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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06. 2019

나를 이야기하다

03. 청첩장으로 인간관계가 결정된다?



출처 : 바른손 청첩장 홈페이지



03. 청첩장으로 인간관계가 결정된다?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게 청첩장이었다.

청첩장을 주는 기준이 너무 애매했다.

결혼을 경험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모바일로 돌릴 사람과 직접 주는 사람도 또 다르단다.

머리가 아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 지역에서 초, 중, 고를 다녔다. 대학교는 다른 지역이었지만, 같은 도 내 였다.

직장은 현 직장에 오기까지 두 번의 이직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너무 짧아서 이직이라 하기에도 모호하지만.



내가 거처온 세월동안 만났던 이 들 중에 어떤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줘야할까.



어른들은 좋은 날이니 청첩장을 돌릴 수 있을만큼 돌리라 했고,

나의 남편은 골머리를 썩는 나와 달리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예 연락 안 하는 사람 말고 간간히 연락하는 사람은 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거리가 멀면 모바일로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직접 전해주자.”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우리의 좋은 날이니까,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안 주는 게 맞는 거 같고.”



전 직장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하자 남편이 한 말이다. 예의상 전 직장에도 돌리는 게 맞지만 퇴사한 지도 1년이 훨씬 지났고 괜히 내 마음이 불편할거면 안 돌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남편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나보다 협소했다. 그 이유는 한 지역에 오랜기간 터를 잡고 살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아버님의 직장으로 인해 이곳 저곳을 옮겨 다녔다. 그래서 현재 초,중,고 친구들 중 고등학교 친구 몇몇을 제외하곤 거의 연락이 끊겼다 했다. 오히려 청첩장을 주는 인원이 간결했다.



그리고 성격탓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인간관계에 크게 연연해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나는 너무 걱정이 많았다. 나의 생각보다 상대의 생각이 걱정이 되었다. 내가 오랜만에 연락해 청첩장을 주자니 ‘결혼할 때 되니 연락하네.’ ‘엥? 안 친하다 생각했는데 웬 청첩장?’ 등의 생각들을 할까봐서 걱정이 앞섰다. 그런 내게 남편이 말했다.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추기엔 어렵고 맞출 필요도 없어. 그 사람 생각은 그 사람에게 맡겨두고, 우리 행복한 날이니 우리 맘대로 하자.”



남편의 말로 인해 나는 '나'의 마음을 기준에 두고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청첩장을 주니 좋은 날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완벽히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누군가를 서운해하게 만든 순간도 있었다. 한 예로 청첩장을 주자니 나 스스로가 머뭇거려져 결국 연락을 안했다가 나중에 내 결혼소식을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서운함을 토로하자 나의 결혼식에 오기엔 거리가 멀어서, 오래 연락안하다가 괜한 연락에 네 마음이 부담스러울까봐 라는 핑계를 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청첩장을 줄까 말까 고민할 때 머뭇거렸던 '나'의 마음이, 그 친구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답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와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너무 친했던 시절도 있지만 직장에 입사하고 서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다. 표면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 친구가 불편해진 사건이 있었다.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부정적인 생각인 가득한 거친 말투가 거슬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에 반해 나를 당황하게 한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난 이미 결혼을 했고, 난 그 친구를 초대하지 않았는데 친구가 자신의 결혼식에 나를 초대했다. 정말 헉!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결혼한 지 몰랐던 친구는 내가 초대하지 않은 것에 대해 구구절절한 이유를 대는 모습을 보며 되려 자신이 오버한거 같다며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그 친구 역시 여러 고민을 하며 내게 보냈을텐데, … 자신의 좋은날에 초대할만큼 나를 좋게 기억해줘 고맙기도 했지만 오히려 미안한 감정이 컸다.



물론 내가 서운한 적도 있었다. 미리 내가 결혼을 한다는 걸 알고 꼭 오겠다며 나보다 더 유난을 떨던 사람이 있었다. 전 직장 사람이었는데, 나는 꼭 가겠다 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서 그 사람은 꼭 오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결혼식에 다른 직장사람들도 온다하니, 현재 육아휴직 중인 자신은 그 사람들을 마주치기가 싫다며 마지막까지 오니 마니하며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엔 다시 꼭 가겠다 했다가 결국엔 다른 이유로 그 날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서운했다. 납득할만한 일로 인해 못 온 거였지만 그 전에 계속 오락가락 하는 모습 때문인가. 이해하면서도 오해가 생긴 순간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러 감정의 풍파를 겪는다. 메리지 블루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청첩장을 줄 때 쯤 좀 더 심해진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돌이켜보게 된다. 특히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했고, 상대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청첩장'이 인간관계를 단정짓거나 결정짓는 건 아니지만 청첩장으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 자리를 잡고 그 서운함이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결혼이 끝나고 감정의 파도가 잔잔해진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인간관계에 연연해할수록 서운함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 같다. 또 보상심리라는 것도 묘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내가 상대에게 더 많이 해주고 마음을 많이 쏟았다해서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하고 더 생각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내가 주는 마음이 상대에겐 부담으로 작용해 되려 불편해졌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은 결혼,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평생의 삶을 약속하는 날, 그리고 살면서 가장 많은 축하와 축복을 받는 날. 그래서 그 축복의 자리에 참여해 함께 박수쳐주었던 사람들이 오랜 고마움으로 남는다. 또 오랜시간 연락을 안하던 친구들이 나의 결혼식에서 만나 서로 반가워하고 어느 덧 동창회가 되기도 하는 순간을 보니 나 조차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기에 많은 이를 초대하는 것도 맞지만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타인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내가 불편하면서까지 타인의 결혼식에 가지 않아도 된다. 청첩장을 주는 것도 받고 참석하는 여부도 모두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거기에 수반되는 서운함도 자신의 몫이다. 



그러니 '나'를 기준에 두고, '나'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많은 사람에게 연연해하면 내가 나를 옭아매게 되고 내 스스로가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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