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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Aug 17. 2020

'엄마'의 'Mom'이라는 것

02. 하나 둘 나타나는 임신 초기 증상




02. 하나 둘 나타나는 임신 초기 증상




"아직 입덧은 없나요?"

"네, 아직은 없어요."

"앞으로 입덧이 시작될 수 있으니 많이 힘들면 말하세요."

"네"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난 뒤 의사는 나에게 '입덧'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초기에는 입덧 때문에 고생하는 산모가 많으니 혹시 너무 심하면 말하라고 했다.



 "요즘 입덧 약이 있으니 꼭 말하세요."



라는  당부도 덧붙이며.



그리고 태아의 발달에 중요한 엽산은 꼭꼭 챙겨 먹으라고 강조했다. 임신하기 전부터 엽산은 챙겨 먹어야 된다고 해서 결혼하고부터 웬만하면 챙겨 먹는 편이었다. 다만, 평소에 먹는 약이 없는 터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루는 빼먹거나 기억하고 있어도 귀찮음에 먹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많았다. 근데 이젠 필수로 꼭 챙겨 먹어야 되는 영양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산전검사 결과는 아주 좋아요."



덧붙여 아기집을 보러 갔을 때 추가로 한 피검사 결과를 얘기해주었다. 먼저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혈색소 수치는 지극히 정상. 그리고 비타민D 수치도 23으로 양호하다고 했다.  사실 정상수치가 30이나 10명 중 8명은 비타민D 수치가 10도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높은 편이라고 칭찬해줬다. 뭔가 건강한 엄마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



임신 초기, 나의 증상을 나열해보자면 6주 차부터 나는 공복에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심해지는 흔히 말하는 '먹덧'이 생겼다. 아예 못 먹는 입덧이 아니라 먹으면 나아지는 먹덧... 이 때는 체중이 엄청나게 늘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뭐라도 먹지 않으면 속이 안 좋아서 앉아있기 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게, 국물이 없으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국물이 당겼고 얼큰한 요리들에 구미가 당겼다. 아침도 시리얼, 빵으로 때우거나 안 먹기 일쑤였는데 이 시기에는 아침을 꼭 챙겨 먹어야 했고 무조건 '밥' 이어야 했다. 빵, 과자 등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었다. 어렸을 때 먹었던 고추장 물, 갱시기, 올갱이국, 오징어국, 매실장아찌 등등. 엄마는 이 얘기를 들으며 뱃속의 아기가 완전히 신토불이, 할머니 입맛이라며 여러 번 웃으셨다.


대신 내가 먹고 싶어 한 음식을 기억해두었다가 주말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주셨다. 그때는 그저 맛있게 먹었는데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딸내미 반찬을 해야 했을 엄마가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엄마가 곁에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먹덧이라 해서 무조건 잘 먹었던 건 아니다. 잘 먹는 편이었지만, 안 먹고 싶은 음식도 있었다. 특히 '고기'는 너무 먹기 싫었다. (지금은 잘 먹는다.... 고로 못 먹는 음식은 없는 걸로.) 특히 찌개에 들어간 고기에서 비린내가 강하게 느껴져 먹기가 힘들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임신하면 뜬금없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던데 나도 그랬다. 안 그래도 과일을 좋아하는데 5월 초부터 복숭아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복숭아' '복숭아' 노래를 부르며 온 가족을 괴롭혀 결국 남편은 복숭아 통조림이라도 사 오겠다 했다. (하지만 나는 복숭아 통조림이 아닌 아삭아삭한 분홍빛 복숭아가 먹고 싶었다!) 긴 기다림 끝, 인터넷으로 복숭아를 주문해준 남편직접 공판장에 가서 복숭아를 공수해온 엄마 덕에 6월이 되어서야 복숭아를 맛볼 수 있었다. 비록 아삭아삭한 복숭아는 아니었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신체적 증상으로는 다리가 너무 저렸다. 특히 우측 다리가 저렸는데, 의사한테 얘기하니 아직 나타날 증상이 아니라며 단호박으로 얘길 했고 나는 잘 때도 걸을 때도 회사생활을 할 때도 다리 저림으로 엄청 힘들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시아버지가 아들이라며... 어머니도 남편을 가졌을 때 우측 다리를 저려했고, 난소가 두 개가 있는데 오른쪽에서 나온 난자와 정자가 만나면 아들이고, 그래서 우측 다리가 저린다는.... 아버님만의 기적의 논리(?)를 펼치셨다.


다리 저림은 다행히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다리 마사지기와 어머니가 사용했던 족욕기를 쓰니 서서히 나아지더니 중기에 진입한 뒤 말끔히 사라졌다.



#



나는 임신기간 내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임산부가 쓸 수 있는 제도를 찾아보았는데 그중 하나가 '임산부 단축근무 제도'였다. 12주까지 2시간 일찍 퇴근하는 제도이며,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직장에서 쓸 수 있는 혜택은 다 뽑아먹고야 말겠다! 는 신념으로 신청했는데 찾아보니 당연히 쓸 수 있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해주지 않는 직장도 많았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쉽게 허락해줘서 5주 5일부터 단축근무를 시작했다. 엄청 초기였고 입덧은 없었지만 이 시기에 다리 저림과 몸이 쉽게 피로해져 이 제도는 나에게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일 하기 너무 싫었는데, 다행히 그 덕에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다만 직장을 다니면서 특히 옷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직업 특성상 출장이 잦아 바지가 편한데, 10주부터 배가 불편하고 원래 입던 바지들이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몸무게 변동은 없는데 벌써부터 바지가 안 맞는 게 말이 되나?


급한 맘에 인터넷 검색을 하니 초산인 경우 거의 20주부터 원래 입는 바지 못 입는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배가 빨리 불러오는 거지? 혹시 아기가 너무 크려는 걸까?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주변에 아이를 크게 낳은 친구가 분만 시 엄청 고생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옷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체형의 변화가 느껴지굉장히 우울했.


이제 정말 몸이 변하는구나 - 생각도 들고, 넉넉한 바지를 입고 가니 배가 좀 부른 것 같다. 몸집이 커진 것 같다. 등 주위 사람들 얘기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나를 안아주며 '지금 이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도닥여주었다. 그 말에 시무룩하던 내 얼굴에 옅은 미소가 뗬다.


앞으로 나의 몸은 몇 번이고 변화를 겪을 것이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환경적 변화도 겪을 것이다. 그 변화 속에서 내가 작아지고 우울감을 느낄 때 평생을 함께 살 남편의 말 한마디가 정말 큰 위로가 됨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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