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록(彩錄)
1년에 두어 번이나 갈까 말까 하는
머나먼 나의 고향 섬섬여수
(내 기억 속 마지막 슬로건은 '미항의 도시'인데,
성공적인 섬 박람회 개최도 역시 중요하니까..)
올해는 의도치 않게 2월부터
연간 방문 할당량을 초과해버렸지만
그만큼 얻어온 것들도 많았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냐고 묻거든
그리운데 안 그립다가 또 그립다.
간만에 가면 바다 짠 내음에 눈살 찌푸릴 거면서
도시에 있으면 그렇게도 바다가 보고 싶다.
초여름만 되면 평소에 찾지도 않는
하모 샤브샤브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이 정도면 그리운 건가?
나는 고향이 싫었는데,
누군가는 도피처가 부럽다더라
어릴 적 백화점 하나 없는
내 고향이 깡촌처럼 느껴지고
가족들과는 보다 멀리 떨어져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 말랑해진 나와 마주할 때면
한산하고 여유로웠던 정취가 이따금씩 생각난다.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고향'이
되려 도심 속 지인들에게는 다 내려놓고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도피처' 같아 부럽다더라.
얼마나 더 고단할지 모르는 삶에
청록색의 고향, 아니 도피처가 있다는 건
제법 듬직한 뒷배가 되어줄지도..!
내 사주에는 물과 나무가 필요해
살면서 믿는 건 많지 않지만
사주는 과학이라 철저하게 믿는다.
(n년의 연구와 역사는 무시할 수 없는 듯.)
최근 유행이던 챗 GPT로도 본 적 있고
유명하다는 철학관에 내돈내산도 해봤는데,
내 사주에는 불이 많아서
물과 나무를 가까이하면 좋다고 한다.
넘실대는 바닷물과 녹음 진 풍경 덕에
고향에 살았다면 공짜(?) 개운이었을 것을..
돈 주고도 못 사는 청록을 눈앞에 두고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고생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래도 걱정 마시라
향후 30년간 귀향 계획은 없으니,
가끔은 그리운 대로 두는 게 아름다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