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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03. 2019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곽정은 作






옛날에 비해 지금은 연애, 성에 대해 개방적인 편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TV 매체에서 쉽게 다루진 않았던 것 같다. 종합편성 채널이 나타나면서부터 다양한 소재의 프로가 만들어졌는데,

그때 "성"과 "연애"를 다루는 프로가 등장했다. 신선한 소재로 첫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린 프로그램은

하루가 멀다 하고 검색어 순위권을 오르락내리락거렸고 젊은이에겐 인기 프로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혜성처럼 나타나 아주 맞는 말만 쏙쏙 내뱉으며 여러 어록들을 남긴 그녀. 본인을 연애칼럼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그녀가 처음에는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녀의 직업도 새로웠고(그때 당시에 흔치 않아 희소성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과감할 정도로 솔직하고 농밀한 언어로 말하는 그녀가 놀라웠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통해 숨어있던 사람들의 성과 연애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 후로 여러 매체에서 얼굴을 심심찮게 보이며 유명인이 되어갔다.








1. 프롤로그


이 책은, 내가 '혼자여서 괜찮은 인생'을 살기 위해 애쓴 날들의 기록이다.

연애 칼럼니스트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 혼자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지 않던가.



세상의 많은 것들로부터 살가운 위로를 이미 많이 전해받았다.

지금 혼자서 걷는 당신에게, 내 이야기가 더운 여름날 한 자락 바람 같은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다.    


p12




그런 그녀가 책을 발간했다. 그저 연애서적이겠거니 - 생각했는데 제목이 의외였다.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꽤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한 연애를 지향하고, 연애 전문가인 그녀가 "혼자"라는 타이틀로 책을 쓰다니.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하고.


나의 의문이 대다수 사람의 생각임을 간파하고 그녀는 책의 머리말부터 서술해놓았다.


연애 칼럼니스트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

혼자의 가치를 말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며 말이다.





2. 내리막의 삶


오늘이 만약 내리막 같은 날이었다면

그 힘듦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 인생의 일부로 수용할 것.

수용하는 만큼 나의 내면은 단단해지고

받아들이는 만큼 자신의 선택에 대해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을 우리의 하루,

다시 오지 않을 이 밤을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22




예전에 엄마랑 산행을 할 때였다.

등산이 취미여서 수월하게 산을 타는 엄마와 달리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엄마 뒤를 쫓기 바빴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몇 번 멈추다가도

겨우 힘을 짜내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지가 나타났다.

그 모습에 엄마는 산이 꼭 우리네 인생 같지 않냐며 내게 말했다.



“인생에선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고, 제일 평탄한 평지도 있고, 가끔은 내려가야 할 내리막도 있는 것 같아.

내리막이 빨리 내려갈 수 있어 수월하기도 하지만,

 그러다가 중요한 걸 놓치기도 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칠 수 있어."


책을 읽으며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오늘 하루가 힘든 내리막 같은 나날이어도,

그 힘듦을 알아차리고 내 인생의 일부로 수용한다면,

스스로 단단하고 명료하게 되어 내리막에서 넘어지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된다고 말이다.




3. 서른마흔 그리고 결혼



10년 전, 그러니까 서른 살의 나는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었고, 나름 착한 딸이었지만

스스로 규정하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하는데 나만 뒤 처친',

'어쩌면 나만 아이를 못 가질지도 모를' 같은 문구들이 머릿속을 채우고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었다.


(중략)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겠다는 섣부른 약속을 감행할 만큼 그때의 나는 거의 불안에 목 졸리기 직전이었다. 더는 목 졸리고 싶지 않아 한 결혼이라는 선택이 내 목을 제대로 조르고 말았지만.


함께 살기로 약속한다는 것,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는 건 인생의 시스템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 '애를 낳고 길러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와 같은 이야기 앞에서

'미혼'은 '미성숙'과 동의어가 되어 버리니까.  


p34-35





남자에게 서른은 이제 시작하는 나이로 여겨지지만,

여자에게 서른은 마치 저물어가는 나이 인양 평가하는 게 싫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고, 그 나이 때가 주는 기쁨도 있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여자는 점점 조급 해지는 것 같다.

