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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Dec 12. 2022

호주에서 삶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워킹홀리데이 편)

호주에서의 삶은 신기하다. 1년 365일 매일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흘러가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여유롭게 느껴진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2013년 호주에 처음 왔다. 한국에서 대학교도 다녔고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회의적인 현실에 부딪혀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호주로 오게 되었다.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며 돈을 모아 그다음 해에 호주 멜버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시골인 골드코스트에서 처음 호주 생활을 시작했고 아르바이트하며 주 5일 하루 평균 8시간을 일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지만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건 온전히 나 혼자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나는 호주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나의 어떤 행동으로 충격을 받았었다.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많이 일할 땐 10시간 일해서 늦게 끝날 때도 있었고 한가할 땐 5시간만 일해서 오후 3시엔 집에 갔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에 가면 나는 여유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이 일찍 끝나 집에는 왔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라 공용 거실에 앉아 멍하게 있는 나 자신을 보고 조금 슬프게 느껴졌었다.



한국에서 뭐가 그렇게 바빴길래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없었고 여유 시간이 없었던 걸까. 오후 3시부터 주어진 자유 시간을 활용할 방법을 모르는 나 자신을 보며 안타까웠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호주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 당시에 호주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일하다가 그만두고 호주 온 사람이 많았다. 적어도 1년 이상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더 많은 경험과 공부를 하기 위해 호주에 왔다고 했다. 이들도 모두 나와 같이 호주에서 일을 했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놨었다.



한 번은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호주에서 지내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고 했다. 내 삶이 이렇게 걱정 없이 재밌게 잘 지내도 되는 건가? 하며 행복을 느끼는 동안에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현실의 재앙 때문에 불길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했고 예상치 못할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도전과 시도를 멈추지 않았었다. 호주에 와서는 비교적 단순 업무를 하며 열심히 번 돈으로 월세도 내고 생활비도 충당하며 월에 200만 원 이상 저축할 수 있었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노동의 강도와 시간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그에 비해 많은 돈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호주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사고 복지 또한 잘 되어 있는 건 맞지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한국에서 쌓은 사회 경험과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호주에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에 합당한 돈을 받은 것이다.



뭐가 낫고 좋은지만 따지지 말고 자신의 삶에 본인이 주체가 되어 결정하고 판단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지내는 게 우선이다.








모든 게 서툴고 어색했던 사회의 첫걸음을 한국에서 견디며 배웠기 때문에 호주에 와서도 일에 잘 적응했고 내가 일한 노동의 대가를 마땅히 받을 수 있었다. 만약 경험이 없고 내가 마냥 서툴렀다면 호주에서 번번이 일에서 잘리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돈을 모으기는커녕 한국 친구들과 한국말만 하며 지내다가 나의 호주 생활이 끝날 수도 있었다.



호주 삶이 마냥 여유롭고 한가하기만 한 건 아니다. 영어가 일단 제일 첫 번째 난관이고 지내다 보면서 알게 되는 호주 문화를 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지만 호주에 처음 왔을 때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건 온전히 나 혼자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내 삶의 의미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시간과 돈도 그 가치에 따라 할애했다.







한국에 있으면 가족, 친척, 친구, 직장과 얽힌 일정이 많다. 명절, 결혼식, 경조사 등 반드시 가야 하는 행사도 있고 시기마다 생기는 약속이 있다. 그런데 낯선 외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온전히 혼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고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한국에서도 혼자면 시간이 넘쳐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 가족과 친구를 두고 잠시 떠나온 워킹홀리데이가 왠지 굉장히 더 여유롭게 느껴진다며 마냥 상대적으로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호주에 처음 왔을 때 여유를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뭘 하든 그 어떤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오후 3시에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본다 한들 나를 한심하게 보는 사람이 없고, 내가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나를 흉보는 사람이 없고, 내가 민낯으로 다녀도 자신을 꾸밀 줄 모른다며 지적하는 사람이 없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내 직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옷도 잘 안 사게 되고 화장품에도 사치를 안 부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만 소비하게 되었다. 내 삶의 의미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시간과 돈도 그 가치에 따라 할애했다.







내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지낸 지역은 골드코스트이다. 이곳은 인구가 적으며 논과 밭은 없지만 도시 이미지와는 단절된 곳이다. 해변으로 둘러싸인 휴양지이며 은퇴한 분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골드코스트에 있다가 멜버른으로 갔을 때 이전에 입던 옷이 전부 후줄근하다는 걸 깨닫고 거의 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호주에서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건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누구와 어울리고 어떤 형태의 삶을 지향하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뭐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이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주변이나 다른 곳에서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조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선 이게 되는데 호주에선 이게 안 된다고?"


"OOO 지역은 $OO 준다는데 여긴 이것밖에 안 준다고?"


"여기는 이렇다던데."


"여기 가면 돈을 많이 번다던데."


"OOO 카페보다 여기는 시급이 낮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가는 사람 중에는 이를 발판 삼아 학교에 간다거나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1년 동안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러 오는 건데 남의 말과 시선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호주의 문화와 환경을 주체적인 생각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불평과 불만을 늘어놔도 되지만 안 좋은 게 있으면 스스로 판단하고 나아갈 길을 정해야 한다. 굳이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더 나은 환경과 조건을 찾아봤으면 한다. 그리고 누가 뭐라 하던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집중하고 새로운 경험을 밑거름 삼아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이상에 도달하길 바란다.







가족과 친구가 없는 타지에 산다는 건 외롭고 어려운 일이다. 몸이 아프면 병원도 제대로 갈 수 없고 마땅히 기댈 곳도 없어 더 서럽게 느껴진다. 친구를 사귄다 한들 다시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지역 이동을 하여 인연이 오래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하는 게 생기는 것일 뿐이다. 뭐가 낫고 좋은지만 따지지 말고 자신의 삶에 본인이 주체가 되어 결정하고 판단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지내는 게 우선이다.







호주에서 지낸다는 게 파라다이스처럼 마냥 행복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어떤 걸 포기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면 한국이든 호주든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호주에서 삶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이유(대학 생활 편)>입니다. 대학 입학 과정부터 졸업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풀어보겠습니다.



참고로 위의 모든 사진은 골드코스트와는 무관한 사진입니다. 제가 워킹홀리데이를 보낸 2013년이 너무 예전이라 사진을 찾기가 어려워서 최근에 호주에서 찍은 사진 중 그나마 골드코스트와 비슷한 분위기를 찾아서 올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울아트(Yeouul Art)ㅣ 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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