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3. 5:00
2022. 10. 3. 5:00
새벽의 기록
엄마에게 인생 첫 노트북을 선물했다.
엄마가 다닐 수 있는 컴퓨터 학원을 알아봐 주었고 엄마에게 5달간 1:1 컴퓨터 학원을 등록할 수 있는 비용을 드렸다.
그리고 엄마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엄마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몰랐다. 이렇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엄마에게 세상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였다. 스마트폰도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할 뿐이었다. 남들은 어렵지 않게 하는 인터넷 쇼핑, 배달 어플 사용, 온라인 장보기 등도 엄마에게는 먼 세계였다. 자식들이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를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핑계로, 이기적인 자식들은 엄마의 부탁을 멀리했다. 엄마는 아직도 시장에 가서 무겁게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인터넷 주문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 세대의 다른 엄마들처럼, 자식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삶에 이름표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엄마의 삶. 너무나도 주체적이고 당당한 성격, 책임감이 강한 성격을 가진 엄마였지만, 시대와 환경이 엄마를 자유롭게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30년 가까이 오빠와 내가 이렇게 장성할 동안 엄마의 꿈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왔다. 그러고 나니 엄마의 삶을 떠올리고 엄마의 성취를 떠올리자면 ‘자식’ 밖에 없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들, 꿈꾸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의미 있는 살아가는 딸. 모두 엄마의 자랑이었지만 엄마의 삶, ‘이영순’ 여사의 삶을 이야기하자면 엄마는 다시 작아지곤 했다.
이것을 알았기에 오빠는 자신의 역량을 통해 엄마와 ‘코칭’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아마 엄마가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와 도전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2달 정도였을까…. 엄마는 자신의 삶을 코칭 시간을 통해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삶을 다시 피워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빠와의 코칭, 수많은 독서, 과제를 하며 엄마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에게 많은 책을 선물했고 내가 공부하는 것 중 좋은 영상이 있으면 보내고는 했다. 엄마는 많은 도전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도전을 멈추기 시작했고 세상으로 나가기 두려워했다. 무엇이 엄마의 도전을 막고 있는지 우리도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온라인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배움의 기회를 가져왔다. 12년의 초중고 생활, 대학교, 온갖 연수, 책, 강의를 찾아다니며 나도 열심히 공부를 해왔던 것 같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학교’라는 나의 직장도 언제나 배움과 도전의 공간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했으니까. 그렇다면, 엄마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은 ‘배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단 추석에 받은 상여금을 보태 엄마에게 노트북을 선물했다. 엄마가 인생에서 처음 가져보는 엄마만의 노트북이었다. 노트북을 받고 인증샷을 보내며 정말 기뻐했던 엄마. 이제 도구가 준비되었으니 학원을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살고 있는 동네 주변에는 3개 정도의 컴퓨터 학원이 있었다. 전화를 해서 어떤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는지 알아보았다. 몇 군데 알아보니 1:1로만 수업을 진행을 한다는 학원이 있어서 그 학원에 등록했다. 수업도 월-금 5일 동안 진행한다고 한다. 초보인 엄마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했기에 엄마에게 학원 정보를 주었다. 엄마는 명절이 끝나고 스스로 학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고 컴퓨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엄마는 약 2주 동안 타자연습을 했다. 매일 타자를 쳤다. 때로는 2시간, 3시간 가까이 학원에 다녀와서도 타자 연습을 했다.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 쉬엄쉬엄 하루에 30분 정도만 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손목 스트레칭 영상도 보내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엄마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계속 까먹고, 틀린다면서 아쉬워했다. 그런 엄마에게 잠깐 하고 말 것이 아니니 편한 마음으로 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다행히 엄마의 선생님도 엄마를 격려하면서 잘 가르쳐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은 한글과 컴퓨터라는 책으로 문서 작성을 배우고 있다. 엄마가 컴퓨터로 문서 작성을 하다니…. 가능한 일이었구나. 무심했던 내가 엄마에게 미안해진 순간이다..
엄마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엄마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삶에 강한 희망이 생겼다는 것이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의 밝은 목소리에 놀라게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긴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컴퓨터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고 꽤 잘 해내고 있다는 것에 기쁨과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미 다른 계획까지 세워가고 있었다.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며 운동도 도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엄마가 2달 동안 컴퓨터 학원을 잘 다니고 적응하면 엄마에게 1:1 PT 수업을 등록해주기로 약속했다. 엄마는 나와는 성향이 달라서 어린 시절 꿈도 군인이나 운동선수였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운동 신경도 좋고. 엄마는 참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들(쇼핑, 배달, 은행업무, 비대면 진료)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MKYU에서 진행하는 찾아오는 디지털 튜터 서비스를 등록했다. 이 서비스를 등록하면 크지 않은 비용으로 찾아오는 스마트폰 튜터를 90분간 만날 수 있다. 엄마에게 이 세상이 더 이상 두려운 곳이 아니라 안전한 곳이 되기를.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되기를.
자식을 위해 자신의 30년을 모두 바쳤던 엄마를 위해,
앞으로의 30년은 엄마만을 위한 삶을 살아보라고 이야기했다.
못 다 피운 꿈을 이제는 피워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청춘은 지금! 인생은 55부터래!
지금은 엄마의 두 번째 20대야!”
오빠와 나는 그렇게 엄마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엄마를 돕고 있다.
이 넓고 기회가 많은 세상 속에서 엄마가
후회 없는 두 번째 20대를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미경 선생님 강의
< 인생 이력서 >
엄마의 이력서를 써보니 그저 밥벌이하는 사람으로 살았더라.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더라.
도시로 가서 양장점을 열고 싶었던 엄마, 책을 쓰고 싶었던 엄마,
엄마는 밥벌이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는 지역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이었다.
우리는 어디서든 빛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별자리 리더십’
자리 잡고 그 자리에서 빛나면 된다. 모두가 다 별이다.
이제는 위치는 상관이 없다.
“공부 안 하면 외곽이고 공부하면 내가 중심이다.”
1. 그래서….
2. 그럼에도 불구하고….
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있어도, 디지털 역량이 뛰어나지 않아도, 가족이 반대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하는 것이다.
다른 꿈을 꾸면
다른 사람이 된다.
나의 무한한 가능성과 우선 과제를 상기하기
0. 하나님과 매 순간 동행하며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간다.
1.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이들이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간다.
2. 2024. 1. EMU에 입학하여 세계의 체인지 메이커들과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며 성장한다.
3. 나는 예술을 통한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을 만들어간다.
4. 나는 수 천, 수 만 명의 어려운 이들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5. 나는 영어로 전 세계인들과 소통하며 나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다.
6. 이 모든 일들을 해가며, 삶과 자연, 사랑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7. 매일 5시에 일어나 아침의 행복을 누리자.
감사
1. 우리 가족을 회복시켜 가시고 성장시켜 가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2. 엄마의 삶을 바꾸어 가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3.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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