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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07. 2020

상사님들, 제발 이런 건 좀
제발 해/하지 말아주세요

억울한 사회초년생들 여기여기 모여라



아무리 상사는 사원 마음 모르고, 사원은 상사 마음 모른다지만.

종종 상사님들이 정말 눈치 봐야 될 건 1도 안 보고,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일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 답답한 마음과, 조금 억울한 심정과, 아래와 같은 일을 몸소 실행 중인 상사들의 행보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적어 내렸다.

이른바 상사님들 Do / Don't 리스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개씩만.     



Don't, Never Don't


1. 혼내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비난은 말아주세요.   

  

주변에서 잘못을 꼬집는 상사의 태도에 퍽 빈정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00씨, 이거 저번에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어휴, 됐어, 그냥 내가 할게.”와 같이 혼잣말인 듯 혼잣말 아닌 한탄을 뱉는다거나, “그걸 지금 내가 몰라서 00씨한테 연락하라고 시킨 거겠어? 일이 진행되도록 해오라는 거잖아” 식의 띠거운 기색 온몸으로 표현하기 등등.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건 전체적인 상황이나 발화의 내용이 아니라, 상사의 찌푸린 미간, 억눌린 공기, 날 선 목소리뿐이다. 고로 풀 죽은 사원의 사고회로는 2가지 갈래의 구렁텅이로 처박히기 마련인데,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1. ‘나쁜 새끼, 말을 꼭 저딴 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겠어?’
2. ‘나 도대체 뭐하는 애지...? 이 나이 먹도록 잘하는 게 하나도 없나 봐...’

   

상사에 대한 악감정 또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그 외에 달리 뭐가 있겠니.      


** 상사님들 주목!

사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어떤 부분이 잘못됐고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고로 그 상황에선 이렇게 처신하는 게 마땅하노라, 짚어주는 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감정’이 앞선다면, 그 발화는 그저 질책으로 끝날뿐이다. 그러니 사원의 행동을 개선하고 일의 효율을 높이고 싶다면, 부디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팩트’ 위주로. 최대한 감정을 뺀 채로 건조하게. 상사의 권위와 책임의식이 느껴지도록 전달해주시라, 이 말씀이다. 사원의 자존감 도둑이 되기 싫다면.      



2. 남들 앞에서 꼭 꼽을 주셔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아.     


“언니, 나 그때 정말 죽고 싶었어.”     


친한 동생이 전 직장생활에 대해 위와 같은 총평을 내렸다. 평소 속 깊고 힘든 내색 안 하는 동생이 저런 말을 입에 올리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겠다만. 매번 사람들 다 있는 공간에서 큰 소리로 호통을 치던 지랄 맞은 상사가 단단히 한몫했을 테야. 오죽했으면 옆에 있던 팀장님이 “주무관님, 너무 그렇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 번은 사무실이 쩌렁쩌렁하게 “야!!!!!”라고 한 적도 있었다는데. 동생은 그 후로 사회생활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무섭다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날은 팀장님이 내가 쓴 보도자료를 읽던 중 “뭐야?! 이 표현 누가 쓴 거야? 요즘 누가 이렇게 촌스러운 표현을 써어~~~~”라고 큰소리로 말한 적이 있다.

옆에 다른 팀들이 다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순간 스프링마냥 자리에서 튀어 올라 안절부절 못 하며 바보같이 서 있다 이내 다시 바보같이 자리에 앉았는데. 그땐 정말 창피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나더라. 사실 울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그 날 아침부터 작은 일들이 마음에 꼭꼭 쌓여 있던 터라, 나는 결국 비상계단에 쭈그려 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

      

** 상사님들 주목!

지적할 일이 있을 때마다 사원을 따로 불러 조곤조곤 말하는 상사가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상사님들, 그거 하나만 알고 계시라.

당신이 짜증인지 호통인지 모를 발언을 목청껏 싸지른다면, 그 순간 사원은 온몸에 내리 꽂히는 수치심과 모욕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나의 보잘것없고 초라하고 바보 같은 모습이 모두에게 까발려지는 상황이 못내 창피해서 발가락 끝까지 한껏 구부리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영영 신경조차 쓰지 않을 그 찰나로 인해 누군가는 새벽녘 내내 몸을 뒤척이다 짓무른 눈가를 매만지며 아침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Do, Please Do  


3.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신입 나부랭이들은 불안하다구요.     


만약 상사가 ‘이거 좀 이렇게 수정해주세요’, ‘이런 방향으로 다시 조사해주세요.’ 사원에게 수정요청을 하기가 어쩐지 미안하거나 번거롭다 생각해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면, 사원은 과연 ‘어맛, 부하직원에게 일을 다시 하라네, 어쩌네 하지도 않으시고..! 어쩜 배려심도 넘치시지!’라고 생각할까?

내 대답은 글쎄, 대부분의 경우엔 “NO”일 거 같은데.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상사가 이렇다 할 반응을 주지 않으면 신입 나부랭이들은 자신이 무얼 잘못했나, 눈치를 보며 불안해한다. 회사 짬밥이 어느 정도 쌓인 사원이라면 모를까. 신입들은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작은 일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 마련인데, 어째 상사의 반응이 영~ 애매하다면 사원은 이런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혹시 내가 X 같은 보노보노를 드린 게 아닐까?’       


열심히 하고서도 찜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어 괜히 채팅창을 힐끔힐끔,  불편한 촉을 쫑긋쫑긋거리고 있다고.


여기서 나아가 사원의 결과물(특히 개인의 취향과 소신, 지적 에너지와 애정 어린 손길이 더해진 글이나 디자인 작업물 같은)을 아무런 말도 없이 절반 이상 고쳤다면 사원은 한층 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다.

