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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트걸 Jun 05. 2020

아이와 베란다 프로젝트

미국 아파트에서 깻잎, 쑥갓, 오이 고추 심기

코로나 19를 겪으며 나름 흥미로운 점도 있다. 대형마트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몰의 인기 판매 제품을 볼 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물품은 무엇인지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내 삶 또한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지... 사람 사는 풍경은 전 세계 어디든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에 때론 위로받고 안도하기도 한다.


지금 2020년의 봄, 셧다운 시대의 인기 카테고리 중 하나는 '플렌트 plant'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반에는 물론 화장지와 세정제, 마스크, 요가매트와 덤벨 같은 홈트 용품에 수요가 집중됐다면, 이제 어느 정도 공포를 극복하고 일상에 복귀한 사람들은 집에 푸른 식물을 들이고 격리된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는 가드닝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4월 초 파종 뒤 무럭무럭 자라는 봉선화 아이들(맨 오른쪽)


미국에서도 서울에서와 같이 아파트 생활을 선택한 우리 가족에게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창가 선반과 발코니 공간이 전부다. 마당 또는 뜰에 대한 로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 년의 절반은 눈이 내리는 미네소타에서 매일 같이 눈을 치운다는 것은 아직까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세계적인 '반려식물' 열풍에 힘입어 플랜팅은 몇 년 사이 도시인에게 익숙한 취미로 자리 잡았지만, 코로나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Target과 같은 미국 대형 마트에서는 대형 화분을 주문해 기다리는 데만 몇 주가 소요되고, 우리 동네 화훼농장에서는 "유례없는 호황기"라며 점원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미네소타 인기 화훼농장 Mother Earth Gardens. 마스크 쓰고 찾아온 이들로 북적북적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자가격리 시대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먼길을 달려 화훼농장을 찾기도 한다. 씨앗부터 컴포스트, 믹스드폿 같은 화분 전용 흙, 바질, 세이지, 로즈마리 등 온갖 허브종과 각양각색의 꽃이 집에 갇히고 타인과 교류하지 못해 병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시즌이라 그런지, 토마토와 블루베리 모종, 허브 종류가 다양하고 인기도 많다. 삼십 분 정도 푸른 잎을 보며 모처럼 힐링 끝에 몇 가지 묘목을 사들고 돌아왔다.


"엄마, 이제 우리 뭐 해?"

"걱정 마! 베란다에 채소 심어야지."


indoor/ outdoor 에 따라 흙의 종류도 다른데, 점원들이 추천하는 mixed pot 용으로 구입


파종 전용 패키지를 아마존에서 주문해 3주 만에 받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분무기 쓱쓱 뿌려주며 정성스레 기도 중.


영국에서 깻잎 키우며 

여름 한 철 닭갈비에도 넣어먹고, 삼겹살도 싸 먹고, 참치김밥에도 말아먹었던 경험에 비추어 우리 집 베란다 특급 일급 프리미엄 채소는, 깻잎. 깻잎이 일단 한번 싹이 나면 정말 무섭게 잘 자라는 효자 채소인데, 봄에도 영하로 한 번씩 떨어지는 미네소타에서 과연 잘 자라날지 미지수다. 사실 식물이라는 것이 씨앗만 뿌려놓고 물만 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수시로 돌보고 빛에 따라 이동하고 옮겨줘 가며 지극정성을 들여야 푸른 싹이 나더라.




과학과 실험, 자연에 슬슬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맨날 책으로 설명하곤 했었다. <내 친구 공룡과학>이나 <달팽이 과학동화> 같은 책을 읽어주며, "벌이 꽃에 앉아 꿀을 먹으며 꽃씨를 퍼트리는 거야" "꽃이 핀 뒤 열매가 맺는 거지" 로봇처럼 문장만 전달해주고는 했다. 나조차 자연을 잘 모르는데 워딩만 전달하는 것이 아이에게 자연의 신비와 생태를 얼마큼이나 이해시킬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일구자 우리는 종종 베란다에 나가 앉아 책을 읽게 됐고, 종종 장난감을 갖고 역할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밖과 확장되는 두 폭짜리 작은 공간에서 허락되는 야외 생활은 익숙한 책도, 장난감도 조금 특별한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베란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 번씩 벌이 날아와 노란 토마토 꽃 주위를, 고추 줄기의 흰꽃 주변을 맴돌다 사라지곤 한다. 아이는 반가운 듯 말한다. "엄마 저렇게 벌이 꿀을 먹고 다른 꽃에 가면 이제 거기서 또 새로운 꽃이 피는 거지?" 종종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2층 베란다까지 올라와 잠시 앉았다 가기도 하고, 이제 꽃이 피었으니 우리는 곧 체리 토마토와 고추를 만날 수 있을 테다. 


"발코니나 가든이 없는 작은 집을 짓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예요."


영국의 유명 건축가 알리슨 브룩스Alison Brooks는 최근 디자인 매거진 <Dezeen>과의 인터뷰에서 전한 이야기다. 도심의 주택난이 발코니가 없는 작고 콤팩트한 소형 아파트를 짓는데 집중했지만, 그런 집들은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집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작은 공간, 작은 채소와 꽃이라도 심을 수 있는, 그런 시도조차 가능한 공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중요한 것은 공간과 크기가 아닌, 마음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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