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作
얼마 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 하나가 깊은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전부를 함께한 팬은 아니었지만 멀리서나마 그의 목소리를 좋아했고 그의 감성을 사랑했으며
아이돌이란 틀을 탈비하여 뮤지션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돌이란 틀은 탈피하였지만, 그는 그 안의 고독이란 틀은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음 속 깊이 쌓인 우울이란 늪에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그는 그렇게 잠식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으로 남은 그의, '하루의 끝' 이라는 노래를 알게 된 지 불과 몇일 후의 일이었다.
비보를 들은 후로 나는 마음이 이상했다.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나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막연히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그의 노래가 역주행하여 차트 순위권을 평정할 때도,
카페나 길 거리를 지나면 흐르는 그의 노래도 맘 편히 들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내 플레이리스트에 그의 노래는 사라졌고,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그에 대한 기억도 조금씩 저물어갈때쯤,
이 책을 만났다.
예전 부터 내게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도서관에 가면 유명한 베스트셀러보다 남들에게 덜 알려진 책을 찾는 것을 좋아했었다.
도서관 구석구석을 몇시간씩 돌고 돌아
남들이 많이 읽어 너덜너덜해진 책 보다
출간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직 빳빳한 새책의 느낌을 가진
책을 찾고선 마치 보물찾기 하는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곤 했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가리는 음악 없이 각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잘 알려지지 않는 노래를 찾는 것을 좋아했던 나.
그 노래를 남들에게 소개할 때
그때 느낀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그녀도 나에게 그러하였다.
난생 처음 듣는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음악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나만 아는 가수, 를 찾은 느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꽤 유명했다.)
그녀의 음악을 처음 만난 시간으로부터 근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만 아는 가수이길 바랬던 그녀가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나만 알고싶은 책의 주인공이 되어 다시 만났다.
"시작은 어디였을까, 3집을 내기 전 부터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무언가 죽어가고 있었다.
앨범을 만들 때의 내 마음은 장송곡을 만드는 기분과 흡사했다.
정확하게 무엇이 나를 떠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노래를 만들고, 녹음을 하고,
공연을 하면서 나의 세계가 천천히 회색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
그녀의 글은 첫 장부터가 그녀와 꼭 닮아있었다.
그녀의 노래처럼 쓸쓸하고 고독했으며
그녀가 가진 우울감 탓에 글에는 스산한 겨울바람마저 느껴졌다.
글에는 자세히 녹아있지 않지만 맘 속 우울감에 힘든 그녀는 도망치듯 교토로 떠났다.
그녀는 그 곳에서 그녀 나름대로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싸움을 한다.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사치도 부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책이 가득한 서점에도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천천히 자신을 들여다 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열기 싫은 상자를 계속 열어나가는
고통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이런 저런 것들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다는 그녀는, 낯선 여행지로 홀로 떠나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
"사방이 함정이다
아무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도 허상의 완벽한 사람과 잔상을 비교하며 픽픽 쓰러져간다."
남과 비교하며 사는 삶이 어느 누구보다 불행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얼굴이 예뻤으면 더 잘됐겠지'라는 친구의 말에,
예뻐서 더 잘된 오지은, 이라는 실체도 없는 상대를 떠올리며 패배감에 빠졌던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보이는 것이 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SNS에선 모든 이들이 나보다 다 행복해보인다.
남들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만큼,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만큼 그들은 너무나 행복하고,
앞뒤 상황을 알 수 없는 단 한 컷의 사진에 그저 부러움만 느낀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시선에 흔들려 나약해졌던 자신에게
그녀는 속으로 말해주고 있다.
주체는 나 자신임을,
내가 주체가 되어 살아야 함을.
"탈진증후군인 사람들의 특징 중에 끝을 낼 수 없다는 점이 있다.
만족을 하지 못하여 계속 엎고, 엎고, 엎고 탈진하는 것이다.
뜨끔했다.
다르게 말하면 분수를 알라는 것이다.
위만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옳은 일은 아니다.
나는 냉정해져 고개 숙이기 시작했다."
글의 마지막 즈음에 그녀는 마음이 힘들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진단받은 진단명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요즘 뉴스로도 회자가 되었던 '번아웃 증후군'
말 그대로,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탈진한 것이다.
나 포함 많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녀처럼 자신있게 정신과를 찾아가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그녀처럼 심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위에서도 말했듯 나보다 중요한 '타인의 시선' 때문이리라.
몸이 아픈 것 처럼, 마음이 아픈 것인데
마음에 빨간 약을 바르는 일 조차 참으로 어렵다.
"마음에도 인대같은것이 있다면 아니 뇌에도 지쳐서 자꾸 멈추는 부위가 있다면
한동안 거길 사용하지 않고 회복하도록 두는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책을 쓰면서 독자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얘기를 그녀의 노래처럼 담담하게 써내려가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여과없이 보여준다.
솔직한 그녀의 모습을 닮아 글 역시도 진솔하다.
책을 마치는 글에서도
그녀는 깊은 우울을 끝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아니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잠시 잊었던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한동안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던 이유를.
너무나 따뜻한 목소리로 내 힘든 시절을 위로해주었던 그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을 때.
매 순간 노래로써 타인에게 기댈 수 있는 너른 어깨를 내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나 마음 하나 내어줄 수 없던 사람이었다는 게,
사실은 하루하루 견디는 게 누구보다 힘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허망했다.
그의 노래에 위로 받았던 시간들이 한없이 미안해지며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 비로소 말해주고 싶다.
모든 걸 떠나 당신이 전하는 노래에 너무나도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로인해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고.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버티지 못한다고 비겁자는 아니다."
글 속에 적힌 말에 내 진심을 담아
하늘에 별이 된 그에게 이제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버티지 못한다고 비겁자는 아니니,
어디에서나 편하길 바란다고..
하루의 끝, 에서 이 책의 리뷰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