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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Apr 02. 2018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作


10대때, 미래에 대한 동경에 마음은 항상 부풀어있었고 부푼 마음 탓에 여러 날 동안 밤잠을 설쳤다.
아득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 속 나와, 혼자 밀애(密愛)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덧 나는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다.
내가 사랑하고 꿈꾸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어떤 삶을 꿈꾸었는가.
막연하게 나는 스무해가 넘으면 그저 지금보다 훨씬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거라 생각했다.

"내가 싫어하던 겁쟁이인 나는 없을거야.
세상에서 달리기가 제일 싫고, 체육시간이 제일 무서웠던 겁쟁이인 나는 없을꺼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모로 가도 나는 글만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달리기를 못하며, 사회 생활에서 종종있는 체육대회에 숨기 급급한 겁쟁이었으며
내가 꿈꾸던 프리랜서 글쟁이의 삶과 정 반대의 월급쟁이의 못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걸 자각하고 나서 부터인가, 인생이 참으로 지겨워졌다.
'그래봤자 니가 얼마나 살았다고 벌써 그런말을 하니' 라는 부모님의 타박에도
나는 지겹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렇다고 그만 살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쳇바퀴돌듯 반복되는 이 일상의 틀을 깨고 싶었다.

연차 하나도 쉽게 내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직장인인 나는, 도망가고 싶을 때 마다 책 속으로 뛰어들었다. 못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책을 통해 회피했다.


“지금 아니면 떠나지 못해. 나이가 들면 더 떠나기 힘들어 질거야.”


한 친구가 예전에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짐을 꾸려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친구.
그때도 안정을 추구하던 나는 그 무모함이 참으로 부러웠다.
지금도 그 친구는 여러 나라를 겁없이 방랑한다.


어렸을 때 부터 역마살이 껴 있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 친구가
몇년 전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내게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후로 난 미친듯이 여행책만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어든 여행책이었다.
이 책은 제목이 나의 일상과 이질감이 느껴져 맘에 들었다.
모든 요일의 여행? 이라니,
월화수목금토일, 단 하루도 자유롭지 못한 나에겐 허황된 꿈같은 이야기었다.
반신반의한 채로 책을 읽었다.


“사는 시간이 따로 있고 삶을 증언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법이다.
.
.
발작적으로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 버스를 탔다.
이렇게 살아야 할까 매일 고민을 하면서도 결국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출근길 버스 안에서
졸고 있었다. 삶은 엄청난 결단을 내리지 않아도 그냥 살아지는 것이었다.


나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냥 살아지는 삶을 살고 있는 나.
눈을 뜨면 출근이고, 일하는 동안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다시 일을 하고,
퇴근하면 허한 맘을 감출수가 없는 20대의 흔한 직장인.
다들 힘들기에 나만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없고,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거 같은데 그만 둔 후의 삶도 보장되어 있지 않아 옴싹달싹 못하는 ….

저자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던 도중, 한달의 휴가를 받아 도쿄행 티켓을 구매한다.
충동적일지라도, 그녀 속으로도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 까지 읽고 나는 생각했다.

흔한 여행기겠구나.
현실에 묶여 어디 갈 수도 없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꿈같은 이야기나 훔쳐보며 자유를 꿈꿔야 겠구나, 라고.

근데 그런 나의 생각은 100% 오산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여행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최선책으로 생각해서 떠났고,
떠난 곳에서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고리타분하고 흔한 여행책.
하지만, 이 글은 저자의 여행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다른 여행책들처럼 여행에 대한 로망만을 남겨주는 건 아니다.



자신이 떠나온 여행에 대한 반성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유명한 여행지를 검색하여 미리보기로 찾아 본 후
본편을 보기 위해 그 나라로 떠났지만
그 곳의 정취를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언제 이 곳에 다시 와보겠냐는 마음으
장소 곳곳을 조급한 마음으로 둘러보던
자신의 서툰 여행에 대한 반성.



대단한 무언가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유명한 음식점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인증샷을 찍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과 자신의 취향과 자신의 속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며,
여행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

떠올려 보았다.
팍팍하고 급하게 사는 일상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도,
여행지에서는 왜 그런 모습으로 여행하고 있는지를.

반대로,
왜 여행에서는 여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일상에서의 여유로움은 사치로 치부하는지를.



책을 마무리하며 모든 요일의 여행, 이란 뜻을 조금이나 알 것 같다.
모든 요일을 여행하는 마음처럼, 천천히, 느리게, 여러번 곱씹으며 ….
내가 주체가 되는 일상을 살라는 뜻.
어쩌면 원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안에서 행복을 찾을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여행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무료하고 지친 일상에,
산란한 마음에,
따뜻한 봄 바람이 살랑거렸다.






“첫 사랑과 첫 여행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책의 이 구절을 읽는데,
17살 처음 떠난 나의 유럽여행이 떠올랐다.
7박 8일 간의, 짧은 여정 속 기록된 나의 여행 사진을 조금이나 풀어보고자 한다.



이 여행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했는가. 떠올려보면
시간이 급급하고 짜여진 일정에
카메라 셔터만 누르느라 바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수한 시간이 흘러도 이 때의 날씨, 공기, 그 날의 기분.

사소한 순간까지도 잊을 순 없는 건

찰나의 순간마저 찬란했던 첫 사랑처럼,
서툴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첫 여행이기에
저자의 말처럼,
작의 미숙함은 언제나 용서되기에.
그래서 첫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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