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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해 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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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여유 Jan 26. 2023

바다 너머 솜사탕 노을이 보고 싶다면

달콤하고 평온한 바다를 찾아서



“삼척? 왜 하필 삼척이야? 너 삼척 바다 깊은 건 아니? 파도도 세고 말이야.”


강원도가 고향인 친정엄마는 삼척에 간다는 나에게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동해 바다를 참 많이 갔었는데 이상하게 삼척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 자주 가던 강릉과 속초에서도 1시간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삼척. 서울에서 차로 4시간이라는 물리적 거리와 나와 연결고리 하나 없는 삼척을 향한 심리적 거리는 ‘굳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발을 묶어두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제목처럼, 나는 같은 이유로 삼척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 그리고 바다가 있는 곳. 지금의 현실에서 멀리 벗어나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만의 자유를 누리는 삶, 지금 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친정엄마는 삼척 바다의 거센 파도를 염려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그곳에 가면 내 마음속 파도를 그대로 내보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렇게 시작한 삼척에서의 3주살이였다. 도착 다음 날, 나는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바다가 어디일지 찾아보았다. 여행 온 것이 아니라 살러 왔으니 시간에 쫓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못 올 것처럼 그날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도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녁 7시를 넘긴 시각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던 바다, 우리가 간 곳은 바로 삼척 신남해변이었다.



삼척에 있는 동안 참 많은 바다를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삼척해변과 BTS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맹방해변, 그리고 스노클링 마니아들이 매년 찾는 장호해변, 용화해변 등 주변의 크고 작은 해변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각자 나름의 매력을 지닌 삼척의 대표 해변들이었지만 그중 내가 제일 사랑했던 곳은 이곳, 신남해변이었다.



신남해변은 한눈에 처음과 끝이 보이는 작고 아담한 해변이다. 주변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대신 작은 동네 슈퍼가 하나 있어서 급한 것은 그곳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다. 최소한의 것만 갖춰진 신남해변의 한적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남해변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노을 때문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노을은 경이로운 대자연의 위엄이 느껴지는 그런 화려한 황금빛 노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하던 솜사탕 같은 노을이었다.





노을을 바라보다 문득 초등학교 입학식 때 처음 먹어보았던 솜사탕이 생각났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입학식 준비가 한창이었고, 기쁨과 긴장이 묘하게 섞인 표정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축제 분위기 속에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한 편에서 솜사탕을 팔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 엄마를 졸라 사 먹었던 폭신한 구름 모양의 연핑크 솜사탕 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으며 부드럽게 입 안을 맴도는 그 특유의 맛, 그 달콤함이 너무도 좋았다. 요령 없이 솜사탕을 먹다 보니 어느새 손도, 입가도 설탕 범벅이 되어 찐득 거렸고 엄마는 입학식이 시작될까 봐 내 손과 입을 연신 닦아주었다. 그 이후 입학식은 어땠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기억난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7살의 나는 굉장히 신나 있었다는 것을. 그건 달콤한 솜사탕 때문이었을까.






삼척에 와서 솜사탕을 닮은 노을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앞으로 삼척에서의 날들이 신나는 일들로 가득 찰 것 같다는 달콤한 예감이 들었다. 모래사장에 앉아 바라본 바다는 너무나 평온했고 따뜻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누구나 마음속 파도는 있기 마련이야. 그럴 때는 쉬어가면 그만이야. 그게 인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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