결혼, 출산이라는 사회적 잣대에 너무 많이 휘둘리는 것 같다.


그녀는 이혼을 했다고 한다.

자신도 평범한 이 시대 여자들처럼 결혼이라는 제도에 제대로 휘둘렸다고 서술한다.

그 조급함이 섣부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그 섣부른 선택이 후회로 다가왔다고 …


요즘엔 비혼 주의자도 많고, 결혼을 늦게 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빠른 결혼을 원해 일찍 하는 사람도 많다.

모든 것의 중심은 자신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결혼은 그저 선택일 뿐인 것 같다.



인생에서 내리막이 된 서른을 수용하고 내면이 단단해진 마흔이 된 자신에게 담담히 메시지를 전하는 그녀.


「십 년 뒤, 너는 어리석던 시절에 한 선택을 되돌려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홀로 살아가는 마흔 살이 될 거라고.

가끔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새벽을 맞이할 것이고,

돌연 아프게 되면 혼자 낑낑대며 운전해 응급실도 가고 입원도 해야 하겠지만,

대단히 힘들거나 서러운 일은 아닐 거라고. 결혼이 아니라 다만 너의 통장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




4. 자기 자비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 세상에 많고 많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애틋한 마음을 두는 것임을

자기 자비 없이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임을

과거에 머물지도 않고, 미래로 향하지도 않고

그저 현재에 머물며 나와 함께 있어주는 일.

'오늘 외롭구나', '또 힘들어하는구나'하고 느끼는 지금


그저 나로 충분하다.

그저 지금 이것으로 충만하다.


p40-41



인생에서 겪는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단단해지는 것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애틋해야 한다는 그녀 -



나로 충분하고, 지금으로도 족하다며 자신을 다독거리는 시간이 필요함을 기술하고 있다.



5. 세 번의 호흡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하고, 명상은 생각을 내려놓기 위한 목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을 하다 보면 나에게 있던 비합리적 신념과 불쾌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지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명상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상태일 뿐 명상의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증략)


내 삶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 내가 처리하고 상대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 대해 명료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p199-200




명상의 장점을 서술한 글을 보며 나는 요즘 하고 있는 필라테스를 떠올렸다.

필라테스 첫 수업의 90%가 호흡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는 내내 호흡이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다.


내 몸에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 오롯이 들숨과 날숨으로 나를 비워낼 수 있고 다시 채워낼 수 있다.

가끔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을 때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순간의 짜증을 어쩌지 못해 발생한 일이나, 지나간 상황에 후회되는 일 등등.

사소한 내 행동을 반성하는 것부터 크게는 내 삶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명확하고 또렷해진다.





6. 너는 나와 함께 울어줄 자 인가


뉴스를 보고 운 것은 거의 1년 만의 일이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있었을 때 울었고, 이번에 한 왁싱샵에서 일하던 여성이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 울었다. 1년 전 그때, 피해자가 여성이라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던 경찰과 언론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자들만이, '나도 당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뉴스가, 그저 흉흉한 사건사고의 한 꼭지로만 여겨질지 모르겠다.



(중략)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가장 사적이라 여겨지는 연애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왁싱샵 살인사건을 접하고 괴로워하는데,

'너는 가정집에서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텐데 왜 걱정하느냐'는 남자 친구의 반문에 말이 막혔고 너무 실망했어요. 제가 너무 예민한 건가요?"라는 물어온 후배의 하소연이 증명하듯이.


연애가 그저 먹고 마시는 영화를 보고 가끔 섹스하는 것이라면 누군가의 죽음을 소재로는 대화하지 않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연인을, 그리고 관계를 내 삶을 공유하는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한다면 이 서러운 죽음들은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략)



무엇에 분노하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살기 원하는가의 문제와 가깝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절반이 겪는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이에게 미래 따윈 없기 때문이다.



