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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노랑] 그이가 사랑하는 건 내 콧잔등 위 솜털

채록(彩錄)

by 여운의 색


2024년 3월, 양평 앙덕리 카페 루루루


그리 길지 않은 나의 평생에

솜털까지 사랑해 줄 인연을 만났다는 건

쉽사리 잡기 어려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유독 내 얼굴 위에 하얀 솜털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게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다가갈 줄이야..


2024년 11월, 용산구 후암동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던 날

카페를 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던 중

얼굴이 뚫려버릴지도 모를 시선이 느껴져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있는 힘껏 외면했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내 옆모습의 8할을 차지하는 코와

그 위에서 빛을 받아 반짝거리던 솜털들이

꼭 고양이 같아서 열심히 감상 중이었다고 한다.


(2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최애 1위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건

단연 콧잔등 위 솜털이라며, 참 특이하다!)





우리는 귀엽고 순수한
연노란색 사랑을 하고 있지


2024년 4월, 분당 서현동 탄천산책로


그날 그이의 특이한 안목이

내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느껴졌던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이 있었는데,

'다시 또 이런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였다.


그 때묻지 않은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지 잘 알고 있어서

서로를 많이 웃게도, 또 울리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걸 빼고는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2024년 4월, 분당 서현동 탄천산책로


그 귀여운 사랑을 표현해 줄 색은

펄펄 들끓고 있는 빨간색도 아니거니와

설렘 가득할 것 같아 보이는 분홍색도 아닌,

오로지 순수하고 여린 연노란색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누군가와 또 사랑을 할 수야 있겠지,

단지 그 사랑은 연노란색이 아닐뿐.'




이 세상 어떠한 것도
귀여운 걸 이길 순 없어


2024년 6월, 송리단길 쇼콜라 팔레트


어떤 이의 외적인 예쁨이나 잘생김

또는 내면의 다정함, 친절함과 같은

많은 요소들이 매력으로 작용할 테지만


함께하는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미소 짓게 할 수 있을만한

가장 큰 원동력은 귀여움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6월, 판교 현대백화점 아트쇼케이스


혹시라도 사소한 부분이 귀엽다거나

혹은 그것마저 귀여워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 보시라.


그런 사소한 계기들로 하여금

당신은 연노란색의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2024년 5월, 용산구 한남동


첫날 빛나고 있던 내 솜털의 색깔이

검은색이 아니란 게 너무나도 다행이고,

그이에게 마냥 귀여워 보일 수 있다면

내 얼마든지 뽑지 않고 남겨두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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