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作
초등학교 때 수련회의 마무리는 늘 캠프파이어였다. 그 중 캠프파이어의 대미를 장식하는 불꽃놀이의 주제는 '부모님'. 모닥불을 피워놓고 여럿이 둘러 앉아 사회자가 엄마, 란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모든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자지러지듯 눈물을 쏟았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고. 그리고 다음 날 집에 돌아가면 엄마 품에 안겨 또 한번 펑펑, 눈물을 쏟곤 했었다. 뭐가 그리 서러워 울었을까? 부모님의 품을 떠나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일이 단순히 무서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린 마음에도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마음을 알았던 것 일까. 나의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엄마는 나를 남부럽지 않을만큼 정말 많이 사랑해주셨다. 지금도 그 사랑은 지속되고 있으며, 넘치는 사랑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하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무탈하게 키워주신 점, 세상의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만큼 깊은 믿음을 주신 점, 본인의 희생 …. 정말 갚을 수 없을만큼 무한한 그 사랑에 경의를 표할뿐이다.
그런 엄마는 항상 나에게 미안해하셨다. 이유는, 자신의 가방끈이 짧기 때문이란다. 엄마의 배움에 대한 갈망은 한이 되다 못해 응어리가 졌다. 불행 중 다행은 그 응어리가 몇 십년 후에야 조금이나마 풀렸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를 낳고 난 후에 비로소 엄마는 야간학교를 다니며 검정고시를 쳤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자신이 부끄러워 은행이나 공공기관에서 글씨를 쓰는 일이 생기면 맞춤법이라도 틀릴까봐 노심초사했다던 엄마는 검정고시 합격 후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했다. 추후에 한 얘기지만 어릴 적 엄마는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게 그렇게도 부러웠단다. 가난한 집안 사정 탓에 자신만 학교에 가지 못해 등교 시간 때면은 친구들과 마주칠까 방 안에 옴싹달싹도 안하고 움츠려 있었다던 엄마,
그 얘기에 마음 한 켠이 너무나도 아팠다.
나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엄마에겐 지울 수 없는 한으로 남았다니.
아, 그 와중에 엄마는 아빠가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서술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보다 학력이 높아서였다고 한다. 그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지만 엄마는 내게 있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은사이며 엄마처럼 똑부러진 사람은 드물것이다. 손도 야무지고, 공간 지각 능력도 뛰어나고, 인생을 살면서 엄마의 조언을 듣고서 시행했다가 틀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부모님 말은 틀린 게 없다, 는 속담의 표본이 우리 엄마였다.
어려서부터 엄마 옆에서 책을 읽는 거 보다 엄마 옆에 딱 붙어 어릴 적 얘기를 듣는 게 너무나도 좋고 재밌었다. 엄마의 어릴 적 얘기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와 다르게 농사를 짓는 시골집에 살며 풀과 꽃을 벗삼아 놀았던 엄마. 소규모의 동네라 건너건너 한 두살 차이 쯤은 다 친구로 지냈었고 길을 걷다 푸르게 자라난 풀잎마저 먹어도 아무 탈이 나지 않았던 시절. 고무줄 놀이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놀이였고 미치도록 가난해 여덞식구가 배를 넉넉히 채우기엔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작은 것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배웠다던 어린 시절 속 엄마 …. 그래서 일까, 엄마는 아직도 소녀같다. 봄과 가을이 되면, 쑥을 캐고 도토리를 주으러 산을 제 집처럼 넘나들고 텃밭 가꾸는 걸 좋아하며 그로인해 집 안에는 다육이들이 멋드러지게 피어있다. 더불어 들판에 핀 꽃과 식물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건 당연지사고,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늘 걸음을 멈춰 그네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한다. 그들로 인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 사계절의 시작을 맞이하며.
엄마의 어린 시절 얘기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외할아버지 얘기인데,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고 한다. 아들이 귀한 시절이라 외할머니는 큰외삼촌과 작은외삼촌을 챙기기 급급했고, 배움에 있어서도 남자인 외삼촌들이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터 빼빼마르고 약했던 엄마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한다. 동이 트기 전 어스름한 새벽, 닭이 첫 알을 낳자마자 자신의 품에 안고 방 안으로 들어온 외할아버지는 남몰래 생달걀을 엄마에게 먹였다고 한다. 또한 다른 가족들은 보리밥, 외할아버지만 흰쌀밥을 드셨는데 넉넉하지 않은 양이었지만 본인은 배가 부르다며 흰쌀밥을 남기고선 엄마에게 넌지시 내밀었다고 한다. 그 밥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며 엄마는 빨개진 눈시울로 웃으며 얘기했다. 그만큼 외할아버지에게 엄마는 아픈 손가락이었나보다. 하지만 그런 외할아버지 덕에 여러 가족 틈에서도 따스한 사랑을 받고 자라 나에게 너무나 훌륭한 엄마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가 너무나 떠올랐다. 공지영 작가와 우리 엄마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누구보다 자신의 딸을 사랑한다는 것. 그 사랑이 글 곳곳에 묻어나 있다. 앞으로의, 때론 지나온 날들에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말 하나하나가 진실되고 따뜻했다. 특이한 점은 그 날의 기분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대한 레시피도 쓰여있는데 간단한 음식이라도 건강을 생각한 정성스러운 음식들이었다. 이 책은 비록 어머니가 딸에게 전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이 소복히 쌓여있는 글을 읽으며 나는 이 리뷰를 감히 나의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이자,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내 삶의 귀감이 되는 위대한 나의 어머니에게.
누군가에게 무상으로 주는 이유는 내 스스로 잘난 척,
어렵게 말하면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일종의 욕심일 수가 많단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오직 지금 여기만 존재하는 것이고
오직 내가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