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구수한 기름 냄새가 집 안 가득
냉장고를 열었다. '무얼 먹어야 할까' 위칸부터 아래까지 쓱 훑는 사이 야채칸에 시선이 멈췄다. 반쯤 남아 랩으로 말아둔 양파, 표면이 말라 가는 당근, 그리고 한국 고구마의 그 달달한 식감을 느낄 수 없어 오랜 시간 방치된 'yello sweet potato' 한 덩이가 눈에 띈다. 딱히 한 끼 뭘 해 먹기 애매한 호박 반줄 기도 남아있다.
양파, 고구마, 호박, 당근.. 오늘 저녁은 야채튀김 덮밥으로 정했다.
튀김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튀김용 기름통을 유리병에 잘 보관하면 꽤 손쉽게 조리 가능하다. 예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출연 셰프들끼리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갓 튀긴 바삭한 튀김은 그 어떤 대단한 요리보다 만족스럽다. 튀김가루와 부침가루를 반반 넣고, 물을 섞어 튀김옷을 만든다. 얼음이 있다면 두 조각 정도 투하. 튀김옷이 야채와 더 잘 붙고 바삭함이 살아난다.
착착착, 찹찹찹chop chop chop
영어로 chop은 썬다는 의미의 조리 용어로, 도마 위에 뭔가를 넣고 잘게 다질 때 사용하는데, 그 소리가 어쩐지 착착착, 찹찹찹chop chop chop 비슷하다. 도마와 칼날이 만나 내는 마찰음에, 남은 잔반 채소들이 맛있는 식재료가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채소를 무채 길이와 두께로 다지고 부침가루에 투하해 슬슬 뒤적거리니 여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떡볶이집의 단골 메뉴였던 야채튀김은 늘 오징어 튀김과 김말이 튀김에 밀려 뒷전이었다. 튀김 세트의 오징어 메뉴는 가장 비쌌고,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튀김은 늘 야채튀김이었다. 시장통에서 지글지글 튀김이 익어가던 소리와 냄새에 이끌려 판자를 이어 붙인 의자에 앉아 한 입 배어물 때면 야채튀김은 쫄깃하면서 바삭했다. 달달한 양파와 오드득한 식감의 당근, 간장에 찍어 한 입, 매콤한 떡볶이 소스에 묻혀 한 입 먹던 그 맛을 상상한다. 엄마는 밖에서 사먹는 튀김은 기름이 좋지 않다며 매번 혼을 냈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튀김을 해주시진 않았다. 온 집안에 냄새가 배고 번거롭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채소 몇 가지로 야채튀김을 만들어 두면 여러 가지 음식들과 두루 응용이 가능하다. 말간 국물의 우동 위에 얹으면 고소하고 기름진 야채튀김우동이 되고, 매콤한 김치국수의 아린 맛을 중화하는 사이드 메뉴도 된다. 버섯, 아스파라거스, 단호박, 감자, 고구마 냉장고에 남아있는 어떤 채소든 썰어서 튀겨내면 근사한 맥주 안주가 된다. 채소라 고기를 튀기듯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아삭이는 식감을 남기기 위해 살짝 데치는 느낌으로 튀겨주어도 좋겠다.
20분 만에 튀김 덮밥 한 그릇이 뚝딱 완성됐다. 간장과 식초, 아가베 시럽을 섞어 맨밥에 휘뚜루마뚜루 둘러 밑간을 하고 그 위에 원하는 만큼 튀김을 얹는다. 깻잎 튀김 두 장은 일찌감치 아이 차지! "어서 무럭무럭 자라 깻잎들을 더 먹고 싶다"는데, 엄마는 하루빨리 아삭이 고추를 만나고 싶다. 고추 속을 비우고 두부와 고기를 넣어 튀기면 그 또한 참 맛있는 고추튀김일 텐데,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