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作
2016년 9월, 가족끼리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언니와 머리를 맞대며 여행지를 고르던 중, 우리의 우선순위는 단연 부모님이었다. 여행의 테마는 '부모님이 편안한 여행'. 여러 여행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한 곳은 일본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이가 지긋한 부모님에게 장시간 비행은 너무 무리였기 때문이다. 적당한 여행비용도 한몫을 했다. 다만, 루트를 직접 짠 자유여행으로 가고 싶었으나 언니와 나도 초행길이었으며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이란 부담감에 우린 패키지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떠난, 오사카, 교토…. 예전부터 느낀건데 패키지 여행은 짜여진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곳 정취에 녹아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목적지에 발을 딛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들리는 "이동할게요-!" 란 가이드의 목소리에 여행객들을 발길이 빨라진다. 다음 장소로. 다음 장소로, …. 주어진 시간 내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가이드의 일이기에 이해는 하지만, 뭐든 급하게 하다 보면 어딘가 체하고 탈이 난다. 여행 전 이번 여행도 혹여나 그러면 어쩌지, 싶은 걱정이 앞섰으나 다행히도 이번 가이드는 그런 패키지 여행에 신물이 난 우리의 마음을 미리 읽곤 넉넉한 자유시간을 제공하였다.
떠나기 몇 주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짐을 챙기기 바빴다. 일을 마치고 전화를 할 때면, "이걸 챙겨야 되고, 저걸 챙겨야 되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았는데 뭘 그렇게 서두르냐, 고 타박하다가도 그만큼 이 여행을 기대하고 계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맘 한켠이 시큰거렸다. 대망의 여행 전 날, 우리 중 그나마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언니에게 몇 주 전부터 바리바리 싼 짐을 확인받는 시간이 왔다. 숙제를 검사 맡는 아이들처럼 일렬로 선 우리 셋. 첫번째, 단촐한 나의 짐은 무사통과였다. 두번째 순서인 아빠의 짐가방안에는 약 봉투가 가득했다. 여행가서 아프지 않기 위해 자신이 먹던 약을 포함해서 불필요한 상비약까지 한 가득이었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캐리어를 열기 전 부터 뭐가 그리 불안한 지 말 수가 부쩍 늘어났다. "엄마가 다 확인했는데 뺄 게 하나도 없어." "생각해보면 다 필요한 거야." 등등,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말이 많아졌던 이유에 대해.
엄마의 가방 안은 우리 셋을 경악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일본 음식이 혹여나 입맛에 맞지 않을까 싶어 라면과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을 캐리어에 한가득 쑤셔넣어 캐리어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진동했다. 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인상을 찌푸린 언니의 얼굴에 입을 다문 엄마는 그때부터 주구장창 언니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공항에 이건 통과가 되니 마니, 한참동안 둘은 투닥거렸고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 비행기에 올라탔다. 큰 진동을 내며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 뒤 그제서야 난 이 여행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탄 비행기는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좀 불편하긴 했다. 좌석 간 사이도 너무 좁았고 더욱이 한 자세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빠는 자리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그 모습에 신경이 쓰였으나 다행히 비행기는 약속대로 지연없이 한 시간 반 뒤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켜고 아빠의 컨디션부터 확인했다. 아빠를 포함, 네 가족 모두 컨디션은 양호했다. 그렇게 시작된 일본여행에서 우리는 와, 하고 탄성을 내지를 만한 장소들은 만나지 못했다. 도시 자체부터 같은 아시아권이라 익숙했고, 무엇보다 여행지 곳곳을 지나갈 때 마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상점 속 배경음악처럼 거리에 울려펴져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건 첫 가족여행이라는 것. 네 식구에게 이 여행의 의미가 남달랐던 건 그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 실망스러웠다는 건 아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가장 만족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교토였다. 오사카가 주가 되어 여행한 터라 2박 3일 여행 중 마지막 날 지나치듯이 교토를 들렸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자세하게 교토의 거리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차창 밖 풍경만으로도 교토가 얼마나 멋스러운 도시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거리 곳곳 물든 무채색 간판들이 전체적인 도시의 채도를 낮춰 은은하며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시간이 된다면, 교토만 한번 둘러보고 싶었고 거리의 골목골목을 비집고 들어가 보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추후 책을 읽으며 안 사실인데 교토는 경관 조례법이 있어 지나치게 화려한 간판 색깔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한다. 브랜드 이름의 글자 색상은 흰색, 검정색, 갈색 외에는 접수가 되지 않으며 특히 선정적인 느낌의 빨간색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차는 달리고 달려 교토를 상징하는 최고의 절, 청수사를 가기 위한 길목 앞에 멈춰섰다. 