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가 끝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조금 더 해보려고요.
지난 봄, 업무추진비를 정보공개 청구해서 받기까지 지난했던 시간은 어느덧 꽤 흘렀다. 예상외로 반응은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해당 지역을 잘 아는 주민들은 직접 지자체 홈페이지에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캡처해서 해명을 요구하거나 인터넷 카페, 커뮤니티 혹은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려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얼마 뒤, 6.13 지방선거에서 몇몇 후보들은 업무추진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단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좀 바뀐 건가? 잘 모르겠다.
의도치 않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치혐오를 조장한다는 것.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방의회는 혐오 대상이 아닌 관심의 대상이어야 했다. 그들이 우리의 관심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업무추진비 사용이 나쁜 건 아니다.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직원들 선물을 사줄 수 있다. 다만, 원칙에 어긋나는 예산 집행이 나쁜 것이다. 그런 게 유독 지방으로 갈수록 많았다. 특히, 주말, 공휴일, 심야시간 업무추진비 사용은 금지돼 있음에도 사용 건수은 많았다. 물론 심야시간 사용이나 50만원 이상 집행 증빙 문서는 대부분 제출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몇몇 의회사무처 직원들과 통화를 할 때면 수화기 넘어 들리는 말투와 태도는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걸 청구해서 자기들을 힘들게 하냐고 화내거나 사용시간은 원래 기록하지 않아서 없다고 당당하거나 등등... 혐오가 아닌 취재하는 동안 겪었던 이런 점들을 말하고 싶었다. 긴 글이 아닌 데이터로 재밌게.
애초에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분석해서 공개하고자 했던 건 2가지 목적이다. 첫 번째는 위와 같이 지방의회 업무추진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우린 국회의원에 대한 관심이 많다. 특히, 지역구 의원이 뭐하는지 보다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의원을 늘 보게 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을 대변하는 '지방의원'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덕분에 '등잔 밑이 어두워' 새벽 2시에 술집에서 업무추진비로 결제를 해도,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엉뚱한 보고서를 베껴 제출해도 아무도 따끔하게 지적하지 않았다.
기사가 지역 주민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면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다만 기사로만 끝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어찌 되었든 다음번에 청구해도 올바른 형식이 오게끔 변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다시 이번 의회가 시작된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3분기 의장단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청구했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면 3가지가 힘들었다.
1. 업무추진비 자체를 공개하지 않는 의회
2. 사용시간, 장소, 인원 등 불리한 내역을 빼고 부분 공개하는 의회
3. 각자 기록하고 있는 양식으로 공개하는 의회
1번과 2번은 정보공개법으로 해결이 된다. 문제는 3번. 226개 의회에서 보낸 엑셀, PDF, HWP를 제각각 받으면 정제해야 한다. 문서 하나 열어서 구조와 데이터 양식 맞추고 시트를 하나로 합친다. 덕분에 정제에만 두 달 걸렸다. 그런데 형식만 나름 통일되면 꾸준히 전국 의회 업무추진비 내역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업무추진비 사용 관련 9개 변수(칼럼)로 구성된 엑셀 샘플을 첨부했다. 꾸준히 분기별로 청구 예정이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10일이 지났다.
의회에서 보내주신 3분기 업무추진비 엑셀 파일을 하나씩 열어봤다. 어땠냐고? "우와!! 대박!!" 너무 기뻤다. 걱정과 달리 대부분의 의회에서 샘플 양식을 사용해서 보내주셨다. 사용일자, 시간, 장소, 인원, 내역, 결제방법, 사용자 등 분석 가능한 형식으로 빠짐없이 공개해주셨다. 지난번에는 상임위원장마다 별도의 시트로 주셔서 꽤 작업시간이 길었는데 이번에는 요구한 대로 시트 하나에 사용자를 다 합쳐주시기도 했다. 서울의 한 지역구 의회사무처에서는 전화 와서 "덕분에 저희도 의원들에게 당당하게 사용내역을 달라고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공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고 이 형식으로 꾸준히 공개하겠습니다"라며 고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너무 감사했고, 다행이었다. 이제 누가 청구해도 이렇게 관리되고 있다면 투명하고 빠르게 받을 수 있을 거다. 2018년 한 해 가장 큰 보람 중 하나가 됐다.
5월에 한 의회 직원이 구수한 사투리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받으려고 하세요?" 내 대답은 "글쎄요. 그냥 하는 건데요..."라고 했던 거 같다. 잘못된 사회의 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고 이게 내가 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동일 뿐이다.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세금은 올바르게 쓰여야 한다. 그래서 지방의회 업무추진비는 꾸준히 정보공개 청구해서 관리할 예정이고 기회가 된다면 공개할 것이다. 어쨌든 2018년 지방의회 퀘스트 두 개는 완료!
끝으로 정보공개센터 창립 10주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