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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Nov 20. 2022

데이터로 살펴본 "Pick Me"와 "나야 나"의 차이

1인칭 대명사로 분석한 여자 아이돌 가사의 수동성 

프로듀스 101은 시청자가 직접 투표하여 순위권에 든 아티스트를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오디션을 보기 위한 오리지널 노래도 발매하여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자 아이돌을 뽑는 시즌1엔 "PICK ME"를, 남자 아이돌을 뽑는 시즌2엔 "나야 나"를 발매했다. 

그런데 두 노래의 가사 차이가 논란이 되었다. 여성에겐 "나를 뽑아달라"는 수동적인 목소리를, 남성에겐 "나야 나"라고 외치는 능동적인 목소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PICK ME" 가사를 보면 상대에게 계속 부탁을 하며 스스로 행동하진 않는다. 이런 수동성이 '나를', 'me'와 같은 목적격으로 잘 드러난다.

나를 느껴 봐요
Can you touch me
나를 붙잡아 줘
Can you hold me
나를 꼭 안아 줘
I want you pick me up
Pick me pick me pick me up



반면 "나야 나"의 가사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만약 여성 가수에게 주어질 가사였다면 "내 마음을 훔쳐 줘"라고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너만을 기다려 온 나야 나 나야 나
네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마지막 단 한 사람 나야 나 나야 나



이러한 비판에 이건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PICK ME" 가사만의 문제라고 대응하는 의견도 있었다. "PICK ME" 가사 자체가 너무 수동적인 것이 문제인데, 그 가사가 '우연히' 여자 가수에게 배정되었다는 의견이었다. 



그 의견을 확인해보기 위해 가수 성별에 따른 가사 데이터를 분석해보았다. 분석에는 랜덤 샘플링한 여성 가수의 가사 3,000개, 남성 가수의 가사 3,000개를 사용했다. 데이터 출처는 여기다. 분석에 사용한 전체 코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능동성은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수동성은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으로 드러난다고 가정하고 가수 성별에 따른 이들의 사용 비율을 비교했다. 간단히 분석하기 위해 형태소 분석기는 사용하지 않았고,  '내가', '제가', 'I'는 1인칭 대명사의 주격으로, '나를', '저를', 'me'는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으로 처리했다. 


물론 1인칭 대명사의 격만으로 수동성과 능동성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들의 TOMBOY 가사에 '날(나를)'이라는 목적격이 사용되었으나 "넌 못 감당해 날"이라는 맥락을 보면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렸다고 보긴 어렵다. 또 "네가 싫다 해도 (나는) 좋아"라는 문장엔 주격이 생략되어 있는 형태로, 현재 분석 방식을 적용하면 이 가사에 나타난 능동성을 포착하지 못한다.  


Look at you 넌 못 감당해 날
You took off hook
기분은 coke like brr
Look at my toe, 나의 ex 이름 tattoo
I got to drink up now, 네가 싫다 해도 좋아 


그러나 큰 경향성은 파악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해당 방법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1. 성별에 따른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비율의 평균 

각 가사의 1인칭 대명사 주격 사용 비율은 

(1)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빈도)} 값이 0인 경우 0으로, 

(2) 그 외의 경우엔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빈도)} 로 정의했다. 


이렇게 계산한 후 성별에 따른 평균을 확인한 결과, 여성 가수의 평균 주격 사용 비율은 0.432303, 남성 가수의 평균 주격 사용 비율은 0.501960였다. 평균적으로 남성 가수가 여성 가수보다 1인칭 대명사의 주격을 더 많이 사용했다. 남성 가수의 가사에 더 능동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값의 차이가 유의미한지 확인하기 위해 T-검정을 실행했고, p값은 3.245277856980764e-11로 0.01보다 작아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성별에 따른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비율의 평균 

각 가사의 1인칭 대명사 목적격 사용 비율은 

(1)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빈도)} 값이 0인 경우 0으로, 

(2) 그 외의 경우엔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주격 사용 빈도) +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 사용 빈도)} 로 정의했다. 


이렇게 계산한 후 성별에 따른 평균을 확인한 결과, 여성 가수의 평균 목적격 사용 비율은 0.394030, 남성 가수의 평균 목적격 사용 비율은 0.331707였다. 평균적으로 여성 가수가 남성 가수보다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을 더 많이 사용했다. 여성 가수의 가사에 더 수동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값의 차이가 유의미한지 확인하기 위해 T-검정을 실행했고, p값은 3.3785913481969937e-10로 0.01보다 작아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PICK ME"와 "나야 나"에 나타난 차이는 '우연한' 차이가 아니다. 이 두 곡 외에도 여성은 수동적으로, 남성은 능동적으로 그린 가사가 많이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여성 가수와 남성 가수의 가사를 비교해보면 차이가 더 잘 드러난다. 

사랑에 빠지는 상황에서 남성 가수의 가사(하이포 - Time Out)를 보면 1인칭 대명사의 주격을 사용하고, "넌 내꺼야"처럼 스스로 상대를 선택하는 능동성이 드러난다.

후회하지 마 나랑 놀자
어차피 인생은 한방 one shot
널 볼수록 열이 올라와 참을 수 없어
 cause you so hot
우린 딱 맞는 기분이야
하늘 위로 나는 기쁨이야
내가 찍었어 넌 넌 넌 내 꺼야


그러나 유사한 상황에서 여성 가수의 가사(시크릿 - Telepathy)를 보면 1인칭 대명사의 목적격을 사용하고, 내가 상대를 선택하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구원해"준다는 수동적 표현이 나타난다. 

운명인가 봐
나를 구원해줄 하나뿐인 내 사랑
너무 짜릿짜릿짜릿 해
아무 말하지는 않아도 그댈 느낄 수 있어
짜릿짜릿짜릿 해
떨어져 있어도 느껴져


이별해서 슬픈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성 가수의 가사(2AM - 너도 나처럼)에선 역시 주격을 사용하고, 단순히 "눈물이 흐른다"라고 표현하지만, 

웃는 모습만 보여주니까
내가 행복한 줄만 아나 봐
어떻게 웃어
내가 어떻게 웃어
니가 없는데
웃어도 웃어도 눈물이 또 흘러
너도 나처럼 이렇게 아픈지
너도 나처럼 눈물 나는지


여성 가수의 가사(티아라 - Cry Cry)에선 목적격을 사용하고, 상대가 "나를 울렸다"라고 표현했다. 


붉은 태양보다 더 뜨겁게
사랑했던 나를 울리지 마 uh uh
제발 나를 떠나가지 말아
돌아온단 니 말 믿지 않아



이렇게 실제 가사를 비교해보면 여성을 수동적으로 그리는 경향성을 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분석에 사용한 가사는 약 4년 전에 수집한 것이다. 최근 데이터로 분석하면 p값이 조금씩이라도 커지길 기대한다. 




Thumbnail Photo by charlesdeluv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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