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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트걸 Jun 16. 2020

손수 지어 올린 미국집 방문기

목공예 전문 부부의 핸드메이드 하우스

문을 열면 바로 땅과 잔디를 밟을 수 있는, 계절의 내밀한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집. 내가 생각하는 주택의 정의란 그렇다. 싱글하우스(single house)라 부르는 이 집에 미국 전체 인구의 70%가 거주한다.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당연히 고려했던 집의 형태였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산다. 방의 개수도 더 많고, 거실과 응접실도 분리되고, 무엇보다 드넓은 마당 딸린 주택의 로망을 고려했으나, 1년의 절반은 겨울, 그것도 한번 내리면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영화 <파고>의 도시 미네소타에서 매일 같이 홀로 눈을 치우고 자동차 위를 쓸어야 한다는 데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나 시애틀 같은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 반해, 시카고 등 동부 지역에 상대적으로 아파트 비율이 높은 것은 날씨의 영향도 한몫하는 것 같다. 


외국 살면서 가장 신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집 구경. 문화가 다르니 집의 구조도 다르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수집된 물품들, 주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긴 가구와 가족의 역사를 기록한 오랜 사진들을 둘러보는 일은 근사한 매장을 둘러보는 것만큼 설렌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외국에서 여러 지인의 집을 방문하며 나는 많은 것을 교감하고 배우며 관계의 깊이를 경험했다. 집을 다녀오면 훌쩍 가까워진 마음을 느꼈고, 훨씬 편해지곤 했다.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고 하는 게 맞을까. 그래서 누군가의 집에 초대 받는다는 건 늘 고마운 일이다. "우리 집을 보여줄 만큼 편안한 사람이야, 넌 특별해"라는 의미 같아서.


"언니, 내일 우리 집에 놀러 올래?"
현관문을 열면 푸른 마당이 펼쳐지는 싱글하우스의 매력!


코로나로 10주 가까이 얼굴을 볼 수 없던 친한 지인의 집에 방문하던 날. 집집마다 현관까지 깔린 푸른 잔디가 무슨 영화제 레드카펫처럼 특별했다. 익숙한 이들에게 닿는 이 몇 발자국조차 비일상적인 일이 될 만큼 코로나가 바꿔놓은 미국의 일상은 슬픈 일 투성이다. 



지인의 집에는 그 어느 집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다. 보컬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다른 일을 하는 아내와 목공예에 능숙한 남편. 부부는 몇 년 전 이 집을 구입해 직접 구석구석을 리모델링했는데, 바닥 마감부터 2층 다락방까지 모든 시공을 본인들이 담당했다. 집을 짓는다는 건 건축을 전공하거나 전문 목수 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도면을 짜고 마감재를 선택하고 나무를 재단해 뚝딱뚝딱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던 첫날이 떠오른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인 것인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매력인 싱글하우스. 나를 유달리 좋아하던(?) 냐용이 만두.

"우리 2층 다락방 드디어 완성됐어. 올라가서 볼래?"


지난번엔 큼지막한 목재 절단기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한창 공사 중이던 2층이 코로나 셧다운 기간 중 정리가 됐단다. 층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각기 다른 무드를 연출할 수 있는 주택은 이래서 좋다. 10주간 셧다운을 주 단위에서 강압적으로 시켜도 마당 있고, 2층으로 분리된 이런 싱글하우스에 머문다면 또 슬기롭게 지내볼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직접 만든 나무 벤치와 지붕을 절개해 이 역시 직접 창을 내었다는 부부의 솜씨에 감탄사 무한 연발.

영국에서 살던 집의 3층에도 이렇게 지붕에 작은 창이 나 있었는데, 종종 한낮에 그 아래 누워 창문을 올려다보면 새가 날아와 앉고, 흰 구름이 바람에 쓸려가는 풍경도 보이고 그러다 책 몇 장 읽고 스르르 낮잠 들던 때가 잠시 떠올랐다. 후드득 비가 떨어지면 또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자연을 향해 난 근사한 액자 같은 저곳에서 빛이 쏟아지는데 그 또한 너무 따뜻해서 한참을 바라봤다.


남편이 어릴 적 앉았다던 흔들의자는 이제 3살짜리 아들이 이어받아 사용 중이다. 대물림해서 쓰는 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손수 지어 올린 집 투어를 마치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영국에서 생활하다 미국으로 건너오며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주거 풍경이 바로 마당이었다. 가드닝이 식사처럼 생활화된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는 집 뒤뜰에 작은 마당을 꾸미고, 그 마당들을 길가는 행인 모두가 볼 수 있었는데, 미국은 마당이 난 뒤뜰로 보행도로가 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음식 잔여물을 마당 컴포스트에 담아 퇴비로 만들어 이듬해 꽃과 채소를 키우는 데 사용한다는 이 집에는 온갖 종류의 여름 식물들이 가득하다. 첫 책을 집필하면서 런던 제프리뮤지엄 가드너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녀가 한 답변이 떠올랐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 6월의 초여름이 가장 좋아요. 초록색에만 백여 가지가 넘어요. 어떤 초록잎은 은빛이 돌고, 어떤 초록은 검은빛을 띠죠." 


마당에서 토토로의 우산을 닮은 호스타와 분홍빛 작약, 타임과 로즈마리, 세이지, 루밥까지 한 가득 따서 차에 싣고 돌아오는 길 얼마나 마음이 배부르던지. 마치 시골 시어머니 댁에 들러 한 짐 가득 고추와 가지를 챙겨 오던 그 옛날 우리 엄마 마음이 그랬을까. 마당에서 저마다의 꽃을 구경하며 얘기하고, 허브 요리법을 공유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중간중간 영국에서 만났던 친구들, 함께 거닐었던 그들의 집과 마당이 떠올랐고 기꺼이 내게 가위를 건네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던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해외 생활에서 상처를 주는 이도,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이도 결국 사람 또 사람이라는 걸. 땅에서 수확한 한 다발의 자연이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열어주는 날이었다.


로즈마리 & 타임을 뿌려 돼지고기 요리. 아스파라거스 식감과 잘 어울린다
마당에서 가져온 호스타 & 작약으로 후다닥 이케바나 어레인지


집에 오자마자 저녁 식사로 냉장고의 돼지고기를 꺼내 팬에 올렸다. 로즈마리와 타임을 얹어 구우면 향긋하고 고급진 허브 향이 돼지고기에 새로운 풍미를 더한다. 누린내 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랜만에 이케바나 화병을 꺼내 호스타 & 작약으로 플라워 어레인지도 했다. 꽃 몇 송이의 에너지가 엄청나다. 꽃을 만지고 요리하는 내내 자연에서 막 수확한 것들이 내뿜는 싱그러움에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린다. 우리는 오늘 또 이만큼이나 가까워졌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집을 매게로 한 이야기가 그리운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https://youtu.be/4XzQ9oAh3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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