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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11. 2018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作



나는 '착하다.'라는 말을 가장 큰 칭찬으로 여기며 살았다. 어려서부터 누군가 내게 착하다, 순하다.라고 해줄 때마다 왠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내가 누군가에게 착한 사람이고 순한 사람이 됨으로써 마치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난 어리석게도 내 존재의 이유를 남을 통해 찾으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나는 여러 한계들에 부딪혔다. 남에게 착해 보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일에도 발 벗고 나서게 되었고, 정의감인지 책임감인지 모를 감정에 불타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해내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의사표현 수단인 '거절'의 방법도 모른 채 나는 남의 일을 하다가 내 일까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여러 번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개를 돌리니 똑 부러지게 자기 의사표현을 하는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부탁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이 아닐 때는 명확하게 선을 그으며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친구가 너무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크게 놀랐던 건, 그 친구가 단호하게 거절하더라도 다른 이들은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요즘 말 그대로 현타가 왔다. 그리고 거울 속 나를 바라보았다. 바싹 메마른 얼굴에 생기 없이 지쳐있는 얼굴.


'나는 이제껏 얼마나 호구로 살았던 거지? 인생의 주체는 나인데, 난 이제껏 누구를 위해 살았던 걸까?'


누군가 내 뒤통수를 세게 내려친 기분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세상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특히나 동정심이 깊고 칭찬에 바로 마음이 들뜨는 '호구' 들을 잘 다루는 이들은 훨씬 더 많다.


자, 그러면 나 같은 이 '호구'들은 어디서 탄생되는 것일까? 나는 수많은 심리학 책들을 읽으며 나의 이런 증상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이며,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나는 외적으로 못생긴 아이에 속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만 해도 흰 피부에 그나마 이쁘장한 얼굴을 유지했으나 먹성이 좋고 체질적으로 금방 살이 잘 올라서 나는 해가 지날수록 빠르게 뚱뚱해졌다. 그즈음 사춘기를 겪으며 얼굴엔 여드름이 도돌도돌 올라 못생김이 두배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날씬한 언니와 함께 있을 때면 나는 더 많이 비교되었다. 엄마와 언니, 나. 이렇게 옷을 사러 갈 때면 점원들은 이쁜 옷은 언니에게 권해주기 바빴고 나에겐 조금이나마 날씬해 보일 수 있는 검은 바지와 허벅지를 다 덮는 큰 티를 권해주기 바빴다. 그때 느낀 차별의 시선에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학교 점심시간,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입안 가득 우물우물 먹고 있을 때 나의 뒤를 지나치며 "돼지."라고 말한 그 남자아이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나는 그때 꽤나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런 일이 하나둘씩 늘어가며 나는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었고 "착하다."란 말은 그 당시 내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칭찬이었기에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더 착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남들 기준에 맞춰 살려고 하고 남들이 하는 얘기에 줏대 없이 흔들렸다. 서서히 나는 주제성을 잃어갔고 내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내 판단을 내리기가 버거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젠 나도 서른을 얼마 앞두지 않았고, 더 이상 호구 같은 어른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내게 너무나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목에 함축하고 있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더 이상 작아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기죽지 않으며 기품 있고 우아하게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첫 시작부터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항상 양보하지 않아도 주장을 펼치더라도 미움을 받지 않는다고 얘기를 한다.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난 항상 타인이 나를 미워할까 봐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내 마음속에서는 '그건 아닌데' 싶은 것들도 입 밖으로 내면 질타를 받을까 싶어 꾹 삼키고 다수가 따르는 의견으로 목소리를 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거절도 마찬가지였다. 거절하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게 무서워 나는 항상 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 바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뒤돌아서면 마음이 찜찜하고 어딘가 불편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 마음도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아니다, 맞으면 맞다, 힘들면 힘들다. 여러 번 외치고 있었으나 타인의 시선이 더 무서웠던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






저자는 좋은 사람이란 소리도 듣고 싶고 거절도 잘하고 싶다면 욕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있다.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며, 내가 상대의 부탁을 거절할 사유가 있듯이 거절당한 상대도 내게 실망할 자유가 있다고 얘기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의 입장이 있듯이 타인의 입장도 있다. 타인이 나의 권리를 침범할 수 없듯이 나 역시도 타인의 권리를 침범할 순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날 좋아할 순 없다. 나 역시 아무리 착하려고 노력했어도 나를 이유 없이 싫어했던 사람도 있었고, 내가 너무 착해서 싫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땐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게 너무 힘들고 슬펐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돌이켜 보니 그 사람들은 그저 나를 스쳐가는 인연일 뿐이었다. 내가 울고 불고 하며 연연할 필요가 없었던 인연이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챙기며 나는 내가 가진 삶의 방식대로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착하려는 나의 노력은 연애까지 침범했다. 사랑에 서툰 20대 초반, 나는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 사람이 나를 왜 좋아할까?라는 의문이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생각은 몇 번이고 상대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오빠, 나 왜 좋아해?


처음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그냥 다 좋아, 이유가 어딨어. 라며 얘기해주던 그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또 그걸 물어? 왜 자꾸 물어? … 짜증이 늘어나는 그를 보며 나는 사랑이 변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되었다. 그는 변한 게 아니라 지쳐버린 것이다.


