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청구 오답노트
출근하니 책상 위에 웬 편지 봉투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뭐지....?"
편지 봉투를 대충 훑어보니 워싱턴에 있는 미국 정부기관에서 보낸 거였다. '나 뭐 잘못했나...'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봤더니 이게 웬걸? 빵 터졌다. 그건 바로 미국발 정보공개청구 결과 통지서였다. 문득 10월 말에 정보공개청구했던 게 생각났다. (쉿!! 아이템은 비밀!!)
무엇보다 답변이 궁금했다. 공개냐 비공개냐? 굉장히 공손하게 쓰인 문장을 읽다 내려가니 결국 '네가 청구한 건 못 줘!'라는 비공개 통지서였다. 쳇...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못 주겠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사람 설레게 우편으로 보내준 건가 원망스럽다.
퉁명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쓴 건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냐는 질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지는 시간이 꽤 됐는데 이번에 또 이렇게 비공개 통지문을 받으니깐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청구 방법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실패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벌써 두 번째 청구 실패인데 다음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면서 왜 실패했는지 다시 한번 복기하고 싶었다. 일종의 오답노트다.
우선 미국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살펴보자. 한국 헌법에서도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 제18조, 제21조의 '표현이 자유'와 관련해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개별적 정보공개청구권이 인정하듯이 미국도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위해 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 법을 제정해 정보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정보공개법은 연방 법률로 1966년에 만들어졌으며(법적 효력은 1967년) "행정절차법"의 일부인 미국 법전 제5편 제552조에 해당한다. 미국인만 할 수 있지 않냐고 하지만 아니다. 미국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any person)도 가능하다.
FOIA를 통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아래 사이트이다. 우리나라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이트가 전부 영어라 복잡해 보이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없다. 참고로 10월에 미국 국무부로 청구했던 단계 그대로 설명한다.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봤는데 너무 쉽다!
청구 전에 찾는 자료 검색해보기
청구 대상 기관 선택
청구서 작성하기
먼저 청구 전에 자료 검색하기다. 청구인은 정부 기관에 어떤 자료와 정보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괜히 청구서를 작성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나와있는 자료를 찾아보기를 권장한다. 사이트 메인 화면 중간쯤 돋보기가 그려진 아이콘 메뉴 'Do research before you request'이다. 클릭하면 검색어를 입력할 수 있고 가령 Immigration data를 키워드로 넣어보면 정부 기관에서 생산한 관련 통계와 리포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온다. 필요한 게 있으면 굳이 청구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분들도 알 거다. 저기엔 내가 필요한 자료가 없을 것이란 걸. 그렇다. 우리가 정보공개청구하는 이유는 기존에 나와있지 않는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청구서는 무조건 작성하게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청구서를 작성해 보자. 메인에서 Start your request를 선택하면 아래 화면이 뜬다. 한국 정보공개청구 단계랑 비슷한데 먼저 청구 기관을 선택해야 한다. 옵션은 두 가지다. 첫째, 기관 이름을 내가 입력하는 방법과 둘째, 기관명을 잘 모를 때는 기관 index로 검색하는 방법이다. 참고로 FOIA에서 모든 정부 기관 목록이 뜨진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기관 자체 사이트에서 정보공개청구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난 미국 국무부를 대상으로 청구했기 때문에 Department of State (U.S. Department of State)를 선택했다.
미국 법무부를 선택하면 미국 법무부에서 정보공개청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안내를 해준다. 기관별로 설명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자세하게 여러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나라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와 달리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자세히 보면 미국 법무부 FOIA의 목표와 담당자 그리고 평균적으로 정보공개청구 건을 처리하는 시간, 청구 안내 등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만한 수준이다.
덕분에 미국 법무부는 자체적으로 청구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링크를 소개하고 있어서 청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간단한 청구 건도 평균 120일 걸린다는 설명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위 단계까지가 미국 정부 기관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할 때 공통적으로 밟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관마다 처리기관, 수수료, 감면 정책 등 다르며 운영 사이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청구서를 작성하면 되는데 몇몇 기관 청구서 작성을 해보니 큰 틀에서 다른 건 거의 없었다. 다시 미국 법무부 사이트로 돌아오면 첫 화면이 아래와 같다. 작성해야 하는 단계는 총 7개 정도 됐다. 시작하기 전에 기본적인 물음, 청구인 연락 정보, 청구서 세부내용 작성, 수수료 및 감면, 부가 정보 그리고 청구서 최종 확인을 거치게 된다. 국내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해본 적이 있다면 특별히 어려운 건 없다.
