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이 막 지난 7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에어컨을 슬슬 틀 때가 되었단 말이지. 나는 집주인 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려 에어컨 청소를 부탁드렸고,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며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하셨다(당시 나는 밖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문자로 비밀번호를 알려주고서 몇 시간 후 집으로 귀가했다. 에어컨을 틀어보니 깨끗하고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이마에 닿았다.
그렇게 만족하고 있던 찰나, 집주인 할아버지께 전화가 오셨다. 나는 감사인사를 드리려 기쁘게 입을 떼려고 하는데, 글쎄, 전화를 받자마자 할아버지께서는 언짢은 기색으로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인즉슨 커피포트 바로 위 천장에 시꺼멓게 곰팡이가 피어있더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 커피포트는 벽걸이형 에어컨 바로 밑에 있는데, 물을 거기서 끓이니 수중기가 모여 벽에 곰팡이가 피고 에어컨도 더 더러워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나는 몰랐다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정말 그걸 몰랐느냐며 되물었고, 나는 정말 몰랐노라고 대답했다. 정말 몰랐으니까(!) 그러자 그는 앞으로 거기서 물을 끓이지 말라고 충고를 하고선 한마디 덧붙였다.
“거, 거 잘 좀 삽시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리고선 깨달았다. 내가 지금 잘 못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회사생활에 지쳐 집을 엉망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배달시킨 상품들의 박스와 비닐포장은 거실에 엉망으로 널려있었고, 식물들에게는 물을 주지 않아 잎이 바싹 말라있었다. 빨래는 쌓여 있고, 입다 벗은 옷가지들은 아무렇게나 의자에 겹쳐져 있었다. 화장실과 싱크대에는 누런 물때가 끼었다.
그 뿐이랴. 나는 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방치하고 있었다. 식사는 거르거나 대충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웠고, 배가 고플 땐 밥 대신 과자를 먹었다. 퇴근하고선 만사가 귀찮아 운동이고 나발이고 그저 침대에 누워 무기력하게 영양가 없는 SNS 콘텐츠들을 들여다봤다. 허벅지와 배에 살이 붙어서 그런가. 몸과 정신은 날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그래서 거실 한 쪽 벽면에 커다랗게 생긴 곰팡이도 발견하지 못한 채 이제껏 지낸 것이다.
나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말에 ‘잘 사는 것’의 기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 잘산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잘 데리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일생에 걸쳐 끝까지 나와 함께 살아갈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서 잘 데리고 다니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 어디를 데려다 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등등 자신에 대한 디테일을 최대한 많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정립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므로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현재 잘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아래 2가지 사항을 먼저 체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첫 째, 집의 위생상태가 양호한가.
둘 째, 하루 중 한 끼라도 건강하게 챙겨먹는가.
2가지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면 나는 지금 영 잘 살고 있지 않다는 소리다. 우리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가장 먼저 집과 끼니에 대해 무심해지곤 하니까. 집과 자신을 내팽개치고 해야 할 일에 질질 끌려 다니게 되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저 중에 한 가지라도 충족한다면 지금의 생활이 영 별로는 아니라는 뜻이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행복해질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일 테다. 2가지 모두를 충족다면 나름대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며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고.
그러니 앞으로는 문득 ‘나 지금 잘살고 있나?’ 라고 스스로 물음을 던질 때 저 두 가지 사항을 먼저 떠올려 봐야겠다. 둘 다 만족한다면, 오케이, 나는 지금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꽤 사람답게 살고 있어. 한 가지만 해당된다면, 바쁘지만 그래도 일상을 유지하려고 나름대로 노력 하고 있어. 그런데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일 테다.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서 적어도 위의 사항 중 한 가지라도 만족하려고 노력 해야겠지. 일단 지금의 나는 두 가지 모두 해당사항이 없는 것 같으니까 일단 첫 번째 조건부터 채우려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어질러진 거실과 방을 치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청소기를 밀고 걸레질을 하고. 싱크대와 화장실에도 락스를 뿌려놔야지. 다시는 천장 한 구석에 곰팡이가 쓸 지 않도록 유의하면서.