지금부터는 청수사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된다며 가이드는 자신을 잘 따라오라고 했다. 올라가는 길목에 기념품과 공예품을 파는 여러 상점들이 있었는데 아기자기한 물건들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많은 여행객에 떠밀려 둘러볼 틈도 없이 가이드의 깃발만 바라보며 걸어올라가기 바빴고 가이드 역시 내내 뒤를 돌아보며 혹여나 이탈하는 여행객이 있을까봐 두 눈에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청수사는 세계문화유산 답게 크고 사람으로 붐볐다.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붉은 삼층탑이 반겨주는 그 곳에서 우리는 넷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오토와 폭포의 물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오토와 폭포: 창건 이래 단 한번도 마르지 않은 영험한 샘물)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며 물 하나 먹는 게 뭐가 그리 대수냐, 싶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도 내심 여행왔으니 남들 하는 거는 다 해보고 가야하지 않겠냐, 란 부모님의 말에 언니와 난 군말없이 긴 행렬에 합류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목이 탔는데 다행히 그 순간 우리 차례가 되었다. 바가지 안에 샘물을 한 가득 담아 한숨에 들이켰다. 그 후로 우린 절 곳곳을 둘러보다 소원을 적은 팻말들이 무수히 걸린 신사 앞에 걸음을 멈췄다. 그 자리에서 우리 네 가족은 각자 자신이 기원하는 내용을 한줄씩 적어 매달았다. 우리의 팻말 옆으로 많은 이들의 소원이 적힌 팻말이 빼곡히 달려있었다. 각기 다른 언어로 적힌 그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맘 속으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저렇게 주렁주렁 매달린 많은 이들의 염원들이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
여행은 끝나고 난 뒤 잔여가 남는다. 지금도 누워서 그때 사진을 보면, 이땐 이랬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때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른 후 빛이 바라는 게 아니라 빛을 발하는 게 여행의 추억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뜻깊은 여행으로 부터 2년이 지난 후, 일상에 지쳐 여행이 간절히 필요할 때 쯤 이 책을 만났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그 제목을 보며 나 역시 다녀온 교토, 라는 도시가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는 성장기 시절 일본에서 6년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살면서 일본의 꽤 많은 도시와 시골 마을을 두루두루 여행다녔다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이 도쿄와, 교토란다. 그 중 이 글은 교토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 저자는 교토를 깊은 역사가 있고 그로인해 자부심이 깊으며 옛 것을 소중하게 지키고 오늘의 것도 받아들일 줄 아는 그 두 것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매혹적인 도시라고 서술했다. 일본에 몇년동안 살아서인지 저자는 블로그나 SNS에 유명한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다. 그래서 그녀의 책 속엔 내가 다녀온 청수사는 마지막 교토의 5가지 절을 소개하는 글에 짤막히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책 속엔 감성적인 사진과 감각적인 그녀의 글들이 날 2년 전, 교토를 처음 만난 날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마치 그 날처럼 따스한 가을바람이 불며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내가 잠깐이나마 스쳐갔던 교토의 거리가 떠올랐다. 세월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는 운치 있던 그 거리…. 거리 곳곳엔 그녀가 기록한 것처럼 창업한지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가 오래된 노포 들이 가득하며 골목 곳곳엔 자신들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들만이 오롯이 찾아 올 수 있도록 비밀스럽게 숨겨진 가게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 즐비하다. 그 곳에 가게 된다면 음식점이나 다른 상점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한 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며 문득 팻말에 적은 소원이 떠올랐다. 가족의 건강과 안위를 염원하며 또 나는 무엇을 적었더라 …. 네 식구가 빼곡히 적느라 칸이 모자란 팻말의 귀퉁이에 작은 글체로 덧붙혔던 말.
'다시 꼭 이 곳에 올 수 있게 해주세요.'
올해 벚꽃이 피고, 내 소원도 이루어지기를.
교토를 다녀왔습니다, 가 아닌 다녀오겠습니다. 란 염원이.
2016년 여행 속 사진들
책을 읽으며 떠오른 내용이 하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차창 밖 교토의 정취에 시선을 뺏겨 있을 때, 가이드가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다. 오사카와 교토는 같은 간사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좋아하질 않는다고. 그때 두 눈 가득 물들었던 교토의 거리에 맘을 뺏겨 이유를 귀담아 듣지 못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교토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이 시끄럽고 단순 무식하며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오사카 사람들은 교토 사람들이 까탈스럽고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고 불만이라 한다. 그렇게 앙숙이라는 그 두 도시를 다녀온 나는, 사실 그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 너무 여행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대신 그때의 아름다웠던 오사카의 가을도 이 글에 함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