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록(彩錄)
사촌 동생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고향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거리가 멀어 버스는 오래 걸릴 것 같았고,
원하는 시간대의 기차표는 매진이거나
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워낙 예민한 성격인 나는
정말 피곤한 날이 아니고서야
이동 수단에서 잠을 자본 기억이 손에 꼽히는데,
창가가 아니면 먼 고향까지 가기에는 답답하여
차라리 비행기를 타는 것이 나을 듯 했다.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한 저녁 시간
비행기 창가 너머의 석양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로 마음이 요동쳤다.
죽음은 검은색이 아닌
주황색일지도 몰라
그리 깊은 추억은 아니어도
어린 시절 유난히 나를 잘 따라주던
하나같이 모두 예쁘고 소중한 나의 사촌 동생들,
다들 어느 정도 크고 난 후부터 왕래는 없었지만
불과 한 달 전쯤에도 봤었던 동생인지라
슬픔보다 더 큰 만감이 교차했다.
뭇 어른들은 '조금 더 먼저 갔을 뿐
좋은 곳에서 다시 함께 만날 것이다'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유독 아꼈던 손자라서 먼저 데려가신 것 같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와 동생은 고양이를 참 좋아했는데,
맛있는 과일을 마음껏 먹으며 냥이들과 재미있게
유유자적 놀고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이셨다.)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낯설고 무섭지만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사후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죽음은 검거나 잿빛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닌
주황색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동안에는 목숨의 값어치로
새빨갛고 붉은 열정들이 치열하게 타오르다가
마침내 저무는 해처럼 잔잔한 주황색이 되었을 때,
비로소 갖지 못했던 것들까지 안락하게 누리며
그렇게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제 색깔로 반짝이게 해주세요
누구보다 '나'를 기준으로 살아온 내 인생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바랐다거나
열심히 기도해 본 적은 딱히 없었지만
내가 먼저 사라질 수도 있고,
어쩌면 나보다 먼저 없어질 수도 있는 것들,
그럼에도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부디 오랫동안 제 색깔로 반짝이게 해주세요.
나의 알록달록했던 경험들이
빛바래지 않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색이 남기는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