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에서 만난 생활의 달인들 : 이화루
삼척에 온 후 매일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미션이 있었다. 바로 저녁 먹을 곳을 찾는 것. 워케이션 중인 남편을 위해 아침과 점심은 숙소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일을 마친 저녁 시간에는 삼척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곤 했다. 주부에게 있어 저녁 식사는 세 식구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의식과도 같다. 이곳에서도 그 의식의 책임자는 나였다. 그날 식구들의 기분과 식성, 날씨를 고려하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한 끼 메뉴를 매일 검색하곤 했다. 회사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메뉴를 정하는 직원, 밥총무가 얼마나 극한 직업인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무엇을 먹을까 찾다가 우연히 삼척 달인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바로 내가 한때 즐겨보던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분들에 대한 기사였다. 맹방해수욕장 주변에는 이 방송에 출연한 달인이 두 분이나 있었다. 바로 비빔짬뽕으로 유명한 삼척 '이화루'와 꽈배기로 유명한 '문화제과'의 주인 분들이다. 문화제과에서 골목길로 고개를 돌리면 이화루가 보일 정도로 30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두 가게는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은 '이화루'였다.
이화루에 가기로 했던 날, 사실 인터넷에는 마감 시간이 넉넉하게 적혀 있었지만 혹시 몰라 5시 40분쯤 전화를 해보았다. "아이쿠, 우리 지금 문 닫으려고 하는데. 내일 오세요." 사장님께서는 하마터면 헛걸음을 할 뻔했다며 재료가 소진되어 곧 문을 닫는다고 하셨다. 휴가철이 아닌데도 이렇게 일찍 재료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 맛있는 곳이구나 싶어 다음 날 서둘러 이화루로 향했다.
휴가철에는 가게 앞부터 골목길 끝까지 줄이 이어져 뙤약볕 아래에서 한참을 대기해야 한다던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평소 '이렇게까지 줄 서서 먹어야 해?'라고 말하는 남편을 둔 나는 지금의 한가로움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황급히 떠나려는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온 덕에 기분 좋게 입장해서 달인의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전화하셨던 분들인가 보구먼!"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중국집에 들어서자, 남자 사장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신다. 그랬다. 나름 어제보다 일찍 출발하긴 했지만 혹시나 재료가 또 떨어져 헛걸음할까 봐 밥총무인 나는 미리 확인 전화를 했던 것이다. 입구에서 살짝 안을 들여다보니 여느 읍내 중국집과 다르지 않은 내부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한쪽에선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연인이 식사를 마치고 있었고, 그들의 식탁과 맞닿은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인사들의 사인이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시선은 주방에서 멈췄다. 바로 이화루의 요리사이자 생활의 달인 출연자이신 아내 분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이화루의 대표 음식은 달인이 직접 개발한 비빔짬뽕. 우리는 종류별로 음식을 주문해 보았다. 생활의 달인 출연자가 만든 요리들은 과연 어떨까 궁금해하며. 맛 평가라면 자신 있었다. 자장면으로 말하자면, 벌써 몇십 년 동안 수도 없이 먹어 온 메뉴 아니던가.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음식을 향한 달인의 자부심만큼 우리의 그릇은 빠르게 비워졌다. 걸쭉한 비주얼을 가진 비빔짬뽕은 별미였고, 짜장과 짬뽕을 섞어서 비벼 먹는 짬짜면은 분명 아는 맛인데 계속 젓가락이 오고 갔다. 짜장이 잔뜩 묻은 아이의 입가를 보니 오늘도 밥총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지막 손님이었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두 사장님과 나누었던 대화들 때문이었다.
"서울 어디에서 왔어요?"
삼척에서 만난 분들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종종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보통 서울이라고 대답하면 거기에서 우리의 지역 대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양재동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두 분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거기? 내가 아주 잘 알지! 말죽거리라고 있잖아. 내가 거기 20년 전에 살았었지. 꽃시장도 자주 갔었고 말이야."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말죽거리에서 종로를 거쳐 삼척으로, 그리고 20년 전 과거를 지나 현재로 지역과 시간을 자유자재로 옮겨가며 이어졌다.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그 이야기, 서울에서 삼척으로 와서 중국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서울에 살고 있다는 예쁘고 똑똑한 손녀딸 이야기, 그리고 건강 이야기까지 지나온 삶의 기록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온 우리를 배웅해 주셨던 두 분의 마지막 질문이 생각난다.
"탕수육 양 어때요? 나는 매번 똑같이 주는데 어떤 사람은 많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적다고 해. 그런 이야기 들으면 속상하더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간혹 듣게 되는 혹평은 달인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듯했다. 맛을 평가하고 양을 가늠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방문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런 고민을 하는 달인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다시 이곳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름 이화루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