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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새벽맘 May 06. 2021

사주 철학이 내게 미치는 영향

워킹맘 야망을 품다

내 첫사랑, 내 딸과 함께하는 육아 휴직 기간은 정말 꿀같았다. 15년간 근속하다가 처음으로 그렇게 길게 쉬어보는 거라 1년 남짓한 그 기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쉬면 시간이 진짜 빨리 간다고 했는데 나의 첫 육아 휴직 기간은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아직도 생생하다. 

'휴직한 지 아직 두 달도 안되었네? 넉 달도 안되었네? 우리 딸 백일이 오긴 오는 거야? 언제 6개월 넘나?' 

등등의 생각들.. 아마 모든 경험이 처음이라, 생소해서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애 내 첫 육아휴직기간이었던 2017년도는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도 육아휴직 기간이 한참 많이 남아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우리 딸이 태어난 지 8개월 즈음이 되었을 때 우연히 옛날에 들고 다니던 가방을 뒤질 일이 생겼다. 잘 안 쓰는 통장을 찾기 위해 내가 가진 가방을 다 뒤지고 있는데 흥미로운 종이쪽지가 하나 발견되었다. 2014년에 본 사주 철학 메모를 한 쪽지였다. 무려 3년 전에 쓰여진 쾌쾌 묵은 메모지였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났지만 그 철학관 갔던 거는 기억이 났다. 다리가 불편하신 여자분이 봐주셨는데 아주 차분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당시의 나는 결혼을 하기는 하는 건지.. 궁금하고 답답한 게 많았을 테다. 잘 보신다는 소개를 받고 갔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 그 메모를 발견한 것이다. 메모지에 아주 꼼꼼하게도 받아 적어 놨다. 모든 것을 잠시 멈춘 채 메모지에 적힌 내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오 마이 갓..!'

이거.. 완전 용하잖아? 내가 결혼 문제를 제일 크게 생각했을 텐데 그 메모지에는 결혼하니까 걱정 말라고 되어있었다. 그때가 2014년 초여름이었는데 결혼운 들어와 있으니까 늦어도 2016년 안에 결혼한다고 되어있었다. 그 당시엔 만나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 신랑을 만난 것도 2015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난 지금의 신랑과 2016년 초여름에 결혼했다. 나이가 이미 많은 나는 자식복(?)도 걱정이 되었을 거다. 결혼하면 애도 있는지 물어봤다. 걱정마라 했다. 아들딸 다 내 사주에 있고 3명이 있다고 했다. 정말로 결혼하고 난임의 걱정 없이 바로 첫째가 우리 곁으로 왔다. 

'우와.. 다 맞았다..!'

면서 계속 메모를 읽어 내려갔다.


당시 내게 가장 중요했을 또 다른 하나..! 내 사회생활, 직업, 경력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에서 큰 문제가 없고, 직장 생활이 잘 맞는다고 좋을 거라고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마 사주 철학 보시는 분이 나의 결혼, 출산 사이클을 염두에 두신 건지, 2018년 2019년엔 꼭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승진운, 이직을 하더라도 더 좋은 자리와 직책으로 올라가는 운이 있다고 그 기간엔 꼭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라고. 



이 메모를 발견한 당시 2017년 11월이었다. 나는 최장 2년까지 2019년 1월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딸은 아직 돌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2017년 3월 말 돌잔치만 끝내고 복직을 해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신랑이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그 메모지를 보여주면서 나 4월엔 복직을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신랑을 설득했다. 다행히 어린이집 자리도 있었다. 3살, 4살 반은 경쟁이 치열해도 가장 어린 아기들 반은 TO가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으로 입소 확정을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 시어머님을 설득했다. 우리 시어머님.. 사주 철학을 꽤 믿으시는 분이다. 친한 친구 분 중에도 사주 철학을 공부하신 분이 계서 소소한 일도 자주 물어보신다. 내가 

"어머님 이러이러하다, 다 맞았다, 저 복직해야 할 것 같아요!(애 좀 봐주세요..)"

했더니

"오냐!"

하셨다.


복직하기로 마음먹은 후 우리 딸이 처음으로 아팠다. 장염으로 5주 정도 고생을 했다. 5주나 고생을 하고 다 나은지 한 3주쯤 후에 또 독감 판정을 받았다. 돌도 안된 어린 내 딸에게 타미플루를 먹이면서 눈물이 났다. 이래도 내가 복직해야 하나? 생각이 잠깐 날 법도 했지만.. 그 당시엔 기관에도 안 보내고 집에서 내가 오롯이 보고 있는데도 애가 아프니.. 오히려 애도 잘 못 보는데 돈을 벌어오는 게(?) 더 합리적인 것 같았다. 내가 품은 야망을 합당하게 만들도록 모든 사고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던 내 휴직 기간은 복직을 마음먹은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쏜쌀같이 흘러갔다. 돌잔치도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워킹맘으로 되돌아갈 회사에서 순조롭게 승진할 꿈을 안고, 야망을 품고 2018년 4월 나는 복직을 했다. 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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