다만 수수료와 감면 부분이 조금 달랐는데 미국 FOIA는 내가 낼 수 있는 수수료 한도를 입력해야 했다. 가령 25달러까지 낼 수 있다고 했는데 수수료가 50달러가 나오면 사전에 공지를 해주는 제도로 보인다. 청구 유형을 선택하고 마지막에 Fee Waiver를 만나게 되는데 한마디로 청구 수수료 감면 제도다. 법무부 사이트에서 정보공개청구 가이드(171.16. Waiver or reduction of fees)를 꼼꼼히 읽어보면 재밌는 감면 사유가 많다. 청구 자료가 공익적이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와 같이 다소 주관적인 사유도 있었고 기사나 출판에 활용될 때도 고려 대상으로 보인다.
뭐 결론은 비공개 처리로 실패다. 작년에 탐사팀 있을 때 청구했던 건 분량이 너무 많다며 '공개는 해줄게! 그런데 검토해야 할 박스당 4시간에서 8시간이 걸리고 이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7,408시간에서 14,816시간 예상되며 결국 36개월가량 걸릴 거야'라고 무시무시한 답변이 와서 포기했다. 당시 청구 기관은 미국증권거래위원회였는데 청구서에 대한 답변은 이메일로 왔다. (이번에는 우편으로 온 걸 보면 기관마다 답변 방식이 다소 다른 듯 싶다)
하지만 이번 국무부를 대상으로 청구한 건은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청구서가 부실하다는 건 다소 주관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작년 청구서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이 기각 사유다.
.... because it does not reasonably describe the records sought. A request must reasonably describe the Department records that are sought to enable Department personnel to begin a search for responsive records. Such detail may include the subject, timeframe, names of any individuals involved, a contract number.....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면 부서 직원이 기록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기간, 이름, 계약 번호 등등이 해당된다는 건데 국내 정보공개청구서 작성 경험이 많아서 최대한 상세히 썼고 작년 증권거래위원회 청구서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걸 보면 기관마다 청구서 요구 사항 역시 다르다고 봐야 될 거 같다. 혹은 두 번의 작성 내용이 부실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미국 국무부는 2015년 민간연구단체인 '효과적인 정부를 위한 센터(Center for Effective Government)'가 발표한 정보공개 기관 평가에서 가장 낮은 F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곧 다른 건으로 다시 청구를 할 예정인데 몇몇 미국 정부 기관에서 설명하는 정보공개청구 팁을 바탕으로 핵심을 정리해보자. 대략 7가지 항목은 기본적으로 작성하라고 권유한다. 요청하는 게 사진, 영상, PDF, 엑셀인지,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세부적으로 무엇을 청구하고 담당 부서는 어딘지, 기록물 생산 근거는 무엇인지 등 청구인이 자세히 청구 내용을 작성할수록 공개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Type of record; 기록물 유형
Timeframe of record (when was the record created); 기간
Specific subject matter, country, person and/or organization; 세부 주제, 국가, 사람, 조직 등
Offices or consulates originating or receiving the record; 기록물을 접수하는 조직 혹은 담당 부서
Particular event, policy or circumstance that led to the creation of the record; 기록물을 생산 근거가 되는 특정 사건, 정책, 환경 등
Reason why you believe the record exists; 기록물의 존재 근거(이유)
If requesting information involving a contract with the Department of State, the contract number, approximate date, type of contract, and name of contractor. (기타 세부 사항들)
다시 살펴보니 기록물 생산 근거나 왜 그게 있을 수밖에 없는지는 청구서를 작성할 때 쓰지 않았는데 향후 청구 건에 대해서는 꼼꼼히 살펴야겠다. 데이터저널리즘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데이터(자료) 수집이라고 생각하는데 매번 국내 정보공개청구만 이용할 게 아니라 국내 이슈와 관련해서 미국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나 정보를 기사에 활용해보는 것도 계속 고민 중이라 그간 실패를 기록으로 남겨봤다.
글을 쓰다가 찾아 보니 정보공개센터에서도 미국 CIA에 정보공개청구한 경험을 공유했다.
FOIA가 이슈가 됐던 사건 중 하나는 힐러리 클린턴(당시 국무부 장관)의 개인 이메일을 워싱턴 DC 연방지법 판사가 국무부 웹사이트에 공개할 것을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