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스트걸 Nov 03. 2020

외국친구 만드는 대화의 기술

10년 차 해외생활자의 친구 만들기 노하우 

나이 들수록 사람을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 처음 만난 친구와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순수한 아이들과 달리, 그 곁에 선 어른들은 어떠한가. 쭈뼛쭈뼛 멋쩍은 눈인사가 고작, 이 비대면 시대에는 그마저도 힘들다.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A Walk in the Park>은 공원에서 처음 만난 두 아이가 함께 어울리는 동안, 아이 부모는 우두커니 각자의 허공만 응시하다 헤어지는 이야기다.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 늘 이 책이 떠오르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가, 그 사교의 과정이 아이들의 그것처럼 순수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상대방 옷차림은 어떤지' '나보다 나이가 적은 지/ 혹은 많은지' '내가 말을 걸어도 되는 분위기인지' '혹시라도 무시당하면 얼마나 무안할지' '먼저 아는 척을 안 하는데 내쪽에서 굳이 할 필요 있나?' 어쩐지 먼저 미소 짓고 말을 건네는 것이 관계 맺음의 저자세인 듯 해, 또 지는 것 같아 주저했던 경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혹여 말 한마디에도 내 패를 보일까 온통 계산할 것 투성인 어른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특히 혈혈단신 외국생활이라면, 친구 만들기는 더욱 절실해진다. 태생적으로 서로 간 적당한 거리 두기가 익숙한 영국인들 커뮤니티에 속에서 초기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다. "good bye"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돌아서 문을 닫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거나, 지나치게 슬프고 나쁜 이야기는 듣길 꺼려하는 습성, 크림 티를 마시며 긴 대화를 나눴다 한들 다음날이면 여전히 도돌이표처럼 흐르는 특유의 싸한 기류는 적극적으로 사람 사귀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영국을 떠나 현재 살고 있는 미국이라 한들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코로나 19 장기화로 서로 간 가까이 말 건네는 것을 암묵적으로 기피하는 분위기에 타인과 관계 맺기는 더욱 힘들다. 한 번씩 마음이 유약해진 날에는 지나치는 이웃 조차의 싸늘한 시선에도 의기소침해진다. 내 인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태도 앞에 나 자신이 바이러스인 것만 같아 며칠씩 입을 닫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귀어야 하는 이유, 아마도 생의 반짝이는 기억들을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내가 옥스포드 또는 미네소타의 어떤 시간 안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추억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들고 싶어서다. 어느 날 홀연히 지금 머문 그 낯선 도시에서 당신이 사라진다 해도, 문득 한 번씩 나를 기억해줄 그 누군가를.

  

"외국 친구 잘 사귀는 방법 같은 것 없을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경험들을 거쳐오며 결국 친구를 사귈 때 몇 가지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모두 다른 사고와 감정을 지닌 동물일진대, 어떻게 로봇처럼 정형화된 공식 안에서 사람을 사귈 수 있단 얘길까. 그렇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순간 경험으로 쌓인 노하우에는 일정한 패턴 같은 게 있었다. 이를테면 더 집중해서 나누면 좋을 주제와  피해야 하는 것들, 친밀함을 나누는데 도움이 되는 특정 토픽이나 대화의 기술 같은 것이랄까. 지금도 일본이나 싱가포르, 멀리 미국이나 유럽 어딘가에서 외국 친구를 만들고 싶으나 도무지 용기 나지 않아 주저하는 이들에게 나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모처럼 해가 뜬 8월의 옥스포드. 날이 좋아도, 비구름이나 한파가 몰아쳐도 날씨로 시작하는 인사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



첫째. 할 말이 마땅치 않다면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자

6년간 살았던 영국에서는 "Hi" "How are you?" 다음에 십중팔구는 날씨 이야기였다. "It is a lovely sunny day, istn't it?"이라거나 "it is so cold today." 식의 날씨 얘기에는 언제나 적극적인 화답이 오곤 했다. 영국 사람들 스스로도 날씨는 제3의 대상이라 쉽고 편하게, 마음껏 '대화 선상에 올려놓고' 떠들기 편하다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와 빌 브라이슨이 자신들의 영국 관련 에세이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이 특성은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꽤 쓸만한 대화 매뉴얼이다. 그 이유에 대해 BBC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 "영국인의 10명 중 9명이 날씨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누구나 쉽게 부담 없이 받아들이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쉽고, 편하게 주제를 바꿀 수 있는 데다, 심각하지 않다."

날씨 변화가 극심한 영국에서만 적용되는 대화의 기술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타당한 매뉴얼이라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말을 거는 경우, 한 번도 대답을 듣지 못한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 사는 미국 미네소타는 겨울이 춥고 길기로 유명한데, 매일 같이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외국 엄마들과도 날씨 얘기로 말을 걸면 무뚝뚝해 보이던 그들도 마음의 빗장을 걸고 대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자유롭게 응용이 가능하다. 


