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안 쓰면 죽는 줄 알았다.
적어도 좆 되는 줄 알았는데.
글을 안 쓴지 4개월이 조금 넘었다. 짤막한 조각 글도, 일기도 쓰지 않았다. 책도 읽지 않는다. 예전엔 일주일에 한 번 한편의 글을 쓰고 꼬박 책을 읽어냈는데. 이제는 글과 관련된 어떤 활동도 하지 않는다.
예전엔 그랬다. 글을 안 쓰면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죽을 줄 알았다. 내 삶이 형편없어지고 쓸모없어지는 줄. 그래서 필사적으로 읽고 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감정이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해도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고 출간에 성공했고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보상받고 인정받았으니까.
어렸을 때 그렇게 믿었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보다 조금은 더 잘하는 분야가 있다고. 사람마다 반드시 있다고. 누군가는 손을 쓰는 일을 잘하고 누군가는 말을 잘하고 어떤 이는 책상 앞에서 집중하는 일을 잘한다고. 그게 소위 말하는 ‘재능’ 또는 ‘적성’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그건 글쓰기였다. 하늘이 내게 준 단 하나의 달란트가 있다면 그건 글쓰기라고.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는 것 같다. 누구나 다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가 있지. 그런데 그것을 꼭 살려서 살아가야 ‘잘 사는 삶’인 줄 알았다. 재능을 살려서 직업을 얻고, 그 재능을 발전시키고, 그래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대체할 수 없는, 적어도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게 곧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삶이고 남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삶’이라고.
그리고 난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이 되기 위해 주어진 시간과 정성을 소진한다. 남들의 인정 따위는 필요 없다. 대체 불가능한 인력 따위에도 관심 없다. 글도, 책도 더 이상 내겐 중요치 않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조금씩, 매일 공부할 뿐이다.
그래서 내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느냐고.
실패자가 된 것 같으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글을 빼면 내 삶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글을 제외한 모든 것이 여전히 내게 남아있었다. 여전히 나는 무언가를 하며 하루를 채우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조금 지친 상태로 잠이 들고 다시 다음날을 맞이한다. 그래도 내 삶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발전하고 있고, 나는 성숙해져가고 있다. 여전히 내 삶은 유의미하다. 그리고 난 지금의 내 생활이 퍽 마음에 든다. 글을 쓰지 않는 내모습도 마음에 든다. 과거보다 좋은 삶 같다 적어도 내게는.
결국 좋은 삶이라는 건 세상에 없나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흘러흘러 진짜 그곳에 닿아보기 전까지는 좋은 삶인지 나쁜 삶인지 성공한 삶인지 실패한 삶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에게 있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명백하게 실패한 삶이었다. 내 재능을 아는데, 내 적성을 아는데, 어떻게 살고 싶은지 너무나도 명확한데 그것을 저버린다는 것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른의 나는, 현재 진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나는, 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안온하고 좋다. 유의미한 시간들로 하루하루들이 빼곡이 채워진다.
서른이 되어 배운 게 있다면 삶은 ‘이거 아니면 끝’이 아니고 ‘이거 아니면 저거하면 된다’는 것이다. ‘저거’해도 내 인생은 망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글을 그만쓰기 전까지는 결코 알지 못했다. 정말로 그만두고 손을 뗐을 때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글의 끝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일 것이다.
망하지 않는다고 죽지 않는다고 좆 되지 않는다고 지금 하고 있는 걸 영영 못하게 되더라도. 그러니 언제든 우회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조금은 설렁설렁 편안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너무 간절하게 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당신의 삶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