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와 뽀리 이야기를 시작하며.. <기대어 씁니다 _ 나의 슬픔>
그날은 2021년 4월 17일 토요일이었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아들까지 와서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두 모여 한껏 떠들썩한 저녁 7시쯤이었다. 루는 오랜만에 온 아들이 반가웠는지 아들에게 꼭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 그냥 아들에게 계속 붙어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쌀을 씻으려고 냉장고에서 작은 쌀통을 꺼냈다. 그런데 네 명이 먹기에는 남아있는 쌀이 부족했다. 남편에게 베란다에 있는 큰 쌀통에서 쌀을 담아오라고 했다.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왜 남편에게 시켰을까. 그냥 내가 직접 쌀을 담으러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편은 작은 쌀통을 들고 베란다로 걸어갔다. 내가 본 건 거기까지였다. 남편이 베란다로 향하는 그 모습까지였다. 갑자기 앵무새의 높고 째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이어 남편의 다급한 듯 놀란 소리가 들렸다.
“애가 문에 꼈어.”
“응?”
“내가 문을 닫았는데 애기가 날아왔나봐. 낀 것 같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머리는 멈췄는데 몸이 반응하여 루에게로 달려갔다. 방에 있던 아들과 딸도 달려나왔다. 루야!! 아들이 루를 들어올렸다. 아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루는 정신을 잃은 듯했다. 루야! 루야!! 나는 루를 부르며 소리쳤다. 그때 루가 정신이 든 듯 비명을 질렀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 높고 두껍고 온갖 잡음이 섞인 카랑카랑한 소리. 작고 작은 몸 저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듯한 째진 비명소리. 루는 그렇게 대여섯 번의 비명을 지르고 숨을 거뒀다. 병원!! 병원!! 아들과 함께 루를 작은 담요에 감싸고 급하게 병원에 갔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드라마에선 가족의 죽음을 듣고 나면 주저앉아 통곡을 하거나 정신을 잃던데 그런 것도 없었다. 마음이 조용했다. 병원 로비에 앉아 루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집에 가자.
남편은 자신의 실수로 루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고 욕실에서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 너머로 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검색하고 뽀리는 대답없는 루를 찾는 듯 집안 곳곳을 날아다니며 계속 울어댔다. 나는 담요에 싸인 루의 아직 가시지 않은 온기를 지키고 싶어 계속 루를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 만지고 볼에 비벼댔다. 우리 루 아직 따뜻해... 작게 소리를 내다 그만 마음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경기도 광주의 한 장례업체에서 루의 장례를 치르고 나의 세상은 슬픔이었다. 내 몸이 눈물로 만들어진 듯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대못이 심장을 깊고 길게 찔러댔고 몸속 장기들은 점점 커지더니 하나의 크고 딱딱한 바위가 되어 내 숨통을 조였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세먼지가 집안을 온통 뿌옇게 만들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밖에 나가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베란다 밖의 세상은 이미 내 눈물에 잠겨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눈물이 밀려들어와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숨을 쉬려면 움직여야만 했다. 거실에서 부엌까지 계속 왔다갔다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숨을 쉬기 위해 왔다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 기어서 갔다. 루야... 루야...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해... 아가야... 나는 루의 이름을 부르고 울면서 밤새 걷고 기었다. 그렇게 2주를 버텨내니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서도 울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루의 죽음은 지나치게 가벼운, 고작해야 앵무새의 죽음이었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에게, 설령 동물을 키워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에게 나는 힘들게 루의 죽음의 무게를 이해시켜야 했다. 루가 애기였을 때 데려와서 이유식을 먹이면서 키웠어요. 내 자식이라 생각하며 내 딸 내 딸 하며 키웠어요. 아이가 애기였을 때 1년동안은 내 가슴 위에서 잤어요. 그 후로는 밤잠은 혼자 자더라도 낮잠은 꼭 내 손바닥 위에서 자거나 내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잤어요. 어딜 가든 엄마 엄마 부르며 나와 함께 했어요. 8살이 되도록 내 딸이었어요. 루야 엄마 뽀뽀~ 하고 말하면 부리로 내 입술에 뽀뽀를 해주던 아이였어요. 내가 노래부르면 장단 맞춰 소리를 내고 고개를 흔들며 춤도 추던 아이였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내 아이였어요... 왜 사람들에게 내 슬픔과 루의 존재의 크기를 이해시켜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끊임없이 이해시켜야만 했다.
슬픔은 생각보다 질기고 잔인했다. 루가 떠나고 뽀리는 마음에 병이 들었다. 새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의 병은 이미 진행이 되고 있었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고 나는 새벽에 응급실로 달려가 울며 매달렸지만 희망은 없었다. 변을 못 싸고 몸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며 무거워지는 뽀리를 보며 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다 하겠다고 기도했다. 우리 뽀리 살려달라, 내가 내 수명을 뽀리에게 나눠주겠으니 내 수명으로 우리 뽀리 살게 해달라 울며 기도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뽀리는 루의 곁으로 가버렸다. 그날 아침, 혈변을 눈 뽀리를 보며 죽음을 예감했지만 혹시 다른 병원은 뽀리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안고 또 다른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은평구의 길을 기억한다. 허전한 도로에 노란 은행잎들이 흩날리던, 슬프게도 아름답던 그 거리를 기억한다. 병원 로비에 비치던 따스한 햇살을 기억한다.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하늘을 바라보던 뽀리의 힘겨운 눈을 기억한다. 세상 최고의 개구쟁이였던 뽀리는 내가 주는 약을 끝까지 먹어주더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품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다.
절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아이들이 떠난 후, 한 달에 한 번씩 절에 가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종무소에 들러 초를 사고 먼저 대웅전에 들른 후 명부전으로 간다. 삼배를 하고 ‘앵무새 루, 뽀리 극락왕생 발원’이 적힌 초를 단상에 놓고 불을 밝힌다. 다시 삼배를 하고 루와 뽀리의 이름이 적힌 영가등을 잠시 올려다보고 명부전을 나선다. 그리고는 절 부근에 있는 어느 나무에게로 간다.
“루야 뽀리야, 엄마 왔다!”
단 하루도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매일 매 순간 아이들이 보고싶고 만지고 싶어서 마음앓이를 한다. 여전히 슬픔이 차오르고 눈물이 나고 몸속 장기들은 거대하고 딱딱한 바위로 변해 내 숨통을 없애려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순간이 올 때 다스릴 줄 안다. 슬픔을 거두고 몸속 바위를 흐물흐물하게 만들 줄 안다.
“루야 뽀리야 엄마가 요즘 찌찌랑 파래땜에 아주 정신이 없어. 걔네들은 말을 너무 안들어. 우리 루랑 뽀리는 엄마 말 진짜 잘 들었는데. 그치?”
나무 아래 아이들이 잠든 곳 옆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다. 새는 보이지 않는데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아마 루와 뽀리가 우리 엄마 왔다며 친구들을 잔뜩 이끌고 내려왔나보다. 바람이 따스하게 분다. 하늘도 참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