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Nov 26. 2022

정말 '문송'한가요?

밈으로서 '문과' 분석하기

“문과”, “이과”의 구분은 항상 있어왔지만, 최근 들어 그 차이를 강조하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 골든벨 최후의 1인이 답 대신 “문과라 죄송해요”라고 적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드라마 ‘지정생존자’에서는 보좌관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문과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송합니다] 과학자 지진희 앞에서 작아지는 문과생


이렇게 취업과 관계없이, 무언가를 모를 때 그 이유를 자신이 문과 (혹은 이과) 출신이라는 것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밈으로서의 ‘문과’ (혹은 ‘이과’)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트위터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다. 모든 코드와 데이터는 Github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분석한 데이터는 2018년 1월 1일부터 2021년 9월 8일까지, “문과라서” 혹은 “이과라서”가 포함된 트위터다. 각각 총 6,339개, 5,848개의 트위터가 수집되었다.


“문과라서” 혹은 “이과라서”라는 말 뒤에는 어떤 말이 뒤따를까? 트위터 데이터에서 “문과라서” 혹은 “이과라서”라는 말을 기준으로, 그 뒤에 있는 텍스트의 형태소를 Kkma를 이용해 분석했다.


1. 동사 및 형용사 분석


먼저 가장 많이 사용된 10개의 동사/형용사다. 문과와 이과 모두에서 “모르다”라는 동사가 TOP 10에 들었다. 그러나 문과에서는 2번째로, 이과에서는 6번째로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이과라서”보다 “문과라서” 뒤에 “모르다”가 더 많이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문과라서” 뒤에 “모르다”가 사용된 비율은 13.81%, “이과라서” 뒤에 “모르다”가 사용된 비율은 8.00%다. 검증 결과 p값이 0.05보다 작아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했다.


즉, “문과라서 모른다”라고 말한 경우가 “이과라서 모른다”라고 말한 경우보다 유의미하게 많았다.


“문과라서”와 “모르다”가 사용된 예시 데이터다. 일상생활 관련 내용이 많다.

  

난 문과라서 세균같은 거 몰라.

아 진짜 웃기다 ㅋㅋㅋㅋ ㅠㅠ 원래 호그와트는 전자기기 반입 안 되는데 전파 같은 거 때문에 기기 먹통 된대요 문과라서 몰라 그렇대

근데결혼할확률이33퍼라는게말이되나 하고말고50퍼아니야무조건?? 나 문과라서 잘 몰라

나 약 먹었는데 약을 삼키자마자 바로 괜찮아진 것 가타 약 효과가 이렇게 빠른 걸까? 나 문과라서 이런 거 잘 몰라 ㅎㅅㅎ 아무튼 갠짜나..

아하!!� ..사실 난 문과라서 지구과학(??) 잘 몰라ㅎㅎㅎ���;


“이과라서”와 “모르다”가 사용된 예시 데이터다. 문과 예문과 달리, 특정 문과 과목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갈서 아니고 갈동이네 저 이과라서 지리 몰라요 양해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과라서…세계사는 잘 몰라요 ㅎㅎ

전 이과라서 문과 과목은 잘 몰라요…

아녜여 나 이과라서 사탐과목 잘 몰라요 ,,..”

사실 저는 이과라서 철학 1도 몰라요


“문과라서 모른다”는 표현은 일상생활의 궁금증, 특정 과목에 대한 무지 모두에 사용되지만, “이과라서 모른다”는 표현은 특정 과목에 대한 무지에서만 주로 사용된다. “문과라서 모르는” 영역이 더 크다.



“모르다”의 반대말인 “알다” 역시 문과 TOP 10 동사, 이과 TOP 10 동사 모두에 속한다. “모르다”와 반대로, “이과라서” 뒤에 “알다”가 쓰인 비율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진 않았다. (p = 0.915 > 0.05)


2. 명사 분석


다음은 가장 많이 사용된 10개의 명사다. 문과와 이과 모두에서 “수학”, “과학”이 많이 사용되었다.


“문과라서” 뒤에 “수학”또는 “과학”이 사용된 비율은 7.88%, “이과라서” 뒤에 “수학”또는 “과학”이 사용된 비율은 5.40%다. 검증 결과 p값이 0.05보다 작아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문과라서” 뒤에 “수학” 또는 “과학”을 언급한 경우가 “이과라서” 뒤에 “수학” 또는 “과학”을 언급한 경우보다 유의미하게 많았다.



