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워킹맘
사주 철학의 힘을 믿고 야심 차게 복직했다. 정말 우리 딸의 돌만 딱 치르고 2주 후에 바로 육아휴직에서 워킹맘으로 복직했다. 빠르면 2년, 정상적이면 3~4년 만에 승진을 하리라 야망을 품고 신입사원의 마음가짐으로 설레며 회사로 돌아갔다. 어색했지만 새로 산 옷에 오랜만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출근을 하니 후줄근하게만 있던 때랑 또 기분이 달랐다.
돌아간 회사는 많이 바뀌어있었다. 인테리어 공사로 레이아웃도 모두 변해있었다. 변한 게 인테리어만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다 바뀌어있었다. 사소하게는 전산 시스템부터 크게는 업무 분위기까지 모두.
내가 하던 업무 그대로 들어갔지만 회사의 승진 분위기가 바뀌면서 내 보직이 승진을 위한 장이 되어있었다. 휴직 들어가기 전의 나는 그 보직의 막내로, 막내가 감당해야 할 사소한 문젯거리들을 당연한 듯 떠안았었다. 그러나 돌아간 회사에서는 아직 승진 전인 후배들이 승진을 위한 발판으로 같은 보직을 열정적으로 수행 중이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앞길은 불 보듯 뻔했다. 뒤늦게 합류한 나는 제대로 된 거래처를 할당받기 힘들었고, 야망의 워킹맘 복직 스토리는 해피엔딩이지 못했다.
당돌한 후배들 앞에서
"라떼는 말이야~!!!"
하며 선배 대접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뒤늦게 끼어든 후발주자였을 뿐이었다. 누군가 휴직을 들어가고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인수인계받는 절차가 아니라, 승진의 장으로 실적 경쟁이 치열해진 그곳에 내가 굴러들어 온 돌이었기 때문에.
휴직 전에 같은 업무를 하던 선배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후배들 앞에서가 아니라 선배들 앞에서
"라떼는 말이죠.."
를 끊임없이 되뇌며 하소연하는 게 다인 초라한 워킹맘일 뿐이었다.
야망에 가득 차서 복직을 서둘렀던 워킹맘의 회사생활은 그야말로 혈당 수치 뚝뚝 떨어질 만큼 피곤했다. 회사 인테리어 바뀐 거? 업무 분위기 바뀐 거? 어찌 보면 그건 바뀐 축에도 못 든다. 그것들보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나였다. 내가 워킹맘이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회사일도 생각 같지 않았고, 집안일은 더 생각 같지 않았다.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고, 밤마다 안 자려고 버티는 아이랑 씨름하는 일도 내 체력 고갈의 큰 원인이었다. 아침? 당연히 챙겨 먹을 수 없었다. 출근하면서 이미 피곤한데 배고프니 그냥 커피는 안된다. 달달한 라떼가 필요했다. 오후가 되면 업무 스트레스로 달달 구리가 땡겼다. 역시 라떼가 필요하다. 시럽 가득 든 라떼.
처음으로 워킹맘으로 회사생활을 경험하면서 나는 라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업무 배분의 부당함에 대해 꼰대의 "라떼는 말이야..!"를 남발해야 했고,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줄 파트너로 내 손엔 항상 라떼가 들려있었다. 따뜻한 라떼가 필요할 땐 바닐라라떼, 시원한 라떼가 필요할 땐 아이스돌체라떼가 극강의 달달함을 선사했다.
곧.. 둘째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워킹맘 복직이다. 이제 더 달라질 건 없겠지. 나는 원래 워킹맘이었으니까..! 이제는 라떼보다 다이어트를 위해 아메리카노가 손에 들려있기를 바라면.. 또 야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