이 경우 상황을 2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상사가 말도 없이 결과물을 갈아엎었다. 근데 내가 봐도 고친 게 훨씬 좋다.     


이럴 땐 상사에 대한 미안함 가장 크다. 상사의 일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가중시켰다는 생각이 사원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 더군다나 그 이유가 ‘내가 1인 분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니!


처음엔 ‘아니... 고칠 부분을 말해주면 내가 수정할 텐데...(쭈굴)’ 정도의 마인드로 넘길 수 있겠으나, 상황이 반복되면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을 품게 되고, 자책과 심리적 위축 같은 달갑지 않은 것들이 줄줄이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상사가 말도 없이 결과물을 갈아엎었다. 그런데 수정된 결과물을 납득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후져’ 보인다.   

  

와, 이게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거다. 일단 속이 너무너무 상한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건데 내게 어떤 피드백도, 수정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똥으로 쓱 바꿔놓다니! 처음엔 속이 쓰리고 화가 나다가 이내 엄청난 회의감에 젖는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 어차피 상사 마음대로 싹 바꿀 거라면 처음부터 본인이 쓰지. 일의 경중과 난이도를 떠나서 일단 의욕이 자체가 뚝뚝 떨어지고, 그와 비례해 일의 효율도 아래로, 저어 아래로 흘러내린다. 주욱주욱.      


**상사님들, 주목!

굳이 덧붙일 피드백이 없거나 디테일을 살짝 다듬는 정도의 수정만 필요한 경우에도, ‘확인했어~ 고마워.’ 점이라도 찍어주자. 그것만으로도 신입은 머릿속에서 구덩이를 파는 행위를 멈출 수 있을 테니.

당장 확인할 수 없을 땐 ‘나중에 확인해 볼게~’ 한마디 콕.     


더불어 적절한 피드백을 준다는 건 사원에게 ‘수정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임을 잊지 말자.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고 작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시에, 사원의 고민과 노고가 담긴 작업물을 최대한 결과에 반영하고자 하는 상사의 세심한 배려라는 걸.



4. 데드라인,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이드라인!


“언제까지 해야 된다고 딱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퇴근길을 함께 하던 회사 동료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상사가 일을 줄 때 명확하게 데드라인을 설정해 주었으면 한다고. 다른 일부터 처리하다가 상사가 갑자기 “그 일은 다 됐어요?”라고 물으면 망하는 거 아니냐고. 또는 당장 해야 하는 줄 알고 밤을 새 가며 작업했건만, 다음날 상사가 제대로 확인도 안 할 때 얼마나 허탈하고 시간 아까우며 피곤한지 아냐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언제까지 해달라고, 아님 이것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해달라고 처음부터 말해주면 혼란스러울 일 없이 얼마나 좋아.

그 한 문장 말하는데 몇 초나 걸린다고.     


가끔 유튜브에서 ‘일 못하는 사람들 특: 우선순위를 파악 못한다.’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의아해진다. 도대체 신입한테 왜 우선순위 파악을 기대한담. 업무의 우선순위를 안다는 건 회사 업무의 전체적인 상황이나 맥락을 어느 정도 짚고 있다는 말인데. 어떤 걸 먼저 쳐내야 다른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다른 팀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대략 머릿속에서 계산이 된다는 거잖아. 그런데 회사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이 ‘사실상’ 처음인 신입이 어떻게 일의 경중과 앞뒤 순서를 알겠느냔 말이야.     


그리고 데드라인보다 더 중요한 ‘가이드라인’

상사가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는다면(혹은 못한다면) 결국 고생도 2배, 일도 2번 해야 하는 대환장 파티가 초래된다.

예를 들어볼까.     


같은 부서 막내가 회사 선재물에 들어갈 원고를 작성했는데, 막판에  다 갈아엎은 적이 있다. 이유는 상사가 원하는 느낌의 문체가 아니었기 때문. 결국 그날 팀장님을 비롯해 부서 전원이 원고를 뜯어고치며 야근 기안을 올렸더랬다. 당시 자기 탓이라고 몹시 미안해하던 막내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사실은 당신 탓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똑바로 잡아주지 않은 상사의 과실이 크노라’라고.


회사생활을 가만 하다 보면, 본인이 업무 가이드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선 마냥 부하직원을 답답해하거나 탓하는 상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명확한 언어로 정리해서 사원에게 전달하지 않는, 또는 전달하지 못하는 건 명백한 본인 능력 부족의 문제이며, 상사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애초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해놓고 사원에게 일머리가 없다니, 센스가 없다니, 애매하고 무책임한 말만 늘어놓는 비겁한 상사들을 볼 때마다 자연스레 이마 한쪽에 손을 올려놓게 된다. 일명 ‘이마짚’ 상태.     


**상사님들 주목!

사원이 당신의 말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거나 의도와는 다르게 일처리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본인이 업무지시를 명쾌하게, 정확한 언어로 전달했는지부터 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지시를 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왜’ 해야 하는지 딱 잡아주시길. 서로 오해해서 피차 고생하는 일 없도록. 척하면 딱,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길 원한다면 당신은 돈을 더 주고 숙련된 경력을 뽑았어야 하는 게 맞다. 신입에게 눈치껏, 센스껏, 시키지 않아도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원하는 건 놀부 심보에 지나지 않음으로.  



모르겠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상사가 되었을 땐 지금의 마음을 홀라당 까먹고  입장을 뒤집을지도 모르지. 나는 상사로서 할 만큼 했는데, 도대체 이런 것 까지 일일이 알려줘야겠냐면서.

그렇지만 어느 단계에 있든 그 시기, 그 상황에서의 시각과 입장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그 시기, 그 상항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니까. 그러니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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