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닐라라테 같은 인생은 평생 오지 않아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by 김예란
영화 <꿈의 제인> 스틸
이건 내 생각인데, 난 인생이 엄청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그 불행이 안 끊기고 주 - 욱 이어지는 기분?
그런데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왜 변변찮은 형편에도 오갈 곳 없는 미성년자 아이들과 함께 모여 사느냐, 그것도 무보수 무대가로. 라는 질문에 영화 <꿈의 제인>의 주인공, 트랜스젠더 마담 제인은 평소와 같이 재기발랄하고 고고한 목소리로 위와 같이 운을 뗐다.


어쩜. 이다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 잠시 영상을 멈췄다.



이번 직장을 다니며 우울증이 왔다. 단순히 일과 사람에 치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붙잡아야하는 나날이 이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껏 계약직을 전전했던 나는 이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일을 하든 하지 않든 지옥이구나. 우리는 평생 그저 또 다른 결의 지옥문을 열며 사는 것뿐이구나. 더불어 인생은 다 먹고 사는 것의 문제라는 생각도. 여태 초중고, 대학교를 거치면서 우리가 학습했던 것들은 다 ‘먹고 사는 일’과 맞닿아 있었으며, 태어난 이상 누구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나 또한 죽을 때까지 이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야겠지.


자신이 없었다. 출생과 함께 부과되는 이 짐이 나한테는 끔찍이도 무겁게 느껴졌다. 톤만 다른, 그러나 결국 같은 계열의 색채 안에서 맴도는 이 불안과 불안정함이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이어질 거라 생각하니 남이 있는 생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문득 폴란드에서 처음 유치원에 간 날,(나는 3살부터 8살까지 폴란드에서 살았다.) 엄마가 나를 이 파란 눈의 아이들 속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는 않을까. 오들오들 떨며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떠올랐다.



바닐라라테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대학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발표수업의 마지막 날, 자신이 바라는 인생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리 말했다.


“여러분, 사실 바닐라라테를 ‘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커피와 우유, 바닐라시럽이 적당한 비율로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맛있는 바닐라라테가 완성되는데요, 재료 하나라도 과하거나 모자라면 밍숭맹숭 우유 맛만 나거나, 커피의 쓴 맛만 남거나. 또는 한 잔을 다 먹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아 지거나, 아니면 그냥 단맛 없는 라테가 되기 십상이에요.


그래서 저는 맛있는 바닐라라테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일과 일상, 타인과의 관계와 나 자신. 삶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적당히 균형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어느 부분이 모자라거나 흘러넘치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버리더라고요."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 타인의 존경어린 인정,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 같은 건 감히 꿈꿔본 적 없다. 그런 건 내게 판타지와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면 꼭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장래의 모습이, 이제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섬 같이 느껴졌다.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바쁘고 적당한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 돌이켜보는. 가끔 불안하고 넘어지겠지만, ‘뭐 이 정도면 대체로 안정적’이라고 선뜻 말할 수 있는.





물론 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지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뭐,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과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됐죠. 그럼 된 거예요?

지금까지 이어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삶의 모습과 바라왔던 종착지 사이의 수백 마일 간극을 무겁게 채우고 있던 회의감은, 우습게도 동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한껏 부피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만, 저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떤 큰 오류에서 빠져나온 듯 했다.

‘어, 그러네. 정말로 인생은 저게 다네.’ 착시그림에서 나머지 모습을 찾기 위해 눈알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내게 누군가 다가와 “정신차려 이 사람아, 이건 착시그림이 아니고, 그냥 그림이야, 자네가 본 게 전부라고!” 일러준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불행은 죽을 때까지 죽ㅡ 이어지고,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씩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그리고 “어쩌다 한번 행복하면 된 거예요.” 그게 인생의 전부라고.



바닐라라테 같은 삶은 닿을 수 없는 섬 같은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행복과 불행은 균형을 이룰 수가 없다. 행복과 불행이 어떻게 50대 50일 수 있겠어. 평일은 월화수목금 5일인데 주말은 이틀인 것처럼, 하루 24시간 중 평균 수면시간은 7-8시간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뇌를 돌려야하는 것처럼, 아무리 잘 쳐줘도 불행 80, 행복20 정도가 인생의 디폴트값(기본적으로 설정된 값)이거늘.


이제껏 소박한 바람이라고 믿어왔던 ‘대체적으로 안정된 삶’은 상상 속 유니콘과도 같은 것이었다. 성공한 삶도, 타인의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것도 모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속에도 안정과 균형은 없을 것이다. 어느 작가님의 말처럼 “아무 걱정 없이 평화로운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인생은 결국 지옥문을 끝없이 여는 과정이 맞았다. 다만 그 고통에 찬 문짝만 바라보느라 내가 간과해버린 게 있었다. 불행과 한 수평선상에 있는 나머지 20%의 행복. 그리고 ‘그렇게 어쩌다 한번 행복하면 됐다’는 사실. 인생그래프를 작성할 때 불행했던 일들은 아득바득 기억해내 최하점에 콕콕 박아 두었으면서, 기말고사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갔던 제주도 여행이나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매듭지은 후 처음으로 맞는 게으르고 사랑스러운 주말 같은 건 떠올리지 조차 않았다. 사실은 그 20%의 행복이 80퍼센트의 불행한 삶을 떠받치고 있는 건 줄도 모르고.



후,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언젠가는 균형 잡힌 안정된 나날이 올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밋밋하고 달갑지 않은 불행이 끝없이 이어지고 행복은 아주 드문드문 있는 게 인생의 전부구나. 받아들이고 나니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 얼추 방향이 잡힌다. 일단, ‘어쩌다 한번 행복하면 된 거’라는 마인드를 장착해야겠다.(사실 이제 바닐라라테 같은 인생은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인지, 나는 진심으로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볶음밥 속 소금만큼 존재하는 그 행복의 기회를 최선을 다해 수집해볼 테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오감으로 감상하면서.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이 이부자리에 스멀스멀 올라오겠지만, ‘아, 오늘은 완벽하게 행복했다 조만간 또 완벽한 날들을 만들어야지.’ 기약하며 여전히 무섭지만 너무 슬프지 않게, 다시 지옥문을 열 준비를 해야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