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아이들이 시인이 되는 순간

감각으로 만나는 자연

by 여울샘

점차 시원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새파란 하늘이 눈부신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계절이 주는 호화로움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시간.

길지도 않아 붙잡고 싶은 가을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상쾌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로 많은 이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계절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국어 수업 시간.

시와 이야기를 읽으며 장면을 떠올리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국어 교과서는 주어진 시들을 감상 위주로 수업하도록 계획되어 있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을 아이들이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어 창작 시간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이 수업은 사실 미국 EMU에서 케이티와 함께했던 예술과 트라우마 워크숍에서 경험한 수업 방식이었다.

케이티는 일본의 전통 시를 창조하는 방식인 하이쿠로 시 창작을 경험시켜주었다.


"자연에서 걸으며, 하이쿠는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시킨다. 이제 나는 사람들의 말을 다르게 들을 수 있다. 진정성이 베인 가슴으로 하는 대화에서 사람들은 종종, 그것이 고통이든 희망이든, 영혼이 담긴 단어를 마치 하이쿠처럼 내뱉는다. 나는 영혼의 보석을 귀담아듣고 그들에게 다시 돌려준다.


진실 어린 대화를 깊게 나눌 때에도 우리는 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연 속에서 하이쿠를 지으며 현재의 감각을 누릴 때 가슴이 하는 말을 듣는 힘이 자랄 것이다. 하이쿠를 위한 준비 자세는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것이다. 우리 눈이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과정과 귀가 음악에 반응하는 방식은 같다.


하이쿠가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소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과 같다. 아름다움과 하이쿠를 짓는 순간 사회 정의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이쿠를 짓는 일은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기억 상실증에 걸리게 한 분주함의 구름에 감사의 빛을 내려 준다. 인간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덥혀 준다.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음에 집중하게 한다. 아름다움은 끝없는 풍요로움을 알 야채 개 한다. 다시금, 한 사람을 느끼게 한다."

- Katie와의 수업 중


2019년 춥고 건조했던 미국의 겨울, 우리는 침묵 속에서 해리슨 버그의 언덕을 걸었다. 눈이 내린 언덕을 걸으며 자연과 만났다. 시각, 촉각, 등 각각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모든 느낌을 기록했고, 그 느낌들을 통해 하이쿠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 속의 '나'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나'만이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고요함과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자연을 그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눈 덮인 언덕에 오래된 나무를 만났었다. 손으로 나무의 겉껍질을 만져보았다. 거칠고 딱딱한 표면에서는 강인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곳에서 추운 비와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왔던 것일까. 그 나무는 아래 작은 나무와 풀들을 키우며 든든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었다. 나무를 안아보니 나무 안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냄새와 오랜 세월 많은 생명을 품어온 그 나무속에서 할머니가 느껴졌고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시를 지었다. 할머니 나무와 아기 나무에 대한 시였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자연과 깊이 만나며 지은 시를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다시 2022년 가을날의 구름반 교실로 돌아오자. 우리 반에서는 감상 수업만큼 아이들이 직접 시나 이야기와 같은 문학 작품을 만들어보는 창작 수업을 많이 진행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무언가 받아들이는 시간은 너무 많은데 스스로를 표현할 시간은 많이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티와 함께 했던 수업을 구름반 친구들과 시작해보기로 결정하였다. 아이들이 가진 스케치북에 네 개의 큰 원을 그렸다. 그리고 각 원에는 눈, 코, 손, 귀라고 적어 넣었다. 각각 시각, 후각, 촉각, 청각에 집중하여 자연을 느껴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교정으로 나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자연물들을 자신의 감각으로 만난 후 느껴지는 모든 것을 단어로 모아보라고 이야기했다. 이 시간만큼은 친구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나 자신과 자연에만 집중해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우리는 침묵한 채 교정으로 나갔다. 우리 학교는 지어진 지 오래되어서 큰 나무와 정원, 다양한 꽃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걸음을 내딛으며 각자 자신이 만나고 싶은 자연 앞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놀랍게도 그 순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학교를 지켜준 나무를 만져 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키우고 있는 농작물 앞에 앉아 그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보는 아이도 있었다. 예쁜 꽃 앞에 앉아 유심히 지켜보기도 한다.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망울. 교사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 아이들 자체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데 이 아이들이 보는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순수함 그 자체인 아이들과 자연. 그들이 수업 시간 자연과 교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교사이다. 나는 이것이 교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로 자연을 기록해간다. 아이들이 가진 단어는 어른들보다 그 수가 적을 수는 있지만, 아이들의 영혼에서 나오는 순수함 덕분에 아이들이 지은 시는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어떤 꾸밈과 기교, 욕심도 없는 언어와 문장들. 나는 그 아이들의 언어를 사랑한다.


'맴~~~ 맴 매미'

'다양한 울음소리'

'찰랑찰랑'

'딱딱한 나뭇가지'

'풀떼기 냄새'

'까칠까칠'

'부들부들'


이렇게 아이들의 감각으로 기록한 단어들은 모여 하나의 시로 만들어진다.




'매미'


맴~~~ 맴 매미가 운다

왕~~~ 왕 매미가 운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다양하다

바로 이 무지개처럼



'자연의 도움과 가치'


바닥에는 이끼 끼고

흙 안에는 새싹 나고

땅 위에는 꽃 자라고

농사 짓고, 걷고, 만들고

쓰고, 먹고.....

과정을 거치면

모두 자연 덕분이야.

자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

그러니까 이 소중한 자연을

아껴주면 좋을거야.



'나무'


나무를 보면

나뭇잎이 찰랑찰랑

나뭇가지 딱딱


나무를 맡으면

풀떼기 냄새

잔디 냄새


나무를 만지면

까칠까칠

부들부들


나무의 소리는

맘에게 에에

지지지 지지


'착한 나무'


나무는 모든 것을 허락해요.

"너 위에 앉아 있어도 되니?"

"그래.."

이렇게 다른 생명들이 와도

모두 받아 주지..

하지만 사람들이

나무를 없애지..


아홉 살 아이들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가 완성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시에는 무엇을 빼거나 덧댈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둠 별로 작은 서클을 만들어 토킹 피스를 쥐고 자신이 만든 시를 나누기 시작한다. 시를 들은 친구들은 그 시의 감상을 몸동작을 통해 표현해준다. 아이들의 눈에 생기 있는 웃음이 번져간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은 모두가 시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인 셈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언어는 특별하고 소중하다. 24명의 시인이 있는 구름반. 그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깨끗한 언어를 지켜주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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