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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Dec 31. 2018

새치

2012.





이외수의 감성사전에 기록된 말,

젊음이 다했다는 경보신호이자 
노인이 되기 위한 부분 예행연습.


그것은,

당신의 머리카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또 다른 꽃, 새치.


설날 음식을 하고,
제사를 치른 후

지친 몸을 땅바닥에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의 머리를 오랜만에 만져보았다.



한달에 한 꼭 치르는 행사처럼
한번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번 검은색으로 염색하던 당신.

그래서 까만 줄로만 알았던 당신의 머리카락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새치가 우후죽순 자라 있었다.
그 모습에 이상하게 코끝이 시려와
나는 당신의 머리를 말없이 매만지기만 했다.


흰 머리카락을 덮기 위해 수많은 염색을 한 탓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들을 쓰다듬으며
내 손을 스쳐지나가는 당신의 새치의 수가
꼭 당신의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찡해졌다.


혹여 내 걱정으로 당신의 머리가 하얗게 센 걸까.

당신의 머리카락 모두를 내가 새하얗게 물들여버린거 같아
마음이 슬픔으로 일렁일 때
그 틈을 비집고 기억 저 아래 숨어있던 오래 전 당신의 모습이 밀려왔다.

내가 어릴적, 거울 앞에 서서 하나 둘 자라나는 새치를
 스스로 뽑으며 씁쓸해하던 당신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는,

흰 머리 뽑아주면 하나당 10원 줄게.
라며 내 손에 집게를 쥐어주었는데.
그때는 그 손이 주름도 없이 참 고왔었는데.

 
10원의 가치도 크게 생각했던 어린 날,

그 당시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새치를 뽑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른으로 가는 길목으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이상 10원의 가치 따윈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당신의 새치를 뽑아주는 일을 귀찮게 생각해 버렸고

그런 나에게 당신은 더 이상 집게를 쥐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거울 속 자신의 머리를 보며 씁쓸해하던 당신도 더 이상 없었다.

그 시간동안 당신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
나이든다는 것을.
그 서러움과 씁쓸함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철없는 자식은,
지금에서야 당신이 나이든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어 스스로 집게를 들
당신의 새치들을 하나 둘 뽑기 시작한다.

 

많이 뽑지마, 머리 없어져,
라며 내가 어렸을 때와 다른 소리를 하는 당신.

 

밀려오는 애잔함과 후회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
 애써 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새하얀 머리카락을 하나둘 뽑아나갔다.

 

하나 둘 뽑아내기만 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듬성듬성 자라난 새치
어느 덧 당신의 머리를 겉잡을 수 없이 뒤덮은 상태였다.


부모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모두 자식에게 내어준다.

젊음까지도 ….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식은 부모가

나이든다는 것을

늙어간다는 것을

막아줄 수가 없다.


하루하루 당신의 젊음을 먹고 살아가는 나는,

오늘따라 당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그 흰 머리카락이,

너무나 눈물겹고,

안쓰럽다.


이제야 알았다.

당신의 새하얀 머리카락,
이 한올한올이,

당신이 나를 생각하다 바래진, 흔적이라는 것을.


단, 10원으로만은 계산되지 않는,

그것보다 10배, 100배는 더 값진 것이라는 것을.

 

당신의 크나큰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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