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록(彩錄)
그리 길지 않은 나의 평생에
솜털까지 사랑해 줄 인연을 만났다는 건
쉽사리 잡기 어려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유독 내 얼굴 위에 하얀 솜털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게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다가갈 줄이야..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던 날
카페를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던 중
얼굴이 뚫려버릴지도 모를 시선이 느껴져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있는 힘껏 외면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내 옆모습의 8할을 차지하는 코와
그 위에서 빛을 받아 반짝거리던 솜털들이
꼭 고양이 같아서 열심히 감상 중이었다고 한다.
(2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최애 1위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건
단연 콧잔등 위 솜털이라며, 참 특이하다!)
우리는 귀엽고 순수한
연노란색 사랑을 하고 있지
그날 그이의 특이한 안목이
내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느껴졌던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이 있었는데,
'다시 또 이런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였다.
그 때묻지 않은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지 잘 알고 있어서
서로를 많이 웃게도, 또 울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걸 빼고는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귀여운 사랑을 표현해 줄 색은
펄펄 들끓고 있는 빨간색도 아니거니와
설렘 가득할 것 같아 보이는 분홍색도 아닌,
오로지 순수하고 여린 연노란색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누군가와 또 사랑을 할 수야 있겠지,
단지 그 사랑은 연노란색이 아닐뿐.'
이 세상 어떠한 것도
귀여운 걸 이길 순 없어
어떤 이의 외적인 예쁨이나 잘생김
또는 내면의 다정함, 친절함과 같은
많은 요소들이 매력으로 작용할 테지만
함께하는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미소 짓게 할 수 있을만한
가장 큰 원동력은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소한 부분이 귀엽다거나
혹은 그것마저 귀여워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 보시라.
그런 사소한 계기들로 하여금
당신은 연노란색의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첫날 빛나고 있던 내 솜털의 색깔이
검은색이 아니란 게 너무나도 다행이고,
그이에게 마냥 귀여워 보일 수 있다면
내 얼마든지 뽑지 않고 남겨두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