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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06. 2019

나를 이야기하다

04. 간호사에게 퇴사와 이직이란







04. 간호사에게 퇴사와 이직이란




요새 퇴사란 주제가 핫하다. 평생직장이란 단어가 옛말이 되기도 했고, 일반인들이 유튜브나 웹툰 등의 플랫폼에 접근하기도 쉽고 또 수익도 낼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선 창업아이템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다양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군가와 부딪히며 일하는 것 보다, 혼자 일하는 즐거움을 원해 퇴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다양한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지만 그들 중 몇몇은 '퇴사'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타이틀로 하여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한 직장에 얽매이는 것 보다 탈피하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책들은 대중의 인기를 끌었고, 책의 판매수는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다.



높아지는 책의 판매수는 직장생활의 애달픔으로 퇴사를 꿈꾸는 직장인들의 수가 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자율적이여도 '직장'이고 그 곳의 규율과 제한이 있으니까. 더욱이 만족하지 못한 직장일수록 자기의 삶의 균형을 흐트리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으니까.



퇴사한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마냥 꿈같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의 삶에서 벗어나, 대도시에 교통체증과 지하철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모습이 부러웠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로 돈을 버는 게 그저 좋아보였다.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알고 그들만의 고충도 있고 고통도 있다는 걸 알지만 활자로만 보이는 면은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나는 직장 퇴사 경험이 있다. 또한 이직의 경험도 있다.

첫 번째 퇴사의 이유는 내가 죽을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 퇴사의 이유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정시출근 정시퇴근"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직업은 간호사고, 지금 직장이 세 번째 직장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24살이 되어 입사한 첫 직장은 3주만에 퇴사를 했다. 내가 첫 발을 내딛은 곳은 내과 병동이었는데 첫 출근 당시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키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 감정없이 차가운 표정. 나를 곧 나갈 애라 생각한건지,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고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투명인간이 된 그 날, 차가운 시선을 받는 것 보다 무관심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첫 날 배정된 나의 프리셉터는 기본적인 투약, 주사약제, 물품카운트 등을 가르쳐줬지만 나는 도통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아듣는 지 못 알아듣는 지는 그 선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본인은 나에게 알려줬다, 란 임무만 완수하면 된다는 듯 나에게 업무적으로 조잘거리기만 했다.



입사한 지 일주일 되던 날 나보다 입사가 한 두 달 빠른 동기들만큼의 능력치를 원했던 선배들은 날 세워두고 '쟤는 어느정도하니?' '저렇게 뒤쳐져서 어떡해?' 라며 나의 프리셉터와 내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쟨 어디까지 할 줄 아니?' 라는 말이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자' 란 말로 들렸다. 매섭게 날 바라보던 눈들이 무섭기만 했고, 그 당시에는 습득력이 부족하고 뒤쳐지는 내 스스로가 싫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나를 자책하며 탓했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지쳐갔다.



나의 프리셉터는 그 날 듀티에 따라 일정하지 않고 바뀌었다. 프리셉터가 몇일 마다 바뀌니 가르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가르쳐주는 스타일 대로 일을 했다가 다른 선배에게 혼나고, 다른 선배 방식으로 일을 했다가 또 다른 선배에게 혼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3주째 되던 날 배정받은 나의 프리셉터 선배는 다혈질로 유명했다. 심지어 그 분은 '환타'였다. 환자 복이 넘치고 넘쳐 그 선배 근무때는 엄청 바빠지기 시작했다. 바빠지니 더 날카로워진 선배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화부터 내고 나를 다그쳤다. 바쁘고 날이 선 환경에서 선배는 결국 자신의 화를 못 이기고 스테이션에서 펑펑 울었다. 왜 자기 때만 이렇게 바쁘냐며 ….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이 곳에서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 12시쯤 출근해 새벽1시가 다 된 시간, 그 선배와 병동을 벗어나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배고프다, 라며 입을 뗀 선배가 내게 물었다.



"오늘 힘들었지? 해장국 먹고 갈래?"


근무동안 내게 죽자고 화만 냈던 게 미안했던지 조심스레 묻는 선배에게 나는 아니요. 집에 가고 싶어요. 라고 대답했다. 내가 거절할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당황한 선배가 머쓱한 표정으로 그래, 잘가. 라며 인사하고 떠났다. 그 후 나는 그대로 역으로 달려가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기차에서 한참을 울다 집에 도착해서도 펑펑 울었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나를 본 엄마는 놀랐지만 그저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조곤조곤 날 어르고 달래 병원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나는 완강했다.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 했다. 무단결근은 무책임한 짓이라는 것도 알지만 그 곳에 있다간 되려 내가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 후 퇴사절차는 밟아야 하니 수 간호사와 통화를 했는데 수 간호사는 '네가 그렇게 힘든 지 몰랐다. 말하지 그랬니. 다시 나오면 안되겠니.' 라며 날 타일렀다. 마음이 조금 약해질 때 쯤, 수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선배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쟤 안 나온대요?'

