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 作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사랑’
언제부터인지 ‘사랑’도 마케팅이 되었다.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TV프로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그와 관련된 서적들도 생기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네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주 만나는 친구들 사이에도 언제나 사랑은 화두거리다. 각자의 연애사를 무용담처럼 꺼내며 시작되는 얘기는 끝이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고백을 할까 말까? 등의 질문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너무 행복하다며 연인에 대해 끝없는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과 죽을만큼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을 겪고 아파하는 모습까지.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에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에서 우린 ‘사랑’이란 것이 삶에서 이렇게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끙끙대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모든 매체들에서 ‘사랑’을 다루는 것은 아닐런지.
하지만 정현주의 <그래도 사랑>은 많은 청춘들이 바라던 연애고민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순리처럼 5가지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처럼 짧게 여자와 남자의 얘기를 적어두고 그 뒷장에는 작가가 연인들의 상황과 어울리는 영화 이야기가 쓰여 있어서 오히려 더 여운이 길었다. 다만 이 책은 연애사연을 읽고 시덥잖은 솔루션을 내주며 자기들끼리 하하호호 떠드는 어느 TV프로그램과 다르게 해답 대신 작은 조언을 건넨다. 그 조언 안에는 작은 위로가 스며들어있다. 사랑을 시작하려는 조심스러운 연인에게는 사랑에 빠져 성급한 마음에 여유를 주었고,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에게는 그 사랑에 대한 응원을, 사랑을 끝낸 연인에겐 다친 마음을 토닥이며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참 마음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또한 아무래도 저자의 직업이 라디오작가여서인지 글마다 특유의 생동감이 살아있다. 누군가의 음성으로 듣는다는 착각이 일만큼 글자 하나하나 살아 숨쉬고 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게 제목이었다. ‘그래도 사랑’ 이라는 책의 제목은 어떻게 보면 조금 심심하고 자칫 싱거울 수 있지만 서두에 적힌 미사여구가 나의 마음을 저격했다.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사랑을 하면서 늘 행복할 수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언젠가 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고 아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왜 다칠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을 할까. 요즘 TV프로그램에 등장해 유명해진 곽정은 칼럼니스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내가 조연이 될 수 있지만 오직 사랑 안에서는 내가 주연이 된다.” 그 말인즉슨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라는 뜻이다. 아마 그것이 우리를 연애를 하게 만들고 사랑을 하게끔 하는 이유이리라.
아무래도 사랑에 관한 책이여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나의 연인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고 견고했던 마음과 믿음들이 수없이 깨지는 걸 눈앞에 보면서 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두려워졌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일이 그저 설레고 벅찬 일만이 아님을, 한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과 한층 가까워지며 서로의 시간과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일이 그저 행복한 일만은 아님을 깨달은 후였기에 이 연애는 또 한번 나에게 상처로 오지 않을까 두렵기만 했다. 한동안 나는 어느 책에서 말했듯,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어리석인 인간만 있을 뿐." 이란 말에 100% 공감했다.
사랑이란 영원할 수 없으며, 혹여 내가 지속되어도 상대가 마음이 식으면 끝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온전히 사랑에 마음을 쏟는 일이 내겐 꽤나 어려운 일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참 자연스럽게도 들어왔다. 스며들듯이 천천히, 부담없이. 그가 가진 편안함과 따뜻함으로 나를 물들였다. 두려움이 한층 커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는, 시간이 흐르고 변하는 것을 내심 두려워하는 나를 알아보곤 말했다. 한 사람을 오래 만나도 그 사람을 다 알지 못한다며, 시간이 흐른다해서 식어버리는 건 아니라고.
익숙함과 편안함은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라고 ….
그리곤 그는, 무조건 확신을 주었다.
'사랑은 너야, 무조건 너야.'
흔들리는 내 마음을 꽉 잡아줄 정도로, 두려움을 이기고 또 한번 믿어보고 싶을 정도로 확신을 주는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그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확신이 들만큼 널, 사랑해.'
어느 순간 무엇이든 혼자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오히려 같이 하는게 어색해져버린 나에게,
항상 함께해야하며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과 따스함을 알려준
참 고마운 그를 위해 쓴 이 글에 덧붙혀 내 깊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
“네가 곁에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