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야기하다
05. 반말보다 존댓말이, 언니 동생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편한 이유
05. 반말보다 존댓말이, 언니 동생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 편한 이유
“우리 나이도 같은데 말 편하게 해요!”
어느 날 내가 자주 가는 한 가게에 사장님이 말했다. 동갑이니 말을 편하게 하자고. 사장님을 알게 된 지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였다. 하지만 그 말에 덜컥 '좋아요!' 라고 답하기엔 어려웠다. 말을 놓는 건 좋지만 존대하며 지냈던 시간이 길어서 쉽게 놓아질지 모르겠다며 에둘러 대답했다. 내 의도를 파악한건지 상대는 그럼 천천히 놓자고 했지만, 내 마음에 묘한 불편감이 일었다.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 이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터놓으며 말했다.
“이상하지.”
“뭐가?”
“예전에는 동갑이면 말 놓고 친해지는 게 좋았는데.”
“응.”
“이젠 새롭게 알게 된 사람과 깊어지는 게 부담스러워.”
“그럴 수 있지.”
“….”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덧붙혀 대답했다.
“너무 편해지는 것 보다 기본적인 선을 긋는 게 편하지.”
나 역시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말고, 직장생활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부분 존칭으로 대화했다. 다만 병원에서는 동기나 1-2살 차이가 나는 선후배가 있으면 사적인 자리에서 술 한잔 기울이고 난 후 어느 덧 친구가, 혹은 언니 동생이 되어 있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경험해보니 일적으로 만난 사이가 너무 편해지는 것도 좋지 않았다. 친하다는 이유로 편파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고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상황을 객관화하기 힘들었다. 또 서로에게 허물이 없어지니 선을 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막역한 친구사이도 아닌데 상대가 선을 넘을 때 마다 묘한 불편감들이 마음 속에서 꿈틀거렸다.
내게 동갑이라며 말을 편하게 하자는 사장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사장님은 내게 판매자고 나는 사장님의 제품을 구매하는 구매자다. 물론 내가 좋아서 그 제품을 사용하고 있고, 내 스스로 소비를 하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편해진다면? 혹시나 그 제품을 사용하고 싶지 않을 때 구매를 중단하더라도 우리 사이가 괜찮을까? 괜한 불편감에 내가 얽매일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현재 직장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항상 서로 존칭으로 대화한다.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의 나이대는 다 나보다 높은 편이지만 한 두살 터울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 말을 편히 하자는 얘긴 하지 않는다. 그게 참 편하다. 앞으로 말을 놓을 겨를이 없겠지만 혹 엄청 친해진다고 해도 절대 말을 놓고 싶지 않다. 남편의 말처럼 기본적인 선이 각자에게 존재하는 게 편한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고 있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지만 적당한 불편감과 거리가 오히려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서로가 가까워지면 기대하게 되는 게 있는데, 이런 관계에선 기대하는 게 없으니 실망하는 일도 없을테니.
이 내용을 가지고 친한 친구와도 대화해보았는데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 주변에 좋은 사람이 충분히 있어서 그래.”
그러니 더 이상 인간관계를 깊게 가지지 않아도 내가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느끼지 않아서라는 친구의 말.
“그리고, 올해 생긴 네 편 있잖아.”
맞다. 평생의 내 친구가 되어줄 내 남편.
어쩌면 친구의 말처럼 기존에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현재 나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할 이가 있기에 나는 굳이 깊은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