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록(彩錄)
이건 내 주변 한정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 물었을 때
콕 집어 '여름'이라 대답해 준 사람이 아직 없었다.
나 역시도 그 계절이 여름은 아닐뿐더러
푹푹 찌는 7월 중순에 태어났으면서
여름을 아주 극도로 싫어했다.
안 그래도 평소 땀이 많은 편인데
무더운 여름이 오면 정신줄을 놓아버리고야 만다.
끈적끈적 습하디 습한 날씨와
마음까지 꿉꿉해지는 장마는 또 어떻고…
그러니 여름에는 히키코모리처럼 틀어박혀
기억에 남을만한 초록색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 테지.
여름이 싫다면서
초록색 여행은 왜 좋아?
사방에 초록색이 빼곡한 여행을
좋아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여름'마저 좋아한다는
열린 시선을 장착한 그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초록색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되었거든.
여름 여행은 정말 별거 없더라
더우니까 시원한 곳만 찾아다니면 되는,
그냥 흘러가며 초록색을 즐기면 되는 거였더라고.
게다가 적당하게 비 오는 날
나뭇잎 위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물방울은
초록색을 더 투명하고 반짝여 보이게 해준다는 걸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으니.
아, 그리고 그 사람은
여름의 초록색과 떼어놓을 수 없는
모기 친구에게 내 몫까지 수혈도 해준다!
(나는 원래도 모기한테 잘 안 물리는 사람)
그렇지만 결국에는
본능적으로 끌렸던 거야
내가 싫어하는 계절이었지만
여름의 초록색은 본능적으로 끌렸나 보다.
속이 시끄러워 발그랗던 나에게는
파릇한 초록색이 결국 필요했던 거지.
알면서도 시도해 볼 여유가 없었는지
진심으로 초록색의 필요함을 몰랐던 것인지는
또 한 번의 여름이 오면 깨닫게 되지 않을까?
다가올 여름에도
다음 해의 뜨거운 여름에도,
내가 여름을 너무 싫어하지 않도록
초록색 여행에는 꼭 함께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