실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것이 교사인 내가 우리 교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실천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지만 교실을 벗어나 이 사회를 보면 절망을 느끼게 하는 뉴스를 듣게 된다. 이 사회 속에서 같은 나이의 청년이지만 어떤 이들은 부모의 재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리한 길을 걸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그 부모는 자녀에게 실패할 기회도 허락하지 않은 채 성공한 삶을 이어가게 한다. 심지어 음주 운전이나 폭행, 마약 등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범죄를 저질러도 국회의원이나 재벌의 자녀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놀랍지 않은가. 국가 통치 체제의 가장 기초가 되는 규범인 법 조차 개인이 가진 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이. 때때로는 그 법이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칼이 되어 이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에게 삶의 터전조차 빼앗아가는 무기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하지만 같은 나이에 이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지난달, 보육원에서 퇴소해 생활고를 겪다가 만 18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보호 종료 아동이라고 불린다.


보호 종료 아동은 정부가 보호아동이 자립을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가 종료되는 나이를 말하는 현행 만 18세를 말한다. 매년 보호 종료 아동은 2500명가량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자립 정착금 500만 원 그들이 가진 전부이다. 이 사회에 어떤 제도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자립 정착금 500만 원은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절대 충분하지 않은 돈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 읽고 넘길 수 있는 뉴스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소식이 마음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이 학생이 남긴 쪽지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다니.. 18세의 이 청년에게도 얼마나 많은 꿈이 있었을까. 그 못다 한 삶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보호 종료 아동'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보호'가 종료되어도 되는 나이가 있을까. 사회적 제도와 예산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보호'라는 것은 경제적인 지원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상이 가지 않는 지점은 이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줄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족을 가질 수는 없지만 부족하고 종종 나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이라도 가족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동력이자 힘이자 울타리이다. 아플 때,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다시 시작할 힘이 없을 때 내 곁에서 지켜주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그런 가족이 없다. 이 세상 속에서 '혼자'라는 것이 주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든든한 가족이 있어도 개인이 살아가기에 벅찬 경쟁적인 사회이다. 내가 노력해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언제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사회에 만연하며 실제로 내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지탱해줄 사회적 안전망이 단단하게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개인은 부단히 노력하며 이 사회에 적응하고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근데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성공'과 '성취'에 대한 관념이 '나'와 '우리 가족'을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룬 이들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오히려 사회를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게 하는 것이 아닌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법을 어기더라도 돈과 힘만 있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자라는 청년들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함께' 잘 살아가지 못하고 그저 '나'와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에서 넘어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일까.


'기울어진 운동장'의 이미지를 상상해보자. 한쪽에는 이 사회의 힘과 재력의 80프로를 가진 20프로의 이들이 서있을 것이다. 높은 운동장에서 안전하게 삶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저 아래의 운동장에서는 남은 20프로의 자원을 가지려 경쟁하며 운동장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의 가장 밑에는 경쟁조차 포기한 채 쓰러지고, 삶을 포기하고, 절망한 채 운동장의 모서리에서 간신히 서있거나 지쳐 쓰러져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이 이 운동장에서의 삶을 포기해버리고 운동장을 떠나버린다. 내가 교실 속에서 하는 일은 저 아래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운동장을 걸어가는 일이다. 그것이 아주 느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때로는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더라도. 이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삶을 한 번이라도 펼치고 꿈을 꾸고 세상이 주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사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사인 나는 이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거나 복지 정책을 만들거나 엄청난 재력으로 기회를 잃은 이들을 돕는 일을 지금 당장은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줄일 수 있는 실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나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너무 필요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운동장을 오르려 할 때 저 아래에 있는 이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 아파 삶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은지 앞만 보지 말고 한 번쯤은 뒤 돌아보자. 그리고 가끔은 내려가 지친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 보자. 그렇게 운동장의 위에 있는 이들이 내려와 저 아래에 있는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한 방향으로 우리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의 곳곳을 누리며 삶의 행복을 누리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운동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더 이 세상이 살만하고 나의 삶은 가치 있으며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느리더라도 우리가 함께 정한 규범을 지켜가며 공정한 게임을 하는 그런 '착한 사람'들.

아프고 다친 이들에게 손 내밀어줄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나도 교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힘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공정한 사회예요. 규칙과 규범을 지키며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어 갈 수 있어요.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우리가 합의로 정한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해요.

우리 사회는 여러분이 지치거나 힘들 때 손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요.

그러니 사회에 나갈 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너무 나를 몰아붙이며 힘들게 살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경쟁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삶이 주는 행복과 선물을 충분히 누리고 살아가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힘들거나 아플 때 주변에서 손 잡아줄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니 여러분도 내 옆 친구의 아픈 손을 잡아주며 함께 걸어가며 착하게 살아가도 괜찮아요.

우리 사회는 착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따뜻하고 공정한 곳이니까요."


누군가는 나에게 너무 이상적인 꿈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난 평생 이렇게 착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겠다. 그리고 착한 꿈을 꾸며 살아가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 부유해지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시작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움조차 받을 손길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삶을 시작한 미혼모들을 돕고 싶고, 가족 하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보호 종료 아동 친구들에게 가족과 공동체를 선물하고 싶고, 홀로 살며 삶을 마감하는 독거노인 분들이 외롭지 않게 세상을 마감하고 사람답게 마지막 세월을 살다가 가실 수 있도록 돕고 싶다. 학교에서도 마음이 다친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돕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다 생을 마감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의 꿈이 다 이루어지지 못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 세상은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맡겨야지. 그것이 나의 꿈이다. 그렇다면 나의 성장과 노력이 의미 없지 않을 것 같다.


결국은 우리 예수님 가신 길 따라가는 그런 사람 되고 싶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낮은 자에게, 아픈 자에게, 가난한 자에게 향하셨다.

나는 그런 착한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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