(중략)



"나만 믿어, 내가 널 지켜줄게."라고 자못 믿음직스럽게 말하는 남자조차 찾기 힘든 세상이지만,

너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원한다 말했을 때,

그걸 이해할 남자가 또 몇이나 될까?


p209-212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평소에 여자에게 무시당해 살인을 저질렀다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피해를 당한 여성과는 모르는 사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인한 것이다. 본인의 피해의식과 분노로 인해.



이 사건으로 여성 혐오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다시금 대두되면서 추모 운동까지 펼쳐졌다.

사건 현장과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 빼곡히 붙인 추모 포스트잇을 기억한다.

이 사건을 보면서 참으로 비통하고 마음이 아팠다

 같은 여자여서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날이 갈수록 잔인하고 참혹해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 역시 이 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 흉흉한 여러 사건 사고들을 볼 때,

특히나 여성이 대상으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볼 때마다, 나도 당할 수 있는 일임을 항상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밤길 조심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 차 타면 안 된다, 라는 숱한 얘기를 들으며 그저 그 상황을 피하려 노력했으나 이제는 스스로 조심해도 언젠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더 막막해지고 아득해졌다.



엘리베이터도 타인과 함께 탈 때 그 타인이 남자일 경우는 절대 함께 타지 않았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타인을 믿는 것보다, 경계하는 것을 더 먼저 배우고 어려서부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던 순간들.

늘 가볍게 인사 나누던 이웃주민에게 언제부턴가 스스로 벽을 치며 느꼈던 적대감과 공포감.

이 모든 감정을, 여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감정 이리라 생각한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얘기를 나누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생각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말했듯,

무엇에 분노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살기 원하는가의 문제와 가깝게 맞닿기 때문이다.



성을 떠나, 여자를 대상으로 하든 남자를 대상으로 하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을 범하는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 내며

함께 분노하고 같이 울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왁싱샵 살인사건을 접하고 괴로워하는데

'너는 가정집에서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텐데 왜 걱정하느냐'는 후배의 남자 친구에게,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을 때,

그 아이가 딸이라면,

너는 가정집에서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텐데 왜 걱정하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7. 세 가지 삶


마틴 셀리그만이 한 이야기 중에서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삶의 세 가지 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바로 '즐거운 삶', '몰입하는 삶', '의미 있는 삶'.



(중략)



내가 완벽히 매료된 마틴 셀리그만의 이야기는 바로 이 세 번째 방식에 관한 것이다.


즐겁게 사는 것도 중요하고, 몰입의 에너지를 경험하며 자신의 일에서 깊은 성장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생은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란 그저 잘 먹고 즐겁게 놀며, 열심히 일하는 시간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재능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으로 향할 때, 비로소 인생의 목적성이 뚜렷해지고 또한 그 결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떻게 성공하고, 어떻게 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의 고민은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고민했었던가.


p257-263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의 얘기를 펼치며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 성공한 것 같고 무조건 행복할 것 같아 보인다.

 내 시선에 본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당해 보이는 그녀는 남들보다 연애도 잘하고 자존감도 높고 늘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도 칼럼니스트이기 전에, 전문가이기 전에 한 여성이고 인간이었다.

많은 감정의 풍파를 겪어왔고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남들 앞에 서서 낼 수 있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 책은 그녀의 경험을 토대로 서술한 에세이다.

내 경험이 이랬기 때문에 이럴 거야.라고 단정 짓는 글도 없고, 섣부른 조언도 없다.


그저 담담히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왜 저자가 지은 제목이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인지 알 것 같았다.



혼자여 괜찮다는 것은,

다른 이와 함께면 좋지만 혼자여도 나쁘지 않다는 표현 같고

혼자여 괜찮다는 것은,

함께하는 것보다 오로지 자신 혼자여서 괜찮다는 표현 같다.

후자가 홀로서기에 적합한 표현이고, 더 외롭지 않게 느껴진다.



함께였던 시절을 경험한 그녀는, 우리에게 말한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스스로 단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을 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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