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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사파이어 반지와 함께 엄마를 잃어버렸다

채록(彩錄)

by 여운의 색


2012년 7월, 쨍하고 파랗던 하늘


내가 3살이던 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셨고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했다.


아빠가 재혼하시기 전까지는

엄마의 고모인 고모할머니 댁에서 자랐는데,

덕분에 간간이라도 친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몰라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돼서

볼 수 있던 상황이 딱히 좋은 추억은 아니었지만.)


2012년 9월, 도깨비를 닮은 구름


7살 때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아마도 11살 무렵

고모할아버지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끼고 있던 새파란 사파이어 반지를 빼서 주고는


"엄마가 돈 많이 벌어 꼭 데리러 올테니

반지를 잘 간직하며 기다려 달라"라고 하셨다.


그 반지는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잃어버렸지.




누구를 잘 믿지 못하는 건
파란색 거짓말 때문이야


2015년 2월, 소노캄 여수


고작 11살이었던 나는

엄마가 손에 쥐여준 반지 말고도

과연 무엇을 지킬 수 있었겠는가?


엄마와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예뻤던 걸까,

누구나 그렇듯 어릴 때는 엄마가 필요했고

반짝이는 것 또한 자랑하고 싶었을 테지.


그 생각들은 그때의 나만 기억하겠지만

신나는 마음으로 학교에 가져갔던 반지는

결국 다시는 볼 수도 낄 수도 없게 되었다.


2015년 2월, 소노캄 여수


어린 나는 엄마와 끝끝내 같이 살지 못한 것이

내가 반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냥 엄마의 새파란 거짓말일 뿐이었다.


그렇게 훗날 살아가며 마주하는 누군가에게

파랗고 거짓된 기색이 느껴지는 것 같을 때면

어떠한 말을 내뱉더라도 믿지 않기로 해버렸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버리기로


2015년 6월, 구로구 신도림동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사파이어 반지를 잃어버린 김에

나도 다시는 엄마를 찾지 않기로 했다.


반지를 받았던 날 엄마는

하염없이 울고 있던 나에게

너무 많이 울지 말라고 하더라,

울어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나이를 먹고 보니

매정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게

운다고 해서 바뀌는 것들은 없었으니.


2015년 5월, 뚝섬한강공원


그럼에도 나는 울적한 날에는

최대한 많이 울고 빨리 털어내려 한다.


하지 말란 것을 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덜어냈더니

미워하는 마음도 자연스레 걷혀지더라.


가끔 내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미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 오래돼서인지

이상할 정도로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다.


아마도 나와 꼭 닮은 딸을 키워보기 전까지는

그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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