'내 오프 짤리는데 그럼.'

'얘 운다 울어'



하면서 웃는 소리.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쓰레기통에 나 스스로 발을 담구고 싶지 않았다. 요즘 간호계에서 가장 대두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태움문화'다. 간호사가 자살하는 사건도 빈번히 발생하는 걸 보며, '태움'으로 '재'가 되어버리는 꽃 같은 청춘들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병원들이 이제야 태움 개선한다, 선배와 후배가 화합이 잘되는 병원 …. 등의 타이틀을 내걸며 병원 문화 개선을 한다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아질지는 잘 모르겠다. 뿌리깊게 박힌 병원의 문화가 한 순간에 바뀌어질까.



나는 첫 직장을 퇴사한 후로 두 달동안 채용공고 사이트만 들락날락 거렸다. 마음을 추스리고 좀 쉬라며 부모님이 말씀하셨지만 가끔씩 부모님의 입가에 새어나오는 한숨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점차 퇴사가 나에겐 실패로 다가왔고 무능력한 나를 자책하는 시간에서 직장에서 버티지 못한 나를 질책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두 번째 직장도 병원이었다. 왜 다시 병원을 가냐는 주변의 물음에 지금 답하자면 그 당시에는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실패한 게 아니라고, 그 병원이 이상한거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병원으로 출근하는 동안 이번엔 꼭 버티라는 엄마와 언니,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겁도 나고 또 이 지옥같은 곳에 발을 내딛었구나 싶었지만 이상하게 처음보다 수월했다. 두번째 직장은 외과병동이었고 첫 직장보다 더 엄청난 오버타임과 바쁨이 나를 기다렸지만 너무 일이 재밌었다. 약을 공부하는 것도, 외과 관련 수술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못된 선배들도 있었지만 그 보다 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는 선배들이 훨씬 많았다. 바쁘게 뛰어다니고 힘들었지만, 임상에서의 경험은 내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오랜 시간 다녔지만, 원래부터 규칙적인 생활패턴이었던 나는 교대근무가 힘들었다. 그리고 환자들을 응대하면서 점차 차가워졌다. 환자들을 응대하면서 차가워지는 내 모습이 마치 첫 직장에서 봤던 선배들의 표정일까봐 덜컥 겁이 났다. 무엇보다 죽음에 무뎌지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아직 창창한 젊은 나이인데 너무 빨리 죽음을 보게 되고 그로인해 감정이 무뎌져 가고 있는 스스로가 가여웠다. 연차가 쌓이면 편하다던데 나는 오히려 반대로 신규때도 안 빠지던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였다. 수직적인 관계가 나를 힘들게 했다. 회진을 따라가서 간호사가 모르면 환자 앞에서 타박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몇몇 의사들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나와 다른 직종이기도 하지만 간호사가 의사의 하대를 받는 게 어이가 없다고 했다. 같은 의료인이고 서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냐며. 남편과 열띈 토론을 했던 그 날을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곳 말고도 무수히 많은 병원에 도사린 이 같은 문제들이 간호사들을 버틸 수 없게 만드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또 한 번 퇴사를 했다. 내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돌봐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강한 간호를 할 수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처럼,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선택한 세 번째 직장은 처음과 두 번째 직장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다. 병원에서 여름휴가 신청할 때는 선배들이 다 쓰고 남은 기간을 쪼개서 썼고, 휴가를 신청할 때 일일이 이 날 쉬어도 되는 지 선배에게 물어봤었는데 여긴 그렇게 없다. 연차도 휴가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훨씬 마음이 편하다.



가끔 브런치도 살펴보면 간호사 분들이 쓴 글이 많다. 아직 현직에 있든 아니든 간에 대한민국에 간호사로 버티고 있음에 그저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더 북돋아주고 싶은 건 지금도 일하고 있을, 혹은 출근을 기다리며 불안감에 떨고 있을 신규간호사들. 실수하고 선배들의 눈초리에 마음이 다치고 혼나는 상황에서도 본인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



혹 퇴사를 결정하게 되더라도 간호사에게 퇴사란 실패가 아니고, 또는 이직을 결정하게 되더라도 간호사에게 이직이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하듯 자신의 질타하지 말고 그 누구보다 자신을 칭찬하고 토닥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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