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될 무렵,
애완동물을 미치도록 키우고 싶었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그 귀여운 생물체들은
나를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는 못했다.
누가 밥을 주고,
씻기고, 산책시키며,
보살펴 줄 것인가.
항상 책임을 들먹이며
안 된다고만 하셨다.
나는 그 말이
그저 변명처럼만 들렸다.
그냥 돈이 많이 들어서,
그냥 동물이 싫어서,
그래서 싫었나 보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던
병아리 한 마리를 데려왔다.
열심히 밥도 주고
배설물도 치워주었으나,
작은 병아리는 오래 살지 못했다.
함께 살았던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다만
나는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 속에는 책임감이,
내가 죽였다는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다면
내 손에는 죽음이
들려있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나는 책임을 싫어한다.
누군가를 이끌지는 못하고
그저 도움만 주는 삶.
나는 책임을 양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