"It is nice weather to play outside."(만약 며칠 전까지 정말 추웠거나 비/ 눈이 왔을 경우) 

"You look very warm. I should take more layers like you."(날씨가 추운데 정말 따뜻하게 잘 차려입고 나온 부모를 본 경우)


이렇게 말을 쓱 던지면, 대부분 혼자 우두커니 아이를 보고 있던 외국 엄마들은 웃으며 화답하거나 내 쪽으로 몇 발자국 다가오며 수긍/ 동의의 제스처를 보이고는 했다. 놀이터/ 집 근처에서 그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small talk가 이어지면 다음부턴 자연스레 대화를 잇기가 수월하다.  



둘째. 번호를 교환하고 나면 반드시 그날 저녁 안부 문자 보내기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전화번호를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가령 상대방 엄마의 동의를 구하고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아이들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되면, 그 자리에서 사진을 보내 내고 싶은데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묻곤 했다. 사진 촬영에 동의한 엄마들이라 보통 휴대폰 번호도 흔쾌히 알려준다. 서로가 번호를 저장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면 "이때다" 싶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설미디어 이용 여부를 물어 친구까지 맺는다. 돌아와서 아이를 재우고 나면 너무 늦지 않은 밤 반드시 그날 안에 사진과 문자를 보내곤 했다. 새롭게 맺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짧은 굿 나이트 문자 정도가 참 효과적인데,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It was so nice to talk to you. I would like to share the lovely photos with you. Hope to see you soon. Good night."



셋째. 대화를 나눈 이들의 이름은 바로 메모해둔다

외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 어느 정도 간단한 대화가 진전되고 나서는 통성명을 나눈다. 사람에 따라, 그 순간의 분위기에 따라 타이밍에 차이는 있지만 대게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런데 이 순간이면 늘 긴장이 되는 거다. '제인Jane'이나 '토마스Thomas' 같은 이름은 명확하게 들리고 암기도 쉬운데, 외국인들의 이름은 여전히 한두 번 들어선 입에 붙질 않는다. 그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며칠 뒤 다시 마주치더라도 "Hello" "How are you"만 내뱉다 그저 아는 지인 선에서 관계가 고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입장을 바꿔서, 한국 이름은 그들에게 더 부르기가 어렵다. 한 번에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외국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 상처 받을 필요도 서운할 것도 없겠다.

그 사람의 이름을 다음에 부르며 인사하기 위해 나는 머릿속에 듣는 즉시 잠시 기억했다 뒤돌아 휴대폰 메모장에 대충이라도 기록해놓곤 했다. 그 사람 이름이 "Mason" 혹은 "Nathan", "clare" 혹은 "clair" 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듣고 최대한 유사한 발음만큼 한국어로 적는 습관을 들였다.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 뒤에는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 가운데 특이사항,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혹은 다가올 주말의 계획 등 상대방이 들려준 이야기들 가운데 몇 가지 다음 만남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들을 키워드로 적어 두었다. 이름 철자가 달라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못하더라도, 다음번 만남에서 이런 식으로 인사하곤 하는 거다.


"Wow, good to see you again! Are you... Nathan, is that right?"

"How was the birthday party? It must be so exciting." (주말 아이 친구 생일파티가 있다고 한 경우라면)

어색하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질 만남이 어느 순간 길거리에서 서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인사를 나누는 스몰 토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했음에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미안하지만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물어보는 상대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 친구는 내 어려운 한국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려 애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므로.


 평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이웃이나 고마운 친구에게 손수만든 크리스마스 리스나 손뜨게 모자를 선물하곤 했다. 손으로 만든 것들에 외국친구들은 특히나 감동하곤 했다.


넷째. 핼러윈과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관계도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일 필요도 없거니와, 지나친 호의는 되려 부담스러운 법이다. 뭔가 내 마음의 표시를 하고 싶을 때, 네가 내 해외생활에서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는 선에서 전달하고 싶을 때 '홀리데이' 만한 게 없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나는 종종 카드나 작은 초콜릿을 건네며 '너는 내가 좋아하는 친야'라는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아이 생일도 좋은 기회다. 상대방 아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간단하게 건네는 축하 카드는 받는 쪽도 부담 없고 건네는 나도 즐거웠다. 그러다 보면 그쪽에서도 어느 순간 자신의 특별한 날 나를 초대해주고, 그렇게 또 다른 그룹을 만나게 되면 그곳에서 다른 인간관계가 확장되고는 했다. 처음에는 친해지고자 하는 쪽에서 관계의 균형을 잃지 는 선에서 좀 더 호의를 표해야 상대방도 나의 사람이 되더라. 많은 나의 외국 친구들이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다음 글에 연이어 <외국친구 사귀는 노하우 - 2편>을 소개하려고 해요. 뻔하지 않는 사교의 기술에 대해 좀 더 실질적인 팁들을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궁금한 부분이나 질문이 있다면 편하게 남겨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오렌지 미네소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