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끝나가지만 여전히 코로나라는 끝없는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침표는 찍고 싶었다. 지난 1년간 난 무엇을 했고 아쉬워했으며 만족했는지. 또 다가오는 2021년의 빈칸은 어떻게 채울 건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해처럼 또 어리둥절 시간을 흘러 보내고 싶지는 않다.
작년 연말에 탐사보도팀에서 데이터저널리즘팀으로 부서를 옮겼다. 방송국 보도국이란 새로운 환경에서 데이터저널리즘을 풀어내는 첫 경험을 시작하게 됐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뚜렷한 주제(야마)와 현장이 있어야 했고(매우 중요) 꽤 시간을 투자해 나온 분석 결과는 1분 30초 남짓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했다. 사실 아직도 어렵다. 데이터 분석 결과는 숫자인데 현장을 항상 동반시켜야 하는 건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풀어보기로 했고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기사들을 만들었다.
'올해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가 뭐였을까?'라고 떠올려보니 떠오르는 3개의 기사가 있다. 지난 기사에 대한 회고부터 끄적여 본다.
장애인 사전투표소
짧은 기사지만 나에겐 올해 가장 의미 있었고 기억에 남는 기사다. 처음으로 혼자 현장까지 취재했고 배운 게 많았던 보도였다. 총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려운 사전투표소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크롤링으로 사전투표소 현황을 수집했고 분석했더니 서울의 21%가 접근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데이터는 있는데 현장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다가 실제로 1급 장애를 가진 김진우 님과 사전투표소를 방문해 점검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었기에 데이터 분석 결과 가장 접근성이 어려운 투표소를 같이 점검했다. 데이터로 시작해 현장에서 끝나는 방식인데 나쁘지 않았다.
보도가 나간 이후 시청자위원회와 민언련에서도 좋은 평가를 해줬기에 특히나 의미 있는 기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방송 편집에 대한 책임감과 자세를 뼈저리게 배운 경험도 빠질 수 없겠다.
고위공직자 재산 분석은 연례행사처럼 재산 데이터 PDF를 엑셀로 변환하고 분석하지만 기초의원 재산 분석은 지금까지 감히 도전할 생각조차 못했었다. 지자체마다 재산 공개 형식이 다르다 보니 그걸 취합하고 설득해서 다시 받는 과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올해 그걸 해냈다. 그런데 누가 재산이 가장 많은지, 평균은 얼마인지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농지법과 이해충돌에 집중해봤다. 실제로 농지법 위반으로 걸린 기초의원들은 토지를 원상 복구하고 농지전용부담금을 내도록 이끌어냈다. 의미 있었던 보도였다.
중앙일보에서도 했지만 8대 기초의회가 반환점을 도는 올해 한번 더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 프로젝트보다 뭔가 더 발전된 기사로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분석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였던 건 바로 50만 원 이상 끊어 쓰기와 주말 및 공휴일 사용이었다. 2년 전 기사가 호평을 많이 받았지만 비판도 있었는데 그게 바로 "업무추진비 쓸 수도 있는 거 아니냐?"였다. 그래서 더욱 불법과 꼼수 사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번 분석에서는 그런 꼼수 사용을 밝혀내려고 신경 썼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배정훈 기자는 한 기초의회 의장이 부정하게 쓴 업무추진비 150만 원을 환수까지 이끌어냈다. 짝짝짝! 이달의 기자상도 수상!
2년째 맡고 있는 수업이 하나 있다. 덕분에 토요일은 늘 기다려졌다. 서울대학교 정보문화학 '비주얼라이제이션' 강의를 맡고 있는데 올해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강의 방식만 학교에서 줌으로 변했지 수업 내용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굳이 바꿀 이유도 없지만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나태함이 스스로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지 늘 실용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데 내년에는 조금 변화를 줘볼까 고민 중이다. 우리 팀과 협업도 생각 중이다.
이번 1학기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기은이도 마부작침 인턴으로 합류해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군가 이 분야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꽤 컸다. 다음 학기에는 어떤 친구들을 만날지 벌써부터 설렌다. 아래는 1학기 정보문화학 과제전 전시 사이트인데 지금은 닫힌 듯?
올해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배운 것도 많았지만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에서는 큰 진전은 없었다는 결론이다. 매일 R프로그래밍을 다루고 데이터를 만졌지만 분명히 한걸음 더 넘어서진 못했다. 한창 공부할 때 느껴지던 도전 의식이 없었다. 통계를 더 공부하고 싶었고 방통대 통계학과를 편입해 수업을 들어볼까 싶었는데 결국 실패.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한 한 해라고 생각했는데 10월에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에서 '올해의 주목할만한 데이터저널리스트' 상을 주셨다.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식상한 말이지만 더욱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파이썬 강의를 하나 결제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공직자 재산 관보 PDF를 CSV로 변환하는 코드는 파이썬으로도 만들고 싶은 이유였다. 개인적으로 코딩 공부는 책 보고 하는 것보다는 직접 만들고 부딪치며 알게 되는 게 도움이 컸다. 재산 PDF를 엑셀로 변환시키고 챗봇까지 연결해보려니 어쩔 수 없이 파이썬은 배워야 하지 싶다. (R을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개인의 성장도 동반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2021년은?
우선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저널리즘을 풀어내고 싶다. 그게 데이터가 될 수도 있고 풀어내는 방식이나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점심에 한 선배와의 점심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거악(巨惡)을 감시하는 의미 있는 저널리즘에 도전해보고 싶다. 뭐가 됐던지 한 단계 진화는 필요한 시점이다. 재산 분석이나 업무추진비 역시 훌륭한 공직 감시이지만 과거 데이터의 답습이고 새로운 문제의식을 탐색하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두 번째는 챗봇을 스스로 꼭 만들 예정이다. 공직자 재산 내역은 변환해서 엑셀로 가지고 있는데 은근히 다시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동료들도 종종 과거 재산 내역을 확인하고 싶어서 연락 오는 경우가 빈번했다. 서버를 만들고 거기에 과거 공직자 재산 내역 데이터를 올려놓고 챗봇으로 구현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올해 자주 했다. 물론 그걸 구현하려면 배울 것들이 조금 늘어나는데 올해는 배우지 못했다.
"Hey, 마부! 20대 국회의원 000 토지 내역 얼마야?"라고 물었을 때 "000 소속 000의 토지 내역은 현재가액으로 000원입니다"라고 바로 답해줄 수 있는 똑똑한 비서 녀석을 개발해 볼 예정이다. (아... 파이썬...)
끝으로 정치 데이터를 활용한 개인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할 예정. 정치학과 사회학 분야는 꾸준히 데이터를 활용한 이론과 방법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저널리즘에 접목시킬 것들도 꽤 있었다. 참여연대의 <열려라 국회>와 같은 사이트도 있지만 결국은 활용한 콘텐츠가 나와야 한다. 올해 아쉽게 못했는데 내년에는 꼭 선보일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