매일 똑같은 질문을, 또 하고 또 하는 내가 그에 눈엔 얼마나 못나 보였을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서 나는 상대에게 사랑을 빙자하여 내 존재의 이유를 묻고 또 물었다. 오죽하면 나는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이 사람과 후회 없이 사랑해야지.라는 그런 마인드보다 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애할 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그의 부탁이라면 뭐든 했다. 연애에서까지 착해지려고 호구 짓을 사서 했던 것이다. "너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은 네 인생에 나 밖에 없을 거야." "너는 나랑 헤어져도 내가 잘해준 기억 때문에 절대 날 못 잊을 거야."라는 어리석은 생각들로 자기 위로를 하면서.


그럴수록 나는 점점 지쳐가고 외로워져 갔다. 점점 그에게 나는 여자 친구가 아닌 엄마가 되어갔고, 내가 원해서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똑같이 받지 못한 것이 서운해졌다. '희생했다'에서 오는 보상심리는 나를 한없이 치졸하게 만들었다.


연애가 끝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모든 연애는 불행하다는 것을.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 타인에게 휘둘리는 연애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를 모든 게 끝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바닥까지 직면한 후에야 난 나 스스로가 너무 가여워졌다. 이불 밖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한 동안 호되게 앓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나를 사랑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진 매력과 장점을 하나하나 찾아 글로 기록했다. 조금씩 나의 의사도 표현해보았다. 오히려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를 더 좋게 보았다. 바보같이 네네, 거리지 않으니 쉽게 보지도 않았다. 기분 나쁜 티를 내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점차 내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쉬워졌고, 조금씩 당당해졌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가 예전만큼이나 못나 보이지도 않았다. 그제야 난 내 마음의 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마음을 체크하는 일>



몇 달 전 나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했다. 이직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중 제일 큰 문제는 남들에겐 하루를 마치는 시간이 나에겐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여느 평범한 사람과 다르게 돌아가는 나의 일상이 늘 힘들었다. 또한 선후배 관계가 군대만큼이나 군기가 바짝 들어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심했다.


예쁜 것만 보고 싶고 좋은 것만 보고 싶었던 나이었지만 사회생활 풋내기 시절부터 나는 타인의 죽음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는 참 많이도 울었었다. 처음엔 그저 무서워서 울고, 후에는 의료인으로서 나의 환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몇 날 며칠을 펑펑 울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감정이 메마르고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졌다. 예전엔 사망 선고하던 의사의 옆에서 보호자보다 더 크게 울며 바들바들 떨던 나는 없었다. 의무적으로 시체를 만지고, 누군가를 떠나보낸 슬픔으로 가득 찬 보호자에겐 물기 없이 메마른 목소리로 응대했다. 나는 감정 없는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일을 했다. 그때의 나의 동선은 직장 - 집으로만 반복되었으며 나는 하루 24시간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저 집에서 잠만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이 책이 서술한 것처럼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진 게 아니라 그 죽음을 통해 아팠던 예전의 시간들이 생각나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다른 직장에선 연차가 쌓이면 일이 편해진다고 하는데 이 세계에선 오히려 쌓이는 연차만큼이나 일이 많아졌다. 늘 중압감과 책임감이 항상 나를 짓눌렀고, 나는 항상 어깨에 짐을 한가득 얹은 듯 축 쳐져서 출근했었다. 여러 가지의 스트레스는 나를 항상 옥죄었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현실도피 차원으로 수면의 세계로 떠났던 것 같다.


마음이 지치니 몸도 점차 지쳐갔다. 다이어트를 할 땐 죽어라 안 빠지던 살이 그때는 미친 듯이 빠지기 시작했고, 건강이 굉장히 나빠졌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퇴사를 결정했다.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를 지키고 나를 보살필 시간.…


그 전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반나절은 병원에만 매여있었다. 매달 일정한 날에 들어오는 월급이 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내 시간을 판 대가가 고작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며 돈이 적어도 좋으니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바랬었다.


결론적으로 요즘의 나는 정말이지 행복하다. 나의 마음을 돌볼 여유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비록 돈은 2배로 적어졌지만.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 나를 지키는 법.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타인의 평가에도 좌지우지 않고 견고하게 내 주관을 지키는 것 …. 날카로운 비판에도 쉽사리 생채기가 나지 않도록 마음이 단단해지는 법, 그 모든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타인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던지 좋은 얘기면 잘 새겨들어 나의 좋은 점이 되게 하고, 무작정 하는 힐난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자.


글에도 나와있듯 우리는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나 역시도 그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든 선배든 후배든, 내 간호를 받는 환자든, 보호자든. 일하는 몇 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짧은 시간에도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었고 최악이었던 사람도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이직 후 만난 상사인데, 최악 오브 최악이었다. 난 내 촉을 믿는 편인데 그 사람은 첫 만난 순간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촉이 딱 왔다.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기운도 별로였고, 첫 만남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초리가 엄청 불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회사에서 기피 1순위, 문제아 1순위였고 역시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고 적중했다.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타인의 자존심을 여러 번 상하게 했고,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었다. 점차 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고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소름 끼치게 싫어졌다. 너무 싫어지다 보니 그 사람에겐 나도 모르는 차가운 내 모습들이 계속 나왔다. 결국 우리 둘은 부딪혔다. 불행 중 다행인지, 어쩌다 그 사람은 전출되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고 후에 그 사람이 하도 말썽이어서 업무도 다른 곳으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계속 이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몇 번이고 또 한 번 지금처럼 부딪히겠지. 하지만 오히려 그 사람의 밑바닥까지 보고 나니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내가 힘들게 감정 소모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을 수없이 만날 거고, 여러 부딪히는 상황들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이 책이 내게 알려준 조언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며 실천해야겠다. 부당함을 참지 않고 무례한 것에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더해지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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