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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Apr 11. 2022

호주에 살면 좋은 점이 뭐예요?

워킹홀리데이로 시작해서 정착하기까지


2013년 나는 호주에 처음 왔다. 재수까지 해서 힘들게 입학한 대학교를 자퇴하고 호주에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학창 시절에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을 가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미 그 마음가짐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별생각 없이 간 대학에서 나는 또 똑같은 굴레에 갇혔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계속 이대로라면 나의 20대가 낭비될 것 같아 나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나는 모아둔 돈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많은 영어권 나라 중에 호주를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20대 초반부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모아두긴 했지만 유학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누릴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가 있기에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면 돈도 모을 수 있고 영어 또한 익숙해지리라 생각했다. 내가 둔 후보지는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였다. 뉴질랜드는 추운 날씨이며 인구가 적고 뭔가 심심할 것 같았다. 캐나다는 생각보다 절차가 복잡해 보였다. 결국 나에게 남은 마지막 후보지는 호주였다. 별다른 조건 없이 비자 신청을 하고 신체검사만 받으면 갈 수 있다.


내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선택한 지역은 골드 코스트였다. 이곳을 선택한 데에 딱히 이유가 있진 않았다. 나는 그때 당시 거의 쉬는 날 없이 일했기에 이것저것 정보를 리서치할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유학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추천해 주는 곳으로 선택했다. 일단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 2개월 동안은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데미페어를 했다. 데미페어는 호주 가정에 머물면서 숙식을 제공해 주는 대신 주 20시간 정도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이가 많아 일손이 부족한 호주 가정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영어와 호주 문화에 낯선 사람들은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호주 문화를 익히고 영어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렇게 얘기로만 들으면 정말 환상적인 프로그램이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복불복이 존재한다. 어떤 가정에 배정되는지에 따라 다르다. 그렇지만 그 가정도 같은 입장이다. 어떤 사람이 가정으로 배정되는지에 따라 다르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고
호주가 미치도록 좋아서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도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기에
더 나은 환경을 선택한 것이다.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골드 코스트에서 보낸 9개월은 정말 천국이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의심돼서 불안할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개월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돈은 역시나 부족했고 영어 실력 또한 너무나 형편없었다. 대학 입학을 위해 나는 멜버른으로 가서 영어 공부를 했다. 어느 정도 조건이 갖춰지고 무사히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비자가 없는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전시와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20년에 결혼을 하면서 호주에 다시 돌아와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호주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외국에 산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나는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도 아니고 호주가 미치도록 좋아서 정착하기로 결심한 것도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기에 더 나은 환경을 선택한 것이다.





호주에서 지낸 기간이 길다 보니 주변에서 호주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다.


"호주에 살면 좋은 점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특별히 답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뜸을 들이다가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한다.


"그냥... 좋아요."


나의 이런 성의 없는 답변을 들은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한다.


"그럴 것 같아요. 그냥 좋을 것 같아요."


호주에 산다는 건 그냥 그런 것 같다. 특별히 화려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지 않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더 궁금해할 사람들을 위해 이런 추상적인 문장이 아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나도 한국에서 호주로 온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호주에 사니깐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그러면 모두 다 공통적으로 답하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나 또한 호주에 와서 가장 마음이 편했던 것이 눈치 보지 않는 것과 시선에 의식하는 않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입든 화장을 어떻게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영어를 못 하든 어디에 살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남의 시선에 의식하는 시간과 걱정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져 조금 더 풍요로운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호주의 삶을 떠올리면 항상 연결되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 또한 빠지지 않고 사람들 입에서 나온 대답 중 하나였다.


'여유'


호주의 삶은 여유롭다. 하루에 같은 24시간이 주어지고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공휴일이 현저하게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어디에 살아서 좋다기보다는
각자의 삶의 방식과 환경에 맞춰
자신만의 행복한 형태의 삶을 만들어가면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힘들지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니 자신에게 맞는
현재와 미래를 선택해서 살아가야 한다.



일단 일상에서 일의 연장선이 없다. 퇴근과 동시에 모든 일이 스톱된다. 이렇게 들으면 너무 좋다 하겠지만 일을 하는 동안 주어지는 업무량과 책임감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힘들게 일하고 푹 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로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보통 집으로 퇴근한다. 회식은 정말 특별한 날에만 주어진다. 평일에는 쉽게 약속도 잡지 않는다. 평일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면 주말에는 모두 즐기며 휴일을 보낸다. 브런치 카페를 가고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한 주말을 보낸다.


이렇게 일과 일상에 시간과 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기에 우리의 뇌가 쉴 땐 충분히 쉴 수 있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 밖에도 호주에서 지내면서 좋은 것은 너무나 많다. 그런데 사실 한국에 살면서 좋은 것도 너무너무 많다. 어디에 살아서 좋다기보다는 각자의 삶의 방식과 환경에 맞춰 자신만의 행복한 형태의 삶을 만들어가면 된다. 물론 이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힘들지라도 어쨌든 우리는 모두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니 자신에게 맞는 현재와 미래를 선택해서 살아가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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