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중반부터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물론 여행을 가거나 가끔 외주 업무나 전시로 일이 바빠지면 브런치 업로드가 소홀해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22년 마지막을 앞두고 연말에 2주 넘게 글을 올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노느라 아무것도 안 한 거지만 이를 대변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호주는 크리스마스를 기준으로 휴가철이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넘게 거의 모든 사람이 휴가를 보낸다.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이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하며 선물을 사고 모두 다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게 호주의 전통이고 문화이다.
회사도 모두 쉬고 카페와 식당은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문을 닫고 휴가를 가는 곳도 있다. 이렇게 모두 쉬다 보니 직원들도 자동으로 강제 휴가이다. 내 주변만 봐도 연말과 연초에 휴가를 보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짧게라도 무조건 다 쉰다.
안 그래도 일하기 싫은 연말에 여행을 가든가 가족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던가 밀린 드라마 정주행을 한다든지 각자만의 방식으로 연휴를 보낸다.
내 남편도 2주간의 휴가를 갖게 되었고 나 또한 함께 강제로 휴가를 즐겼다. 호주에서는 휴가가 시작되면 업무와는 일체 단절된다. 대신 업무 중에는 친구에게 메시지 보낼 1분의 여유 시간도 없이 빡빡한 일정이 많다. 그저 열심히 일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뿐이다.
주변에 거의 모든 사람이 쉬기 때문에 함께 여행 일정 짜기도 쉽다. 어차피 모두 다 쉬는 걸 알기에 우리는 친구들과 미리 여행을 계획하여 연말 마지막 주를 캠핑장에서 보냈다. 캠핑장에는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와 수영장, 게임룸 등을 왔다 갔다가 하며 즐기고 부모님들은 편안하게 캠핑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평화롭게 휴가를 보냈다.
호주에서 연말이 휴가철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보통 여름휴가가 길듯이 호주도 여름휴가가 더 길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호주는 12월부터 2월까지가 여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말에 크리스마스 겸 여름휴가 등 모든 게 다 겹치며 휴가철이 된다.
그리고 다들 얼마나 휴가가 길면 12월과 1월에 캠핑장과 휴양지는 최소 5박에서 7박을 기준으로 삼는다. 짧게라도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일찌감치 1월 여행은 포기했다.
2022년 마지막 2주 동안 나와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정말 놀기만 했다. 마치 학원 안 다니는 초등학교 방학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호주에 살다 보면 호주의 시스템이나 문화에 부딪히며 곤란한 상황에 마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연말에 길게 갖는 휴가는 정말 좋은 문화인 것 같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족과 친구들과 따뜻하게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충전하면 다시 업무에 복귀하여 열심히 일할 마음이 생긴다.
나도 잘 쉬었으니 2023년을 다시 활기차게 달려보려고 한다. 작가의 서랍에 넣어놓고 올리지 못한 글이 너무 많다.
<식음 전폐하며 입학한 호주 대학, 그 과정을 이야기하다>
<호주에서 삶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대학 생활 편)>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해야 내 감정도 존중받는다>
<새벽 3시에도 먹을 수 있는 호주 야식 HSP>
<언제나 반값 세일, 생각보다 물가 저렴한 호주 슈퍼>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작가의 서랍 안에 고립된 글들이다. 이제 하나하나 열어 보려고 한다. 나는 아직 2023년에 크게 다짐한 것은 없다. 일단 하나씩 해보면서 목표를 세울 것이다. 지금 한창 여름인 호주는 1월까지 연휴를 보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나도 1월까지는 이 뜨거운 여름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보낼 것이다. 부스터를 너무 빨리 써버리면 쉽게 지칠 수 있다. 적당한 때를 노려보겠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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