예문을 살펴보면, 문과라서 수학이나 과학은 잘 못한다는 내용이 많다.
  

저약간 문과라서 중간에 나오는 과학용어들 보면 머리가 멈추기는 한데 ㅠㅠ

근데 사실 나 뼈문과라서 수학은 젬병임

전 뼈문과라서••• 과학 수학적인 거 나오면 머리가 멍해요 ㅎㅎ휴ㅠㅠㅠㅠㅠ(ᵕ̣̣̣̣̣̣﹏ᵕ̣̣̣̣̣̣)


반면에 이과 예문에서는 이과라서 수학이나 과학을 잘한다, 좋아한다, 잘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많다.
  

중요한 건 저 이과라서 수학 잘해야 하는데..

이과라서 맨날 수학 과학만 풀었지 외우면서 공부한 적이 오조오억년 전인데…

네네 전 수학 좋아합니다 태생부터 이과라서



그렇다면 대표적인 문과 과목인 “국어”, “영어”의 언급량은 어떻게 다를까? 밈으로서의 “문과” 혹은 “이과”가 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면, 이번엔 이과가 문과보다 “국어” 또는 “영어”을 유의미하게 더 많이 언급해야 한다. 이과라서 국어나 영어는 잘 못한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과, 이과 모두 “국어”나 “영어”를 언급한 경우가 매우 적었고, 둘의 차이는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p = 0.663 > 0.05)


이외에도 문과는 명사 “이해”를, 이과는 명사 “말”을 많이 사용했다.
“문과라서”와 “이해”는 주로 “문과라서 이해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같이 사용된다.
  

아이쒸…. 뭐라는 건지 1도 이해안가는 거 정상 맞아요? 내가 문과라서 그런거야?

저 문과라서 40퍼센트만 이해햇어요

문과라서 저게 먼 소리들인지 이해할수없음 차라리 공자맹자도가를 외울래요


“이과라서”와 “말”은 주로 “이과라서 말을 유려하게 잘 못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같이 사용된다.
  

파워 이과라서 표현력 빵점인데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

내가 말주변 없는 이과라서 이런 주제가 나올 때 마다 내 주장을 제대로 글로 못 쓰는 거 같아서 답답함 ㅋㅋ…

근데 이과라서 말솜씨가 부족해ㅠ



3. 결론


밈으로서의 ‘문과’와 ‘이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밈으로서의 ‘문과’  

이과 과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이과 지식을 잘 모름

수학과 과학을 못 함

이해력이 부족함


밈으로서의 ‘이과’  

문과 과목을 잘 모름

수학과 과학을 잘하거나 좋아하거나 잘해야만 함

말솜씨가 부족함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밈으로서의 ‘문과’와 ‘이과’가 동등하게 서로의 분야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문과’가 ‘이과’보다 모르는 게 많은, 좀 더 부족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러한 밈 때문일까? 실제로 한 인류학과 교수님께 아무 맥락 없이 “문과세요?”라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이에 반발하여 (다소 격하지만) “트윗타래 따라가니 아주 가관이다. 문송하니 뭐니하다보니 이제 문과는 놀림거리가 되는 멸칭이 되었네. 장난으로라도 하지말자. 이제 이 XX들이 인류학 박사님 한테 문과세요. 이 XX 하는 지경에 이르렀네.. 저 XX들은 인류학이 뭔지 짐작이나 할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서두에 언급한 골든벨 ‘문송’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낮은 취업률 때문에 ‘문송’하던 문과가, 잘 모르는 이과 지식을 봐도 장난스레 ‘문송’해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모르는 걸 볼 때마다 모르는 이유를 ‘자신이 문과 출신이어서’로 돌리다 보니 이런 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과는 ‘이송(이과라서 죄송)’해하는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기생충 한줄평이 논란이 된 적 있다. 한줄평의 ‘명징하게 직조’했다는 표현이 현학적이고 알아들을 수 없다는 논란이었다. 그렇다면 ‘명징’과 ‘직조’의 뜻을 몰랐던 이과들은 자신이 이과 출신이라 모른다며 ‘이송’해했을까?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충격과 공포의 맞춤법’을 봐도 자신이 이과라서 그렇다며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항상 자신이 문과 혹은 이과 출신이어서는 아니다. 모르는 걸 죄송해하지 않고, 모르는 이유를 모두 자신의 출신으로 돌리지 않는 건강한 밈이 유행하길 바란다. 




Thumbnail Photo by Syd Wach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데이터로 살펴본 "Pick Me"와 "나야 나"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