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이잖아."
멜버른 사람들이 멜버른의 이상한 날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주 하는 말이다. 이만큼 멜버른의 날씨는 평범치가 않다. 겨울인데 갑자기 더워지기도 하고 여름인데 갑자기 추워지기도 한다.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가 해가 쨍쨍해지고 가끔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며칠 전에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 우리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도보로 7분 거리이다. 날이 흐리긴 했지만, 비 소식은 없었다. 집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났다. 바로 5분만 걸어가면 기차역이지만 도저히 걸을 수가 없는 양의 비가 쏟아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홀딱 젖은 채 간신히 다리 밑으로 피신했다. 호주는 기차 배차 간격이 15~20분으로 꽤 길기 때문에 기차를 놓칠세라 조금 가늘어진 빗줄기를 뚫고 기차역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비 맞은 몸을 정리하기 위해 기차역 대기실에서 짐을 내려놓고 코트에 묻은 비를 털어 냈다. 그런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해가 내리쬐며 심지어 눈이 부시기까지 했다. 기차는 예정 시간보다 늦어졌고 하늘의 구름이 마치 CG처럼 빠른 속도로 걷히더니 파란 하늘이 나오고 햇살이 나에게 쏟아졌다.
마음속으로 깊은 짜증이 몰려왔다. 지금 장난하나.
멜버른에 살아 봤다면 이런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매일 날씨가 이상한 건 아니다. 그저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멜버른의 평범한 일상이다.
원래 멜버른 날씨는 이렇게 유별나긴 하지만 요즘 부쩍 비정상적인 기후 현상을 보인다. 현재 12월인 멜버른은 한여름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눈이 내리고 한파가 몰려오듯이 멜버른은 더운 여름이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12월 중순인 한여름에 아직도 패딩을 입고 다닌다. 오죽하면 플리스가 지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일상복이며 기모 바지와 기모 후드티는 여전히 옷장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며칠 전에 한국에서 친구가 왔다. 친구가 말하기를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날씨라 하였다. 이 말은 즉 멜버른이 현재 더운 여름 날씨가 아닌 겨울 날씨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가도 패딩 입은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다 또 갑자기 더워진다. 지난주는 32도로 무척이나 더웠는데 이번 주는 6도까지 내려가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전날은 패딩을 입어도 다음 날은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가진 곳이 멜버른이다.
이제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이다. 멜버른의 크리스마스는 사람을 힘들게 할 정도로 항상 더웠다.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더웠던 것밖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무더운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선선할 것 같다. 여름옷이 아닌 가을 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이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여름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굉장히 낯설었는데 이제는 더운 써머 크리스마스가 그립다. 하루빨리 여름다운 여름을 맞이하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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